[歷代名醫醫案170] 李惟聖(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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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70] 李惟聖(5)
  • 승인 2009.10.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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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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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惟聖(1581-?): 李惟聖은 1518년에 출생한 후 선조 39년인 1606년에 丙午 增廣試에서 生員 3등 12위를 하여 찰방을 지냈고, 光海君 8년인 1616년에 丙辰 增廣試 乙科에 3위로 합격하여 관리로서 성공한 인물. 의학에 뛰어나 논리 정연한 醫論을 전개하고 있다.

虛實熱案

○ 侍藥廳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啓下 各人들을 招致한 다음에 鄭之問의 醫術도 또한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닌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臣等이 사사로이 招致하여 각각 그 견해를 진술하도록 하였으니, 그 말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아울러 封入하여 睿覽에 예비하고자 합니다. 大抵 모든 사람의 견해는 或 虛火로 여기고 마땅히 補해야 한다 하고, 或 實火로 여기고 瀉해야 한다 하고, 或 外感이므로 화해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홀로 尹善道만 처음에 發汗시킨 다음에 바야흐로 藥을 의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外間에서 상세히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만약 병수발하는 宮女에게 물어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어제 올린 蔘苓白朮散은 補虛시키는 것입니다. 비록 증상에 맞았다 하더라도 한 번 복용하고 효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오늘 끓여서 임금님께 올리고 밤 사이의 증상을 살핀다면 虛實을 가히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에 受針하는 것이 비록 의심이 되는 바가 있지만 柳後聖, 李惟聖, 閔棡 등 모든 이가 반드시 약간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臣等이 생각하기에 한두 번 침을 맞아보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니 시험해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다만 오늘 이미 날이 저물어 다른 사람들과 반복해서 상세히 논하기 어려우니 내일 문을 연 다음에 모여서 다시 의론하여 정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이에 알겠다고 대답하였다. 처음에 發汗시킨 다음에 간간히 汗氣가 있었다.(<承政院日記> 인조 10년 6월11일 1632년)

○ 侍藥廳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지금 임금님의 답변을 받들어 다시 다른 약을 논하였습니다. 무릇 병이란 마땅히 虛實을 알아야 하니, 虛火를 補하면 熱이 저절로 물러나고 實火를 補하면 熱이 더욱 융성해 집니다. 이전에 올린 蔘苓白朮散은 補를 爲主로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實火라면 增熱之患이 있게 될 것이니, 二貼을 연달아 올린 다음에 비록 顯效는 없었지만 大熱이 생겨나지는 않았으니 病情과 크게 동떨어진 것은 아닌 듯하니, 연달아 올릴까 합니다. 이제 下敎를 받들건데 다른 약으로 바꾸어야 하겠지만 어제 다른 사람들과 약을 의론하는 가운데 崔得龍이 말한 바의 黃連解毒湯은 전적으로 治火하는 것으로 효과가 반드시 빠르며 藥性도 강한 듯합니다. 또한 黃連, 黃芩, 梔子, 黃栢 등은 모두 味苦之材로 반드시 기꺼이 임금님께 올릴 수 없습니다. 李惟聖, 閔棡이 말한 바 涼血地黃湯, 加赤茯苓, 柴胡各一錢半, 人蔘, 白朮, 桔梗, 黃連炒各一錢, 枳殼, 靑皮各七分은 지나치게 강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생각하건데 婦人의 病은 心肝의 火로부터 나오는 것이 열 중에 여덟 아홉이고, 火의 원인은 모두 血虛입니다. 火熱이 陰血을 끓어 올려 더욱 소모시키기에 이와 같습니다.”(<承政院日記> 인조 10년 6월12일 1632년)

설명: 發熱을 虛火와 實火로 나누어 논쟁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李惟聖이 중간에 언급되고 있지만 그의 평소 전력으로 보아 의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辨證分析: 發熱을 虛火와 實火로 나누어 補虛를 위주로 하고 있다. 중간에 尹善道가 發汗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은 傷寒表證으로 여기고 發熱을 表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醫官의 衆論은 傷寒表證이 아니라 發熱을 虛實로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李惟聖은 血虛發熱로 판단하고 있다.

治療分析: 처음에 參苓白朮散을 쓴 것은 脾胃虛로 인한 虛火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다음날에 虛實에 대한 論戰이 시작되어 崔得龍은 黃連解毒湯加減方을 李惟聖 등은 凉血地黃湯加減方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모습은 조선 후기 한국 한의학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남일=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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