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정보] 일본동양의학회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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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정보] 일본동양의학회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③
  • 승인 2003.04.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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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진행과 토론방식을 배우자

늘 같은 내용 되풀이 발표하는 한국



4. 일본동양의학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항상 사물을 보는데는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게 된다. 특히 그 대상이 일본이라면 더더구나 미묘한 입장이 되기 쉽다. 여기서 필자가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의 동양의학을 배워야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는 학회의 진행방식이나 핫이슈에 대한 토론방법에 대해 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일본동양의학회에 대한 필자의 느낌 또는 특징을 지면 관계상 크게 몇 분야로 나누어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적절한 주제의 심포지엄이 많다. 심포지엄의 진행은 어떤 주제에 대해 심포지스터들이 10∼15분간 주제를 발표하고, 그런 다음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주제들은 연구만이 아니고, 임상상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등장함으로 일반 개업의들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여기서는 진행을 맡고있는 좌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들 좌장과 심포지스터들은 사전에 모여 충분히 토론을 하여 조율을 거치며, 좌장은 이 모든 내용에 대하여 미리 완전히 숙지하여야 한다. 청중들이 알고싶어하는 바를, 그리고 알려야 하는 바를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가면서 대부분 약 1시간 반을 이끌고 가야 한다.

우리들도 학회를 하다보면 좌장 인프라의 부족을 심하게 느낀다. 즉, 좌장이라면 단순히 발표자를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고, 내용에 대하여 의문점이나 의의에 대하여 알고서 코멘트를 하여야 되는데,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 좌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들 한의계의 역사가 짧다보니, 학회에 가더라도 대부분 대학의 선후배, 아니면 스승과 제자사이로 만나기 때문에 이와같은 토론이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들도 충분히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같이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적 인프라의 양적인 성숙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와같은 발표방식 내지 토론문화를 기대해 봄직하다.

둘째는 이론만이 아니고 항상 증례보고가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증례보고는 일본 동양의학의 한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근본적으로 우리들은 한 소식, 한 사고를 터득하면 모든 것이 이루진다고 하는 것이 지배적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실제의 살아있는 증례를 말하는 것이 역사적인 전통이 있다. 물론 기록을 중시하는 국민성이라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떻든 200년이나 지난 챠트가 지금도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다고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250년전 에도시대 중기, 후세방파를 공격하면서 고방파가 등장하는데, 이때도 이론적인 무장뿐만아니라 임상증례보고를 가지고 의학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이에 반해 우리들은 늘 이론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유명한 교수의 발표도 대학 때나, 대학원 때나, 졸업을 한 지 수 십년이 지난 뒤에나 똑같은 내용만 되풀이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학술대회는 동창회나 계모임으로 바뀌게 된다.

이론중심으로만 말하면 세월이 지나도 무엇이 그렇게 달라지겠는가. 일본에서는 어떤 주제에서도 증례보고가 없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초연구에서 사용하는 처방도 문헌에 근거하기보다는 실제 증례보고를 더 중요시 한다.

셋째는 전통의학으로서의 맥, 즉 정체성이 있다. 요즈음 우리들의 학회나 증례발표를 보면 전통의학으로서의 정체성이 실종되고, 너무 서양의학적인 진단과 진찰소견에 傾倒된다는 느낌을 가진다. 중심은 우리가 가져야 되는데, 동서양이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어떻게하면 전통을 살려 오늘날에 응용을 할까하는 것이 큰 흐름이다. 內經에 나오는 <未病>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대주제로 다루는 것을 보면 부럽기 한이 없다.

넷째는 국제화의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식대로, 우리끼리가 아니라 국제흐름에 맞춘 테마설정이 적절하다. 예를들면 1997년 미국 NIH에서 침의 효과를 인정한다는 발표가 있자, 이것은 전통의학사에서 대단히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식했으며, 일본은 이때부터 이 주제를 수백번은 더 써먹는 모습을 보였다. 관련 자료를 번역전재한다거나 미국의 학자를 초청하는 일은 물론이고, 앞으로 우리들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하여야 되는가를 두고 몇 년씩 토론하는 것이었다.

이때 우리들은 드디어 우리들의 치료방법이 미국에서도 인정하였다는 정도였으며, 이 하나의 권고안 발표가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터이다. 최근의 핫이슈는 증거의학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동양의학회내에 증거의학 위원회를 두어 돈을 쏟아 붓고 있다. 회비는 이런 곳에 써야 되는 것이다.

다섯째는 학회의 활성화이다. 우리들도 정책을 주관하는 협회와 교육·학회를 주관하는 학회의 활동이 균형을 이루고자 학회가 독립을 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으나, 좀더 일본의 학회 활동을 한번 보자. 작년 ICOM에 참가한 일본 학자들의 좌담을 통하여 들어보면 왜 한국에는 학회가 없는지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물론 그들의 評하나에 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이 4년전에 학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학회를 독립시켜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는 있지만, 거기에 걸 맞게 재정적인 뒷받침과 일정한 역할을 학회에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즉, 지금도 협회가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학회를 종속적으로 두고자 하기 때문에 전혀 학회의 활성화에 부응하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 반해 일본의 학회는 일본 동양의학회가 주관하는데, 회비는 매년 연회비 만엔(약 10만원)과 참가비 만엔을 낸다. 약 만명 회원의 연회비 10억과 매년 평균 참가회원 3천500명의 참가비 3억 5천만, 이 둘을 합하여 13억 5천만원 정도를 가지고서 개최 도시에서 가장 멋있는 국제회의장에서 때깔나게 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이 보다 더 많은 회비를 걷어들이면서도 잘 되지, 아니 전혀 안되고 있다. 이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학회의 발목을 잡고있는 협회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단정한다. 왜 우리는 일본보다 더 많은 회비를 투자하면서 1년에 학회 한번조차 멋있게 못하는가.

아니 투자를 하지 않는가. 올해에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협회의 시도지부장들의 의견으로 회원들의 분과학회의 의무 참석을 교묘하게 보수교육으로 대체하도록 되었다. 작년에는 ICOM때문이라고 하고, 올해는 무슨 핑계로 분과학회의 의무참석을 피하는가.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앞에서는 연구하는 한의학이니, 학회의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뒤로는 회원의 권익옹호 차원이라는 미명하에 교육없는 한의사를 만들고 있다.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요즈음의 시대를 변화라는 말도 성에 차지 않아 변혁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고 있는데, 그 만큼 이 격심한 변화의 시대에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모되어 가고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고, 한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즉, 이 시대에 적응하여 가려면 골치아픈 것도 배워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술대회장에서 일반적인 생물, 화학이야기인데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좀 생소하면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 모양이다’고 혀를 차면서 나가버리는 회원을 만나게 된다. 신문에 나오는 일반적인 상식조차도 동의보감이나 동의수세보원에서 벗어나면 대학에 있는 사람들 자기들 끼리 잘난체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니까 학회를 가지않더라도 보수교육 시 적당하게 넘어가도록 하는 안을 만드는 것이 연초 협회 대의원회의의 분위기다.

1년 중 공휴일 다 제하고 일하는 날 약 250일 중에 하루시간을 내어 소위 골치아픈 것을 듣는다는 것이 그렇게 못할 짓인가.

그 하루에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렇게 각박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인가. 하루벌어 먹고사는 일용 근로자가 아니라면 평생 죽도록 하는 이 일을 좀더 여유있게, 품위있게 좀 할 수 있도록 해 보자. 이 차제에 협회의 중앙회비를 회원의 선택으로 분과학회에 납부해도 좋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는 분과학회 회원은 한의사가 아니냐고 비난할는지 모르지만, 분과학회도 한의학을 하는 것이지, 다른 짓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협회의 정책, 학회의 학문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우리들이 산다.
〈계속〉

◇ 일본학회의 특장점
1. 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2. 증례보고가 따른다
3. 전통의학의 맥을 잇는다
4. 국제화 주제에 발빠르게 대응한다
5. 학회활성화를 우선시 한다
6. 개방적 마인드를 가진다(이하 차회)
7. 중진·원로가 발표에 더 적극적이다
8. 조직위가 철저히 준비한다


조기호(대한한의학회 국제교류이사·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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