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한의학 정체성에 대하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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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한의학 정체성에 대하여(1)
  • 승인 2010.01.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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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김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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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정체성에 대하여(1)

“우리 한의사들은 한의학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정부가 중국처럼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의학이 국민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얼마 전 새로 오신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님이 교과부 소속 여러 정부 출연 연구기관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시지요” 라고 해서 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 연구원은 공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기관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물리학이나 화학 등과 같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기관도 아닙니다. 저희는 겨레 과학을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세수하실 때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겨레 과학인 한의학을 도와주십시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한의학을 연구하는 국가 핵심 거점연구기관입니다. 1993년 한약사태 당시 우리 민족의 고유의학인 한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민적인 합의를 통해 이듬해인 1994년 발족한 곳이 우리 연구원입니다. 처음에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었으나 국무총리실로 이관된 뒤 과학기술부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 소속으로 되어있습니다.

중국에는 우리 연구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중의과학원’이 있는데, 이 기관은 현재 2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세계 전통의학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의학 세계화의 총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침구와 한약 등 13개 연구소를 휘하에 두고 있으며 6개의 임상병원에 1500병상 이상의 임상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규모 면으로 단순 비교해도 우리 연구소와 20배 가량의 차이가 납니다. 중국의 중의학 확산 정책의 기본을 보면, 중국은 중의학을 의학의 한 분야라기보다 민족문화의 중심으로 키우고 과학화보다 세계화를 집중 기획하여 이미 전 세계 전통의학 가운데 가장 큰 인프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지원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중국처럼 민족문화의 자긍심으로 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중국처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헌법에까지 규정해서 관장하지는 않는 수준입니다. 가끔씩 우리 한의사들은 한의학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정부가 중국에서와 같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의학이 국민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즉, 한의학의 의학적인 가치가 높아져야만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줄 것입니다.

때문에 한의학과 관련된 더 많은 인프라가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 상당수 한의사가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이 잘 되기만 바라지 국민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어떻게 사회적 공헌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한의학은 한의사 개인의 이익을 떠나 국민들의 의․식․주 등 모든 삶에 혜택이 부여될 때 정부도 더 발전하게 도와주고 한의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신뢰를 얻어야 그 정체성도 확고해질 수 있습니다. 한의학의 정체성이 아무리 정당하고 역사성이 있다고 해도 실천성이 없으면 정부와 국민의 보호나 지원을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많은 한의학자나 한의사들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하여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의견으로 대립되면 한의학의 정체성은 그게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의학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한의학은 음양오행사상으로 이루어진...’라고 말하는데 ‘그럼 실체는 무엇입니까’라고 하면 ‘실체는...?’로 마무리 되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한의학의 정체성을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사람이듯 한의학은 의학입니다. 우리가 우리끼리 보았을 때는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외국인과 비교해 보면 조금 다른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의학이나 의학이나 사람을 대상으로 치료하는 것은 같은 데 시각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서양 사람들이 동양 여자들의 광대뼈가 나온 얼굴의 윤곽과 털 없이 부드러운 살결, 쌍꺼풀 없이 눈두덩이가 솟아 오른 눈을 부러워하듯 한의학을 볼 때 새로운 방법으로 치료하는 모습이 자기들과 달라 신기하고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좀 더 한의학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우리보다 더 좋은 의학으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한의학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가지고 서로 발목을 잡으며 싸우지 말고 한의학적인 방법론을 의학적으로 유용하게 만들어 국민의 신뢰와 사랑 그리고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을 때 한의학의 정체성은 확고해지고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제가 한국한의학연구원을 이끌어 가며 한의학을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소견을 피력할 기회를 자주 갖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합니다.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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