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표준연구원 설립 5개월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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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표준연구원 설립 5개월 무엇을 했나?
  • 승인 2010.04.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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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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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워킹그룹 참여 위원들 선정에 그쳐

8개 워킹그룹 참여 위원들 선정에 그쳐
한의학표준연구원 설립 5개월 무엇을 했나? 
한의학 표준화 중대함 한의계 모두 인지해야
자칫 중의학 표준으로 도입할 상황 올 수도

3월22일~24일, 사흘간 최승훈 한의학표준연구원장이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ICTM(국제전통의학분류) 회의에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2014년 ICD-11(별도 챕터로 등록)에 포함될 국제전통의학분류를 시작하기에 앞서 열린 공식적인 첫번째 회의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는 국제전통의학 표준화를 둘러싼 논의가 지속됐기 때문에 회의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다.

중국이 자국의 전통의학(TCM, Traditional medicine of chinese)을 세계전통의학 표준으로 삼고자 하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감지돼 왔다. 특히 작년에는 WHO 전통의학 표준화 작업과 관련해 입김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자, ISO 국제표준을 ISO TM-249라는 새로운 커미티를 만들려고 시도하자 국내 한의학계가 이에 대응하고자 부랴부랴 만든 조직이 ‘한국한의학표준연구원’이다. 초대 원장은 최승훈 경희대 한의대 학장이 맡았다.

한의학표준연구원은 개원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아직 가시적 성과는 없다. 뚜렷한 활동이나 성과가 보이지 않는 데는 우선 사업내용에 대해 공개하기 힘든 대외적 상황이 꼽힌다. 한의협 한 임원은 “국내 보도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무래도 한국이 중국의 TCM 표준화 사업에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최 원장도 “중국에 우리의 전략이나 현황 등을 노출하면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며 조심스런 반응이다. 그래서인지 표준연구원의 활동은 대외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최 원장의 개인 역량에 집중돼 있다. 전담인력도 전무한 실정이다. 간사는 정채빈 한의협 보험이사가 맡고, 한의협 직원 한 명이 표준연구원 관련 직무를 일부 담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뚜렷한 성과가 없는 것인지, 물밑에서 뭔가 활발한 성과가 나오는데 보안상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밀실행정도 적절한 홍보활동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정채빈 간사는 “우리의 활동 내용이나 계획을 노출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스럽지만 전략적 대응과 홍보는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최승훈 원장 개인역량 의존… 전담직원 전무한 실정
올해 예산 배정… 외부 지원 위해 협회장 역할 중요
ICTM 분담금 문제 해결 시급… 정부는 약속 지켜야

예산 문제나 전문가 인력풀 및 주도할 만한 인력의 부족, 관련 단체들의 유기적 협조 부족 등도 표준연구원이 주춤거리는 주된 요인이다. 지금까지 표준연구원 관련 예산은 없었다. 원래 협회 산하 표준위원회로 설립하려던 것이 표준연구원으로 작년 말 급작스럽게 변경되면서 올해 3월 대의원총회에서 처음으로 사업비 명목으로 관련 예산(4천6백만원)이 배정됐을 뿐이다. 국제회의 참석비, 워킹그룹 회의비, 자료 수집비 등의 명목이다.

39대 집행부의 한 임원은 “4천6백만원이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액이지만 표준화 작업이 워낙 방대하고 중요한 작업이라 이 정도 예산은 기초적인 작업수행비나 자료비에 쓰일 정도”라며 “표준화 연구개발비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질환 별 임상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데만 몇십 억원이 든다. 한 분야의 표준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예산이 태부족한 상태이니, 표준연구원이 올해부터라도 실제 표준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표준연구원의 역할은 전체적인 표준화작업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컨트롤 타워로서 역할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실제 연구개발에 있어서는 외부에서의 펀딩이 필수적이다.

정부 지원이 그래서 절실하다. 국내 표준화의 중심 기관인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한의학표준연구원 설립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의계는 지경부나 산하 기표원, 기획재정부 등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한의협 전 임원은 “표준화 사업에 드는 거대 예산을 끌어 모으는 것은 한의협 차원에서 정부에 요구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새로운 한의협 회장의 역량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ICD 관련 분담금 문제도 시급히 해결할 과제다. 최 원장은 “이번 ICTM 회의에서 사석에서 만난 우스턴 박사(ICTM 총책임자)는 한국의 분담금 문제를 빠른 시일 내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중국과 일본은 이미 작년부터 분담금을 냈는데 한국은 분담금을 내기로 약속만 했지 이를 실행하지 않아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앞으로 ICTM 회의에는 한‧중‧일 대표위원 2명씩 참석하는데 한국의 경우 (분담금을 내지 않을 경우) 향후 활동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가 강력한 실행의지를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워킹그룹 내에 포함된 한의계 표준전문가 그룹 또는 학회 및 대학의 교수들이 모여 컨소시엄을 만들어 정부 과제를 따는 방법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행 가능성에 있어 시각차가 존재한다. 최 원장은 “워킹그룹에 참여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표준화를 위한 디자인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한의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한의계 내부에 과연 표준화작업을 선도할 수 있는 전문가가 몇 명이나 있는지 의문”이라며 “그동안 한의대 교육 및 과목 내용에 있어서도 표준화가 안 됐는데 전체 한의학 분야를 표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들이 얼마나 있는지 의아스럽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차라리 표준화 관련 외부의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유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학 표준화 중대함 한의계 모두 인지해야
자칫 중의학 표준으로 도입할 상황 올 수도


표준연구원은 지난 5개월에 걸쳐 8개 워킹그룹의 위원들을 선정했다. 워킹그룹은 △용어 표준 △한약 품질관리 및 실험 표준 △한의학 진단 및 치료 조작 표준 △한의학 교육 및 훈련 표준 △한의학 서비스 안전 표준 △한의학 서비스 절차와 품질 관리 표준 △장비와 도구의 품질 표준 △한의약 국제 표준화 추진단(한국한의학연구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참여 교수로는 이충열, 김용석, 장인수 교수 등이 있다.

인력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헌데 표준연구원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한의학연구원의 역할은 이후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 일회용 멸균호침의 KS 제정에 이어 뜸의 표준화 작업을 서두르는 수준이다. 반면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 “표준화 관련 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만큼 관심이 많다”며 “표준연구원은 대외적 활동에 집중하고 연구개발은 우리가 맡아 수행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쳐,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발언을 어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는지 난망할 뿐이다. 전쟁은 터졌는데, 구호만 외치고 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표준연구원이 지난 몇 개월 별무 성과 없이 흘러왔듯이 앞으로도 그렇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표준연구원은 한의학 세계화, 현대화를 위한 전초기지다. 세계전통의학 표준화에 소홀하다 보면 한의학계가 중의학을 표준으로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김현수 한의협 회장은 “한의학 표준화의 중대함은 한의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훈 원장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외적인 상황에 비춰볼 때 표준화가 얼마나 중요한 사업인지는 신임 회장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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