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83)- 金昌集의 의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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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83)- 金昌集의 의안(2)
  • 승인 2010.04.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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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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灸三里案
歷代名醫醫案(183)- 金昌集의 의안(2)

金昌集
(1648~1722):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서 김상헌의 증손. 경종 년간에 내의원 도제조를 하면서 많은 의학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灸三里案

내용: 午時에 경종이 進修堂으로 가셔서 뜸 시술을 받다. 都提調 金昌集, 副提調 李肇, 假注書 李匡世, 記事官 李台徵, 朴師聖, 醫官 李時聖, 許坫, 方震夔, 吳重卨, 李徵夏, 權聖揆, 權聖經, 韓斗衡, 蔡光夏, 鄭爾 등이 왕을 모셨다. 金昌集이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三里에 뜸을 뜨는 것은 오늘까지 하고 節骨에도 마땅히 뜸을 떠야 할 것임에도, 醫官들이 모두 節骨은 뜸을 뜨지 말아야 한다고 해서 하지 않습니다. 오늘 들어온 醫官들이 뜸을 뜬 후에 약에 대해서 의논하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경종이 옆으로 기대어 앉아서 吳重卨, 權聖經, 蔡光夏 등 醫官들이 앞으로 나가서 三里穴에 뜸을 七壯 뜨고 물러났고 경종이 베개를 치우고 앉았다. 金昌集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뜸을 뜨는 것은 잠시 정지합니다. 임금님께서 매번 나타나는 증상이 없다며 들어가 진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니 저희들이 근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小便頻數은 細症이 아닙니다. 나이가 드신 후로 腹部가 虛冷하여 頻數한 것입니다. 殿下의 春秋가 鼎盛한 시기에 이러한 증후가 있고 또한 引飮頻數하시니 渴病이 아닌가 합니다. 痰火에 대해서도 더욱 우려가 됩니다.(<承政院日記> 경종 원년 8월13일. 1721년. 필자의 번역)

설명: 金昌集이 경종의 脚部酸疼을 三里穴에 뜸을 떠서 치료한 醫案이다. 경종의 증상을 脚部酸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다음날 기록에 나온다. 경종이 자신의 몸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있자 金昌集이 충언하고 있다. 金昌集은 논리정연하게 경종의 몸 상태에 대해 설하고 있다.

辨證分析: 중간에 빠진 부분에는 의관들이 경종의 맥을 살핀 내용들이 나온다. 李時聖은 洪數한 증후가 없고 左右가 모두 和平하다고 하였다. 許坫은 左右尺脈이 微弱한데 關寸은 有力하면서 不數하다고 하였다. 李徵夏는 左右脈候의 三部가 모두 좋은데 깊이 누르면 有力하다고 하였다. 權聖揆는 左右脈候가 闊數하니, 闊은 疾한 것이고 數은 火때문이라고 하였다. 韓斗衡은 脈候가 左右三部가 沈하면서 闊을 끼고 有力하다고 하였다. 경종은 평소부터 火가 떠서 나타나는 증상이 있었다. 痰火, 渴症 등에 대한 논의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治療分析: 혈자리로 三里를 취한 것은 三里가 足陽明胃經에 속하여 胃계통의 질환을 치료한 것에다가 三焦를 다스려주기 때문이다. <靈樞·九鍼十二原>에서 “陽有陰疾者, 取之下陵三里”라고 한 것에 비추어 三焦를 두루 다스리는 혈자리이다. ‘三里’의 ‘里’를 다스린다는 의미의 ‘理’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東醫寶鑑>에서는 三里穴을 다양한 질병에 쓰고 있다. 나오는 門만 해도 氣, 神, 血, 痰飮, 胞, 蟲, 大便, 頭, 眼, 鼻, 咽喉, 胸, 乳, 腹, 脇, 足, 前陰, 風, 寒, 火, 內傷, 虛勞, 嘔吐, 咳嗽, 積聚, 脹滿, 諸瘡, 婦人 등 28군데에 달한다. 여기에 七壯을 뜬 것은 七이 少陽의 數임에 착안한 것으로 한의학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壯數 산정법이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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