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2] 김태국 소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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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2] 김태국 소문학회장
  • 승인 2003.04.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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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게 學과 道실천한 선현의 뜻 따르렵니다"

김태국 소문학회장을 만나러 부산에 있는 한의원을 찾았을 때, 기자는 몇가지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김 회장의 명성에 비해 한의원이 지나치게 검소했다는 점이고, 다음은 환자와 상담하는 것이 기존에 보아왔던 의료인과 환자와의 딱딱한 관계가 아닌 동네 사랑방 같다는 느낌. 그리고 일주일 중 종일진료는 이틀간, 휴진 하루, 나머지는 오전진료…. 이런 식으로 짜여진 진료시간표.

또 한의원에는 '맥진기'며 '물리치료기'며 하는 의료기기들이 일체 없었으며, 단지 환자용 베드만 있을 뿐이었다.

진료를 많이 못하는 것은 외부 강의도 있지만, 첫째는 몸이 피곤해서란다. 그만큼 성심성의껏 환자를 본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환자와 상담하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한의학의 기본 이치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아무런 기계 없이도 충분히 진찰하고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한의학 제대로 알자
"한약 자체가 순하니 어지간히 처방을 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한약에는 그 만큼 패증이 적다는 얘기이기도 하지요. 두루뭉실할 수 있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탐구력이 줄어들고 오히려 학문발전에는 역효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잘 모르면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주변의 후배들을 보면 쉬운 것만 구하려하고, 쉽게 포기하고 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의학', 실제로 감 잡기 어려운 학문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책도 없고, 이현령비현령식이다. 또 이걸로 안되면 '대체의학' 운운하며 다른 데로 눈 돌리기 일쑤란다.

"환자 하나 오면 잡다하게 나와 있는 방법들 모두 동원해 대여섯가지 시도해봅니다. 이론체계는 뒷전이고, 결과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이지요. 본래의 체계적이고 이치에 맞는 것 배제하면 당장에 돈은 벌겠지만, 가면 갈수록 머리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지요."

"한의학의 역사가 길다보니 많은 부분에서 왜곡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다량의 책이 출간되고, 이를 제대로 잡아주지 않고 오류가 되풀이되면서 더욱더 큰 오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의사학에서 여러 학파를 다루고 있고, 금원사대가의 학설들을 대표로 꼽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변증논치는 중국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란다. 그 전에는 동의보감위주의 공부가 전부였지만.
"'양방+중국의 변증논치+사상의학'이 바로 현재의 '한국 한의학'인 것 같습니다."

중국 모택동이 집권하면서 중의학 재정리작업에 들어갔는데, 당시 중의사들에게 맑스레닌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두 제거해 버리겠다고 해서 유물변증론치가 태동하게 되고, 바로 도표식 한의학이 이때부터 등장한 것이란다.

石谷 李圭晙 선생
석곡 선생(1855∼1923)은 유·불·선 모든 부분에 타고난 학자이자, 동양학 전반적으로 잘못된 이론들에 대해 '손질'을 할 정도로 지식을 많이 아는데 그치지 않았다.

의학서인 '素問大要' '醫鑑重磨'를 비롯한 60여권의 책을 편찬해 냈다. 그 중에는 동양수학서인 '九章'을 정리해 '九章要訣'을 펴내기도 했는데, 천문 지리 수학 등 다방면에 능한 천재적인 학자로 알려지고 있다.

글자 한자라도 고쳤을 때 사문난적으로 몰려 멸족을 당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본문과 주석의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가감하는 작업은 '실력'과 '용기'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황제내경은 '소문'과 '영추'로 나뉘어 지는데, 그 중 素問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다. '천기=도(우주의 생명력)=음양'으로 연결된다.

이 素問은 총 81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석곡 선생은 재편집을 통해 이를 25편으로 정리했는데, 이것이 바로 '素問大要'다.

또 동의보감을 내경의 이론에 합당한 것만 모아 다시 갈아 만든 책이 醫鑑重磨다.
"석곡 선생의 이러한 업적을 원전의사학교실에서는 '내경 주석서' 정도로 격하시키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의 어느 주석서에 내경의 글자를 손을 댔습니까, 그리고 이전의 주석 원문 한 줄에 몇 줄의 내용을 덧붙여 놓은 것이 대부분인데, 원문의 가치가 없는 것을 후대에 끼워 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현재 한의사들이 주로 보고 있는 황제내경은 당나라 때 왕빙이 손질한 것인데, 대학 때 이 중 '소문편'을 보면서 기분나빴던 적이 있다고 회고한다.

"전간편에 보면, '간질환자 발적할 때 그 환자의 피를 받아서 두어라. 그리고 그 환자가 발작할 때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으면 피가 뛴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그러나 이런 내용이 素問大要에는 없다고 한다.
"이치에 맞으면 고금이 따로 없는 법입니다."
인체 우주의 원리는 하나인데, 누구는 이렇게 보고, 누구는 저렇게 보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扶陽論 이란
서양의학과 다른 점이 여기서 발견된다.
다섯 가지 우주의 구성요소 '五行' 어떤 물체라도 이 다섯 가지 모두에 포함돼 있다. 기운이 먼저고 물체가 다음이다. 흔히 기운을 발휘할 때는 '살았다'고 하고, 기운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죽었다'고 한다.

五行 중 陰陽을 뚜렷이 볼 수 있는 게 '水'와 '火'다.
이 水와 火의 사귐이 있어야 지구의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햇빛이 있음으로 인해 물을 상하좌우로 이동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체에 적용되면서 여러 가지 학설이 등장하게 된다.

인체를 흔히 소우주로 표현한다. 火氣가 제일 많은 것은 '심장-혈관'이고, 水氣가 많은 것은 '신장-방광'이다. 그런데 難經에는 신장이 2개이고, 水氣가 많은 左腎과 火氣가 많은 右命門으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한다.

난경의 학설을 채택하면, 우리 몸에 불이 2개(심장과 우명문)인데, 심장은 君火를 뜻하며, 우명문은 相火를 뜻하는 것이다.

그럼 결국 우리 몸에서 火가 득세하기 쉬워 걸핏하면 열이 난다. 그래서 병이 나면 火를 식혀야 하는데, 식히는 방법에도 직접 식히는 것과 물을 보태주는 방법이 있지만, "火를 누르고 水를 도운다"는 게 거의 정설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인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水와 火가 사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內經이나 難經이나 주장하는 바가 같다.

그런데 난경의 이론을 택하게 되면 火가 두 개이니 이 火를 식혀야 한다고 해서 숙지황과 같은 윤택한 약재들을 무조건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태양이 구름에 가리게 되면 자연 습해지고, 비가 안 와도 구름이 끼는

날이 여러 날이면 곰팡이가 낀다. 왜나하면 火가 못내려와서 水와 火가 따로 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火를 보충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경이론을 택하면 부자와 같은 열나는 약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실제로 송대까지 중국에서 부자의 재배량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난경이 출현하는 금원사대가가 등장하면서부터 그 재배량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이 두 학설을 비교하게 되면, 석곡 선생이 주력한 부분, 즉 '어째서 火가 둘이냐?'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난경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지요. '君火'와 '相火'는 본디 인체에 쓰이는 말도 아니고, 五行의 개념에서도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인체에 相火라는 것도 이 君火의 활동에 의해 체온이 유지되는 것을 말함이지 腎이든 肝이든 어디에도 별개의 相火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生氣는 막히는 게 병이니 막히는 것은 통해야 하는 것이 내경의 법이란다. 榮衛三焦가 소통이 잘 되면 병이 본래에 없는 것인데, 칠정이나 음식 외감 등으로 인하여 生氣가 행하려는 조직에 막히게 되면 열이 나니 막힌 것이 적이지 열은 元氣  氣의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후대 학자들, 즉 금원사대가들까지도 모두 난경의 이 구절을 보고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석곡 선생은 이 구절의 잘못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無爲堂 이원세 선생
"무위당 선생님(출생연도?)은 가난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게 공부하신 분입니다. 17세에 일을 해주고 공부도 할 수 있는 한 부잣집에 들어가 역학을 비롯해 여러 이론을 접하다, 석곡 선생님의 제자였던 석재 선생님을 만나 석재 선생님댁에서 기거하면서 '소문대요'와 '의감중마'를 필사해 가면서 석곡 선생의 이론을 터득하신 분입니다."

"겸손함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學'과 '道'를 동시에 실천한 분들이 바로 '석곡 선생님'과 '무위당 선생님'이십니다."
무위당 선생은 항상 "마음을 편히 한 후에 학문을 하든지 의사를 하든지 해야 한다"는 말을 후진들에게 강조하신다고 한다.

한의사는 환자들에게 자기 마음보다 편히 해주어 인생관으로 위안해 주어야 하고, 그 다음에 약이나 침을 쓰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무위당 선생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소문 TV'를 통해서다. 초고속 통신망에만 가입돼 있다면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강좌를 듣기 원하는 사람은 무위당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전국의 수 천명이 동시에 연결하더라도 동화상이 모두 뜰 수 있도록 기술적인 부분까지 지원이 돼 있는 상태다.

"획기적이고 선구자적인 인터넷 TV로 평가되지만, 한의사들이 아직까지는 컴퓨터 인터넷 동화상 등에 익숙치 않아 한계점도 보이지만, 언젠가는 다급해지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소문학회를 이끌면서…
"소문학을 처음 접한 것은 88년 무위당 이원세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부산에서 개원한 경희대 출신 24기∼29기 10여명이 '동의학우회'를 결성해 매주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땐데, 우연한 기회로 무위당 선생님을 만나고 소문이론에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세 차례씩 무위당 선생님을 찾아뵙고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처음 시작한 모두가 다 끝까지 열심히 한 것은 아니고 실제 변화를 실천하는데 있어 응용력이 딸릴 때는 갈등이 따라 일부는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기존학설의 타파능력 부재와 새롭게 각종 병들이 출현하고 있는 시점에서 응용할 수 있는 능력들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도전정신'과 '마음을 여는 것'이 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 겸손함은 첫 번째 요인입니다. '그래도 명인들 학설인데…' 하고 과거에 공부한 내용들이 아까워서 의심하고 접근하면 새로운 이론들이 머릿속에 명확하게 들어올 리 만무한 것이지요."

한의학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김태국 회장이지만, 가끔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부르는 모습이 청중을 압도하기도 한다고. 현재는 신병기 전 회장, 황원덕 동의대 교수 등이 주축이 돼 소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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