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육성법 ‘계륵’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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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육성법 ‘계륵’ 신세
  • 승인 2010.05.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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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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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용 의원 추진 개정안 상정조차 안돼
한의약육성법 ‘계륵’ 신세
윤석용 의원 추진 개정안 상정조차 안돼
한의계 요구사항 배제된 ‘정부안’만 상정


한의약육성법 관련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정부안이다. 그동안 한의계가 원하던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한의계 발목을 잡는 독소 규정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한의계는 정부안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허탈감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윤석용 의원을 통해 추진됐던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이 보건복지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아서다. 한의계 일각에서는 이제 한의약육성법 개정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아예 상위법인 독립 한의약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법 약사법 개정도 집중 거론되고 있다. 한의약육성법이 계륵이 된 셈이다.

2003년 8월 공포된 한의약육성법은 한의약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이 법이 한의계 발전을 막는 독소조항을 품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와 관련 제40대 대한한의사협회장 선거 당시 김정곤 한의협 회장은 본지와 집단인터뷰에서 “기존 한의약육성법 제2조는 한의약을 ‘선조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라고 적시했는데, 이는 한의약 정의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와 한약사로 규정한 것으로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축소 해석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이를 ‘기초로 하거나 이를 현대적으로 응용·개발한’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석용 의원에게 건의해 2009년 12월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특히 이 법안은 “한약제제란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해 제조한 의약품으로서 한방원리의 기준 및 한약제제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조항도 신설해 기존 약사법에 명시돼 있는 한약제제에 대한 부분을 한의약육성법에 포함시켰다.

헌데 이 법안은 보건복지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안되고 대신 5월3일 정부가 내놓은 ‘한의약육성법 일부 개정 법률안’만 상정됐다. 정부안은 한의계 요구가 전부 빠진 채 복잡한 문장이나 어휘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의약육성법 개정안을 기대했던 한의계로선 맥이 풀리는 상황이 됐다.

상황이 여의치 않게 전개된 건 윤석원 의원의 개정안을 놓고 복지위 내부에서 이견이 많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즉 한의사의 업권 확대를 우려한 다른 위원들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약사회나 의협 등 관련 단체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한의협 모 이사는 “약사회의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안다”며 “개정안이 약사의 업권을 침해할 소지가 없어 약사회 반발을 예상치 못했다”고 밝혔다.

윤석용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이제 물 건너갔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한의협 관계자는 “보건복지위에 워낙 많은 법안이 계류돼 있어 이 법안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다른 의원들과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당내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어쨋든 중요한 문제인 만큼 협회도 여러 통로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또 다른 이사는 “정부 개정안이 상정됐으니 윤 의원의 법안도 함께 검토되지 않겠냐”고 은근히 기대감을 표출했다. 윤석용 의원실 관계자는 “비록 상정되지 않았을지라도 윤 의원의 의욕은 확실하다”며 “지방선거 관련 이슈 때문에 당장은 힘들겠지만 6월쯤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률안 개정이 불투명해지자 아예 이번 기회에 한의약육성법 본래 취지에 맞도록 수정 보완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2002년 당시 김성순 의원이 발의한 내용(한의약 육성 등에 관한 법률안)과 한의협이 연구한 자료들(한의약 관리법 제정방안 연구 등)을 바탕으로 작성된 법률안 초안이 심의과정에서 대폭 삭제되거나 수정됐는데 이후 별다른 수정 보완작업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의계는 법률안 일부 조항이 정부의 책무와 중복되고, 이해집단의 마찰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수정되거나 삭제되자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제정작업에 참여했던 김동채 원장은 “초안이 여러 번 수정과정을 거치며 잘려나간 부분이 많았지만 우선순위를 법 제정에 두었고 차츰 단계적으로 개정을 추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남북 간의 교류나 인력 양성, 산업기술 지원, 연구개발 준비금 적립 등은 당초 한의약육성법 초안에는 포함됐다. 특히 “정부는 한의약 기술의 혁신이 국가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의약 기술정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이에 필요한 자원을 최대한 동원·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한의약 기술정책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개발 및 집행과정에 민간 전문가 또는 관련 단체 등이 폭넓게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도 삭제됐다.

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된 사업 수행과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한 천연물연구개발촉진법과 달리 한의약육성법에는 정부 지원내용이 빠진 것이다. 결국 속빈 강정과 다름없다는 비난이 일었다. 한의협 모 이사는 “협회가 당초 최소한의 내용만 담았는데도 산학연 협동연구 개발 촉진, 한의약종합정보센터 설치, 한약유통 선진화 방안 마련, 한약유통센터 설립, 한의약 기술인력 양성, 한의사의 예비조제 허용 등 내용이 대폭 빠졌다”고 주장했다.

한의약육성법 한계 뚜렷… 의료법·약사법 개정 필요
2003년 제정 당시 초안 대폭 수정돼
‘독립 한의약법’ 제정 주장 목청 높아 

정책 당국이 현행 한의약육성법 관련 내용만이라도 철저히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잖다. 한의협 모 이사는 “육성법 조항과 달리 보건복지부 관련 연구개발비가 전체 한의약 발전 연구개발비의 1/10도 안된다”며 “오히려 다른 부처가 이를 가져가는 등 연구비 누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평수 한의협 정책연구원 수석위원은 “한의약육성법이 과연 제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 의문”이라며 “이제라도 한의약육성법 규정들을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는지, 한의계는 정부의 약속을 제대로 받아내고 있는지, 없다면 그런 역량을 키우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한의약육성법은 한의약 독자성이나 의료 관련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규제법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위법인 독립 한의약법 제정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의계는 과거 독립 한의약법 추진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최환영 한의협 명예회장은 “한방산업 육성과 별도로 독립적인 한의약법과 약사법 의료법 재개정을 통해 한의사에게 의료인에 걸맞는 권한을 보전해줘야 한다”며 “서양의약으로 편향된 의료· 약사법 체제 하에서는 한의학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의약육성법에서 한방산업 관련 사항들을 들여다 보면 한의사가 배제돼 무늬만 한방산업 발전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의사가 진단기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의료법, 제형만 편리하게 복용토록 바뀌었을 뿐이지 여전히 한약제제를 양약처럼 취급하도록 한 약사법 등 한의약의 정의와 업무적 특성을 규정해 놓은 의료법과 약사법이 한의학을 얽어매 놓고 있어 한의약을 육성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역대 한의협 집행부들은 하나 같이 독립 한의약법 제정을 공약사항으로 내걸고 추진했으나 아직도 미해결 상태다. 한의협 모 이사는 “한의약육성법 제정과 관련해 논의가 시작됐을 때는 한의약법과 한약 관리법 두 가지가 동시에 추진됐다”며 “현행 한의약육성법에는 한약 관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의계 일각에서는 한의약육성법을 너무 좁게 해석하는 법률적 판단이 문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미 ‘기초로 한’이란 표현에는 이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데도 이를 과거행위로만 국한시켜 해석했다는 것이다. 법률통으로 불리는 한의계 모 인사는 “과거 CT 관련 판결에서 한의약육성법이 거론됐는데, 이는 핑계거리에 불과하다”며 “판결 내용은 영상진단 관련 교육시수, 국시 검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한의계 인사도 “결국 힘의 논리가 작용한 것”이라며 “의협이나 약사회 등에 밀려 한의약 원리가 협소하게 해석됐다”고 주장했다. 현실적 힘의 논리에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아예 한의약육성법을 없애자는 얘기까지 일각에서 흘러나오지만 이는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가능성이 짙다는 게 한의계 중론이다.

한의약육성법 초안은 8년 전에 작성됐다.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심도 깊은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초안작업에 관여했던 모 한의사는 “한의계 요구사항 중 일부만 들어갔던 초안조차도 심의과정에서 삭제 혹은 내용이 변경됐다”며 “과거 초안은 물론 현재 상황에 걸맞게 수정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문석 한의협 부회장은 “현 집행부에서 한의약육성법 연구가 재추진될 필요가 있다”며 “일단 윤석용 의원의 발의안에 집중하겠지만 후속 방안도 곧 검토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문병일 법제이사는 “회장의 공약사항이고 의지도 강하니까 우선 믿고 기다려 달라”며 “정부 쪽과 접촉해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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