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12]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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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12]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
  • 승인 2003.04.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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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역주작업에 10년을 바치다

지난 8월, 동의과학연구소가 10년의 작업 끝에 3천여개의 역주를 단 동의보감의 내경편(휴머니스트刊)을 완성했다. 동의보감은 한국 최초의 종합 의서라는 의학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인용문의 출전이 밝혀진 번역본이 없어 안타까움을 사왔다.

뒤늦게나마 현 시대의 언어로 재기술된 동의보감 역주본이 출간됐다는 점은 한의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길고 지루한 작업 끝에 결실을 이끌어 낸 인물은 40대 한의사 박석준 동의과학연구소장(43, 서울 양재동일한의원)이다.

한의학, 철학, 자연과학의 결합

서울 양재동에 소재한 동일한의원 건물 5층에 자리한 동의과학연구소 연구실에는 2만여 권의 관련서적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곳에서 박석준 소장은 동의보감의 정확한 뜻을 찾기 위해 한의사, 철학자, 자연과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원문의 출전을 찾느라 밤을 새우기도 한다. 호서대 교양학부를 위한 수업준비와 함께, 2학기에 개강한 철학아카데미 강의 ‘동의보감 따라읽기’를 위한 준비도 이곳에서 한다.

동의보감 준비기간 10년. 매주 월요일 연구소에서 한의사를 비롯한 김교빈(한국철학), 최종덕(자연철학), 이현구(한국철학), 조남호(동양철학)씨 등 학자 6~8명이 강독회를 통해 동의보감의 원뜻을 쫓았다. 연인원으로 따지면 2천7백여명. 내경편의 원고량만 2백자 원고자 8천매. 편집제작비 2억원이 투입됐다.

3대에 이은 가업

박 소장이 92년 동의과학연구소의 전신인 의철학연구소를 만들고, 연구소에서 10년 동안 동의보감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부친의 재정적 지원 없이 불가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의 부친 박인상 전 대전대한의대 교수는 일제하 의생이었던 조부 박징원의 의학을 이어받아, 경희대 한의대 초빙교수시절 대학병원에서 처음 사상의학을 임상에 적용한 사상의학계의 원로이다. 부친의 대표적 서적은 ‘동의사상요결’(소나무刊, 1997).

어린시절 기억은 집안에 가득한 한약냄새와, 가끔 달큰한 한약을 ‘훔쳐먹은’기억이 전부라는 그가 성장해 선택한 것은 경제학이었고, 가업을 잇는 것은 고인이 된 형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의 형이,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경제사 공부를 위해 유학을 준비하던 중 재생불량성빈혈로 숨을 거두자 그는 진로를 바꿔 대전대 한의대에 입학했고, 졸업후 부친과 함께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대학시절에 입학한 박 소장은 생소하고 난해한 동양사상을 극복하기 위해 동의과학사상연구회라는 학술동아리를 만들고 한의학과 동양사상에 대한 공부에 매진했다.

3대째 한의학을 이어 오고 있는 그는 부친으로부터 ‘특별한 수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학문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시절 그의 부모가 나누던 대화내용 중에 이웃집 누군가를 ‘소양인 김 아무개’라고 자연스럽게 지칭하던 집안 분위기, 진료하는 박인상 선생의 모습 등이 그의 가치관과 오버랩 됐으리라 충분히 짐작된다.

인문학적 배경 밑천삼아…

한의학 입문 전 경제사에 뜻을 두었던 박 소장이 동의보감 번역에 나선 것은 인문학적 사고가 밑거름이 됐다.

동의보감은 동양철학적 원류가 근원임에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의 책을 찾을 수 없고 더 큰 문제는 동의보감 자체를 온전히 번역해 놓은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한의학적으로도 200년 후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이 탄생하는 데 산파역할을 할 만큼 의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지만 현재 한의사들은 임상에 관련된 부분들만 입맛대로 편식하는 풍토가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래서 인문과학을 동원해 종합적인 접근을 통한 동의보감 번역에 착수하게 됐다.

‘동의보감=짜깁기’ 아니지요

내경을 떼고 난 소감에 대해 박 소장은 “한의사들이 내심 동의보감은 짜깁기한 책이라는 생각, 그건 절대 아닙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동의보감이 80%이상 중국의 의서들, 그리고 고려, 조선 초기의 의서들을 인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의인용은 표현, 즉 기술상의 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이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동의보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창조적인 학문체계”라는 사실을 바로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 배경에는 도교사상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이해 특히 도교적인 이해 없이는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는 나의 길

내경편을 완료하기 위해 막바지 2년 간은 진료를 접고, 번역에만 몰두했던 그는 동의과학연구소과 함께, 최근에는 한방의 산업화를 위해 (주)동의과학이라는 사업체를 설립했다.

박 소장에게는 한의대에 입학하면서부터 간직한 꿈이 있다. 임상(한방병원), 이론(대학 혹은 연구소), 제약회사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치료 요법에 집착하는 세태에 걱정을 나타내면서 대학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고전에 충실한 한의사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대학의 몫”이라는 것이다.

내경편을 마무리한 박 소장은 나머지 4편의 완간을 위해 10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 구절 인용문을 찾기 위해 홀로 꼬박 한달을 찾았다는 만큼 외로운 작업이지만 자신은 언제나 연구자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서로는 ‘몸-머리는 하늘 발은 땅’(소나무刊, 1995), 공저 ‘동양을 위하여, 동양을 넘어서’(예문刊, 2001) 등이 있다.

부인 김미영 씨(41)와의 사이에 주연(15)양과 주석(7)군을 두고 있다.

오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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