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9] 芝山 朴仁圭 선생(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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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9] 芝山 朴仁圭 선생(下)
  • 승인 2003.04.1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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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임상 일치, 객관적 판단 항상 강조

사진설명-시간이 나면 해외여행을 즐겼던 지산 선생과 부인 김은순 씨.

형상의학, “생긴 대로 병이 오는 것”

지산 선생이 꽃피운 ‘형상의학’은 자연인의 형상을 보고 그 속에 내재된 원리에 입각, 생리·병리를 규명해서 진단과 치료에 응용하며 나아가 양생의 방법을 찾는다는 이론이다.

즉 형상 관찰을 위주로 인체의 精·氣·神·血, 五臟六腑, 外形, 六氣 및 雜病 상태를 바르게 파악하고 병리와 치법을 구해 질병을 치료·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쉽게 얘기하면 생긴 대로 병이 온다고 보는 것이 형상의학의 특징인 것이다.

臟象論에서는 인체의 내부에 간직된 모든 것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인체 외부로 발현되는데 이것을 ‘形象’이라고 한다. 이때에 인체의 특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大小, 肥瘦, 長短 등 有形한 形態를 ‘形’이라 하고, 인체에 내재된 본질의 징조·기미로 드러나는 氣勢, 色, 脈象, 症狀 등 좀 더 無形한 것을 ‘象’이라고 한다. 즉 ‘形象’이란 현재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內的 外的 與件에 따라 體外로 나타나는 모든 發顯象을 뜻하는 것이다.

형상의학회 정행규 회장은 “『東醫寶鑑』 첫 장 ‘身形臟腑論’에 보면 사람의 形과 色에 따라 같은 症狀이라도 다르게 治療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된 바 있으며 형상의학은 새로운 학문세계가 아니라 한의학의 한 분야로 이미 여러 문헌에 기록됐던 것으로 지산 선생께서 이론과 임상에서 체계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은 곧 생활, 한의학은 인간과학

또한 “한의계 입문 전 고시 준비로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와 지식으로 동의보감을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하셨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인규 선생은 “의학은 곧 생활이다. 한의학은 생활의 법도를 명시한 학문” 이라고 강조하며 한의학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기 때문에 人間科學이라고 설명했다.

병이란 矛盾의 集體인 사람의 몸에 본래부터 씨앗으로 내재해 있다가 內外與件에 상응하지 못했을 때 싹트는 것이므로 생활 속에서 내외여건에 상응하는 養生法道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의학이란 우리가 밥 먹고 숨쉬고 일하고 性生活하는 그 自體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醫學이 따로 있고 藥이 따로 있고, 또한 生活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례로 지산 선생과 遠行을 다니며 심신을 수양하던 형상의학회는 어느 날 대전 유성의 간혹 들렀던 음식점에서 평소보다 맛이 짜다고 느끼며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선생께서 “이 집 주방장이 오늘 허리가 아플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두들 의아하며 일행중 한 사람이 주방장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내가 허리 아픈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놀라는 표정을 했다. 지산 선생은 “허리는 腎의 집인데, 腎은 허리의 건강을 주관하고, 腎의 맛은 짠맛이다. 그런데 허리가 안 좋으니 맛을 짜게 먹지 않겠는가!” 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성태 형상재단 이사장(47·서울 아카데미한의원)은 “사실 이 말은 한의사라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醫學은 생활이라고 하신 말씀이 실감난 일이었다”며 “선생께서는 항상 이론과 실제에 맞게 쉽게 설명해주시며 이론과 임상은 항상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회고했다.

모든 생활을 한의학에 접목시켜 이해하고 활용했던 지산 선생에 대해 장남인 박경현 원장(46·경기 삼대조한의원)은 “한의대 재학시절 방학에 서울 집에 오면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사람의 벗은 몸을 봐야 체질을 알 수 있다며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큰 소리로 강의를 하시고 5시에 집에 와서는 2시간씩 동의보감을 가르치셨다”며 그 당시에는 도망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 각 문화를 체험하며 왜 저런 문화가 형성됐을까 항상 의구심을 갖고 한의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여행을 즐겼던 지산 선생은 여행 중에 한의대생인 장남과 차남 박정현 원장(39·서울 세운한의원)에게 편지를 늘 보냈다고 한다.

선생이 영면한 이후 그 편지를 묶어 『너와 나의 세계(芝山 선생이 한의사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펴내기도 했다. 박경현 원장은 “학문적으로는 항심을 갖고 늘 노력하는 자세로 자녀들에게 엄격했지만 무척 따뜻하고 자상해 친구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지산 선생은 슬하에 3남1녀를 두었으며 첫째와 셋째가 한의사의 길을, 둘째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넷째는 미국에서 작곡가로 활동 중이다.

▶ 醫 者 三 訓 ◀
- 心身合一로 事物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느끼고,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다.
- 心身合一로 事物의 與件變化에 따라 能變해 갈 수 있는 智慧를 가꾼다.
- 心身合一로 精·氣·神을 배양하여 天理에 逆行하지 않고 天壽를 다한다.

윗 글은 지산 선생이 생전에 가장 강조했던 ‘醫者三訓’으로 醫者는 먼저 醫學에 대한 자신의 主觀을 세워야 하며,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恒心을 가지고 학문을 체득하고, 세상사를 박식하게 두루 알아야 하며, 체득한 의술로 널리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으로 형상의학회 회원들은 새벽강의를 듣거나 진료에 임하기 전 이 문구를 늘 되새긴다고.

오수석 원장(37·경기 인보한의원)은 “선생께서는 醫者三訓의 첫 번째 덕목처럼 항상 객관적으로 모든 사물을 볼 것을 주지시키셨다”며 “똑같은 질환의 환자를 보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처방할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의사는 환자를 보다가 죽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99년 작고하기 전까지 진료를 보았던 지산 선생은 본인의 강의를 꾸준히 들었던 제자에게는 강의할 기회를 주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조성태 이사장은 “처음 강의할 때는 너무 어려웠지만 선생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며 “몇 년 간 강의를 한 후 ‘생긴 대로 병이 온다’는 책 저술을 권유받았을 때는 의아했다” 고 한다.

선생 본인이 저술할 수 있을뿐더러 한의사 아들을 둘이나 둔 그가 아끼는 제자에게 책 저술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조 이사장은 “평소 선생께서 ‘나는 뿌리와 거름이 될 테니 너희들은 꽃을 피우라’고 제자들에게 늘 언급했던 것을 몸소 실천하신 것 같다”며 그런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형상의학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양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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