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27] 答朝鮮醫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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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27] 答朝鮮醫問
  • 승인 2003.04.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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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行 길에 이루어진 한-중 학술교류

그림설명-『答朝鮮醫問』의 題詞(右)와 본문

이 책에는 명나라로 가는 조선사신의 수행사절로 따라간 의관 尹知微 등과 북경 체류기간 동안 이들의 접대를 담당한 중국 관원 王應인(1600년대)과의 사이에서 학술 토론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작성자인 王應인은 소임을 마친 후인 1624년 의학에 관해 질의 응답한 내용을 정리해 두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그의 문집인 『王應雜集』(전5책)에 포함되어 나온다. 당시 작성한 공문서나 별도의 단행본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1720년 일본에서 문집 속에 들어 있는 의학문답만 발췌하여 따로 간행되는데, 이때 『朝鮮醫問答』이라고 서명이 바뀌어 나온다.

현재 알려진 바 최초로 해외에서 간행된 조선 의학서인 和刻本 『東醫寶鑑』이 1724년에 간행되므로 이보다 몇 년 앞선 시점이다. 책에 표기된 이들의 공식직함과 신분은 朝鮮國貢使 內醫院正 崔順立, 安邦正, 尹知微와 文淵閣管理誥勅大理寺左寺左評事 王應인으로 되어 있다. 최순립은 선조 때 의학으로 登科하여 내의로써 扈聖原從功臣에 올랐으며, 윤지미 역시 의과출신으로 李希憲과 함께 醫書印出 監校官을 지내면서『纂圖方論脈訣集成』, 『新刊補注釋文黃帝內經素問』, 『동의보감』, 『신찬벽온방』, 『벽역신방』을 간행한 인물이다. 그러나 안방정에 대해서는 사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大理寺는 고대의 最高法庭 기구로써 명·청시기에는 刑部, 都察院과 함께 모여 합의심을 진행했는데 이를 ‘三法司’라 불렀다. 決獄의 권한은 본디 형부에 있었으나 大理寺의 동의를 얻어야만 했고 大理寺卿은 正三品官으로 조정의 大政會議에 참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王應인은 현직과 관계없이 의학에 소양이 있어 특명으로 접빈객의 소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한때 宋代의 유명한 문신학자인 王應麟(1223~1296)의 저작으로 잘못 알려져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나 근년에 중국의 의사학자 梁永宣에 의해 연대고증이 이루어지고 오류가 바로잡히게 되었다. 다만 이러한 혼란은 조선측 인물인 최순립이나 윤지미의 사적이 분명한 이상, 진즉 정보교환이 이루어졌더라면 야기되지 않았을 오해라는 점이다. 몇 개월이 소요되는 험한 使行 길에 올라 風餐露宿을 마다 않고 학술교류에 열중했을 조선의관들의 지적 노력에 비하면 후인들이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내용 중에는 24항목에 걸쳐 문답이 서술되어 있고 10조목은 답은 없이 問만 기재되어 있다. 본문에 앞서 실려 있는『答朝鮮醫問題詞』에는 조선사절과의 문답이 이루어진 절차와 간행경위가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어 본문에서는 상습질환과 난치병 치료에 대한 문답이 이루어졌는데. 예컨대 小便不利, 咳嗽, 水腫鼓脹, 頭痛頭風, 痔漏, 불임과 월경질환에 대한 효과 좋은 치료법을 묻고 있다.

또 진료경험에서 우러나온 임상적인 애로점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있는데, 열성 눈병에 苦寒藥이 듣지 않는 이유는? 咽喉腫痛에 寒冷한 약을 써도 듣지 않는 이유는? 등등 일반적인 치료법의 허점에 대해 질문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왕응린의 답변에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薛立齋의 溫補學說의 영향을 짙게 풍기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과 중국간에 이루어진 의학문답에 관한 것으로 이 책보다 앞서 『醫林撮要』에 보이는 ‘中朝質問方’과 ‘中朝傳習方’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은 본서의 내용과 직접적인 상관성이 없으며 실물이 전하지도 않지만, 학술교류의 결과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의 문헌으로 여겨진다. 또 이 책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작성된 『醫學疑問』(1617년)은 조선의 御醫 최순립과 明의 傅懋光 등 太醫와 敎習官 사이에 이루어진 문답을 적은 것으로 내용상 가장 근친성이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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