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90)- 洪進의 醫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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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90)- 洪進의 醫案(1)
  • 승인 2010.07.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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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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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熱案
歷代名醫醫案(190)- 洪進의 醫案(1)

洪進(1541~1616): 조선 중기의 문신. 1595년 대사헌이 되고 藥房提調를 겸하였고, 이후 동지중추부사, 지춘추관사 겸 이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뒤 1600년 왕비 懿仁王后가 죽자 殯殿都監提調가 되었다. 

勞熱案

내용:
약방 제조(藥房提調) 홍진(洪進), 부제조(副提調) 유희서(柳熙緖)가 아뢰기를, “신들이 의관(醫官)과 상의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상의 증후(症候)는 본디 심열(心熱)이 쌓여서 생긴 증세이므로 침을 맞아서 경락(經絡)이 맺힌 곳을 뚫어야 하는데 일기가 추워지고 있고 침의(針醫)도 다 모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근일 거둥이 잦아서 노열(勞熱)이 필시 많을 것이니 침을 맞기 전에 우선 삼미도적산(三味導赤散)을 조금 달여서 좌금환(左金丸) 30여 환(丸)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 약은 생지황(生地黃)·목통(木通)·생감초(生甘草) 세 가지 종류인데 성미(性味)가 달고도 담담하여 수시로 진어하실 수가 있습니다. 좌금환은 황련(黃連)을 불에 구워서 고한(苦寒)한 성질을 변하게 한 것이어서 진어해도 무방합니다. 이 약을 다섯 번 복용하도록 지어 올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선조실록>선조33년, 1600년, 1월9일).

○ 홍진과 유희서가 회계(回啓)하기를, “김영국에게 물어보니 ‘일기가 아직 추워 점혈(點穴)하고 침을 놓을 적에 의대(衣襨)를 벗으시게 하기가 매우 미안스럽다. 사세가 이달 안에는 놓기가 어려우니 다음달 열흘 사이에 우선 일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놓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김영국은 상의 분부대로 내려 보냈다가 뒤에 올라오게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아뢴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홍진이 이어 아뢰기를, “신들이 의관(醫官)과 상의하여 본 바 침을 놓을 기일이 아직 멀었으니 그 사이에 탕약(湯藥)을 진어하여 예방해야 하는데, 도적산(導赤散)은 공력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청심환(淸心丸)에다가 목통(木通)·연교(連翹), 적복신(赤茯神)을 가미시켜 다섯 번 복용하도록 진어하는 것이 온당할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약을 지어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선조실록> 선조33년, 1600년, 1월20일).

설명: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해에 洪進이 선조의 질병에 대해 보고한 기록이다. 洪進은 문신임에도 의학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596년부터 藥房提調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당시 許浚이 御醫로 있었기에 아마도 許浚과 상의한 내용일 것으로 사료된다.

변증분석:
선조는 이보다 1년 전에 耳鳴, 難聽, 오른손의 부기, 왼쪽 무릎의 酸痛, 心病, 四肢不利 등을 앓아왔고, 수일 전부터 痰症, 胸痛, 感氣, 眩氣症 등의 증상을 알아왔다(이해웅, 김훈의 「조선시대 선조의 질병에 관한 고찰」을 참조함). 壬辰倭亂이 1년 전 종료된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심신이 매우 피로한 상태에 놓여 있었고 ‘勞熱’이라고 표현된 것은 이러한 증상에 대한 판단을 말한 것이다. ‘心熱이 쌓여서 생긴 증상’이라는 말도 선조의 증상에 대한 판단을 내린 말이다.

치료분석:
導赤散을 1월6일부터 사용해 오다가 1월20일 무렵이 되면 淸心丸에 木通, 連翹, 赤茯神을 가미하고 있다. 이것은 선조의 증상을 御醫들이 정신적인 갈등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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