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92)- 洪進의 醫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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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92)- 洪進의 醫案(3)
  • 승인 2010.07.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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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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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心案

歷代名醫醫案(192)- 洪進의 醫案(3)

洪進(1541~1616): 조선 중기의 문신. 1595년 대사헌이 되고 藥房提調를 겸하였고, 이후 동지중추부사, 지춘추관사 겸 이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뒤 1600년 왕비 懿仁王后가 죽자 殯殿都監提調가 되었다.

淸心案

내용: 홍진과 유희서가 회계(回啓)하기를, “김영국에게 물어보니 ‘일기가 아직 추워 점혈(點穴)하고 침을 놓을 적에 의대(衣襨)를 벗으시게 하기가 매우 미안스럽다. 사세가 이달 안에는 놓기가 어려우니 다음달 열흘 사이에 우선 일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 놓는 것이 좋겠다’ 하였습니다. 김영국은 상의 분부대로 내려보냈다가 뒤에 올라오게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하니, 아뢴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홍진이 이어 아뢰기를, “침을 놓을 기일이 아직 멀었으니 그 사이에 탕약을 진어하여 예방해야 하는데, 도적산(導赤散)은 공력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청심환(淸心丸)에다가 목통(木通)·연교(連翹), 적복신(赤茯神)을 가미시켜 다섯 번 복용하도록 진어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이 약을 지어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선조실록> 선조 33년, 1600년, 1월20일).

○ 약방(藥房)이 아뢰기를, “전에 지어올린 청심산(淸心散)을 지금 진어하셨습니까? 성후(聖候)는 어떠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근래 일기가 고르지 못해서 그런지 도로 감기가 들었다. 그래서 병세를 보아가면서 진어하려 한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신들이 의관과 상의하였더니, 감기 증세가 오래도록 낫지 않으면 열담(熱痰)으로 변할 우려도 있으므로 부득이 약을 지어 올리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였습니다.”【삼소음(蔘蘇飮)을 지어 올렸다】

○ 약방이【홍진과 유희서】 아뢰기를, “전에 지어 올린 청심산을 지금 진어하셨습니까? 성후(聖候)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근래 일기가 고르지 못해서 그런지 도로 감기 증세가 있다. 그래서 그 약은 병세를 보아가면서 진어하려고 아직은 진어하지 않고 있다” 하였다(이상 <선조실록> 선조 33년, 1600년, 1월22일).

설명: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心熱로 인한 선조의 지병에 대해 논의한 醫案이다. 洪進은 약방도제조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辨證分析: 心熱로 인한 煩燥, 痞悶, 脾胃傷損, 虛火上擾, 腎虛證(이해웅, 김훈의 <조선시대 선조의 질병에 관한 고찰>, 2002)의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양난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선조의 심신상태를 드러낸다. 이때 선조의 나이는 49세였다. 감기의 증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參蘇飮을 사용한 것도 御醫들이 판단하기에 七情이 바탕에 깔린 원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治療分析: 이전에 導赤散을 사용했고 淸心丸에 木通, 連翹, 赤茯神을 가한 것은 心熱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감기 증세가 오래도록 낫지 않으면 熱痰으로 변할 우려가 있으므로 參蘇飮을 처방하고 있는데, 이 처방은 선조의 증상에 가장 잘 들어맞는 明方이다. 參蘇飮은 <東醫寶鑑>에서 주치증을 “治感傷風寒頭痛發熱咳嗽及內因七情痰盛胸滿潮熱”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內因七情痰盛胸滿潮熱”이 중요한 키워드이다.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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