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칼럼] 부대찌개와 우리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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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칼럼] 부대찌개와 우리의 자존심
  • 승인 2003.04.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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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초여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부대찌개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어떤 방송국의 프로그램 진행자가 “부대찌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으며, 부대찌개 전문음식점도 많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대표적 퓨전음식”이라며 극찬하는 것을 듣고, 개탄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익명의 독자의견으로 비난을 해왔다. “너는 자장면도 안 먹고, 김밥도 안 먹냐?”는 등 입에 담기도 거북할 정도의 욕설까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독자는 비난한 사람에게 ‘부대찌개’는 원래 ‘꿀꿀이죽’인데도 오히려 점잖게 표현한 이 기사를 놓고 왠 욕이냐며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고, 혹시 부대찌개 사업을 하는 사람이거나 부대찌개에 중독된 사람이 아니냐는 되물음을 한 독자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부대찌개의 재료가 미군들이 먹다 남은 찌꺼기로 만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의 잇자국이 선명한 햄으로 부대찌개를 끓였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러면 부대찌개는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이는 부대찌개를 ‘햄과 소시지의 행복한 만남’ 정도로 말한다.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웬 자존심 타령이냐고 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이 부대찌개를 먹더라도 탄생의 의미를 새겨본 다음에 즐겨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군들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6.25전쟁 이후에 군사문화(G.I문화)란 것이 생겼으며, 이 군사문화의 한 부류로 탄생된 대표적 ‘사생아 음식’이 부대찌개인 것이다. 음식다운 음식이라기 보단 어정쩡하게 타협한 산물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미군 규정은 군수품으로 지급된 햄, 소시지 등이 일정한 유통기한이 지나면 자동 폐기하도록 돼있다. 더구나 먹는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단 하루만 지나도 여지없이 폐기처분하는 것이 흔히 얘기하는 ‘미국식 합리주의’란다.

전쟁 직후 먹을 것이 턱없이 모자라던 시절, 특히 고기를 거의 먹을 수 없었던 우리에겐 미군이 버린 햄과 소시지는 그야말로 소중한 음식이었다. 고기대신에 이 햄과 소시지에 김치를 넣어 끓인 ‘부대찌개’는 그땐 그야말로 환상적인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이 ‘부대찌개’인데 부대 즉 미군부대에서 나온 찌개란 뜻이다. 이 음식의 원조격인 미군부대 주변에서는 존슨탕(Johnson탕)이라고 불려진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김서방이 대표적인 사람이듯이 미국 사람들에겐 존슨이 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모양이다.

싼값에 단백질(고기?)을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의정부, 동두천, 평택 등 기지촌 주변에서부터 시작되어 차츰 전국으로 퍼져 나간 것이 바로 이 음식 ‘부대찌개’이다. 우리나라의 주둔군이 내다버린 찌꺼기음식을 우리는 좋다고 먹는다.

그때는 정말 어려운 때여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아직 IMF가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부 극빈층을 제외하고는 전쟁직후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식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지금에 와서도 자존심마저 저버린 채 미군의 찌꺼기음식에 기뻐하고, 맛있게 먹어야 할까? 물론 지금의 햄과 소시지는 엄밀히 미군들이 버린 것이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부대찌개’ 출생의 비밀을 알고서는 자존심을 폐기처분한 것이 아니라면 좋아할 일이 아닐 것이다. 더더구나 일부이겠지만 미군이 먹다버린 음식을 수거해서 부대찌개를 만든 것이 적발되었다면 더욱 자존심 상할 일이다.

음식 좋아서 먹는 것이야 굳이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생아 음식을 ‘최고의 퓨전음식’이라고 표현하는 잘못은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더구나 정통 서양음식 재료 중의 하나인 햄, 소시지가 우리의 대표적 전통식품인 김치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차라리 어정쩡한 사생아 음식을 먹을 바에는 정통 서양식을 먹는 것이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덜 입히는 일이 아닐까? 우리의 체질에 맞는 음식보다 서양음식을 무분별하게 좋아한 나머지 대장암 등 각종 병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학자들의 발표도 있었다. 이제 음식을 먹을 때도 우리의 건강, 우리의 자존심을 생각할 필요는 충분할 것이다.

김영조(민족문화운동가)
연락처 : 02)969-7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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