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41) | 조선중기의학 변화의 중심, 의림촬요와 동의보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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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41) | 조선중기의학 변화의 중심, 의림촬요와 동의보감①
  • 승인 2011.01.0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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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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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선점당한 조선의학자들의 프로토타입


대한민국의 휴대폰 업계는 지금 초비상이다. 애플사의 아이폰이 갖는 파급력이 업계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은 했겠고 준비도 했겠지만, 불행히도 새로운 트렌드를 우리나라 업체들이 선점하지는 못했다.

인쇄문화의 발달과 주자학의 확산으로 14세기 이후의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하나의 문화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이 당시에 있었던 의학계의 변화는 지금의 국제화의 전초전을 보는 듯하다. 이미 중국의 고급의학기술에 맛을 들인 조선의학계는 약용 가능한 국산약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자생하지 않는 수입약재의 양도 점차 늘려갔으며 중국의료기술을 포함한 기존의 의료기술을 토대로 「의방유취」라는 국가의료 DB도 구축했다. 그래서 더 이상의 큰 이슈는 없는 듯 해보였지만, 조선 중기의 의학계는 1500년대 중국발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이 건국 초기부터 의학의 기조로 삼은 것은 중국 송대까지의 의학체계였다. 송나라에서 전국 규모의 의료 DB를 구축할 당시만 해도 엄청난 규모의 의료정보여서 더 이상의 치료기술은 없는 듯해 보였지만, 남송 이후 새롭게 등장한 부류의 의학자[유의라고 대표되는 신유학적 사고에 기반한 의학자]들은 무분별한 치료기술의 남용이 갖는 폐해에 주목했다.

게다가 자신들이 믿는 우주의 질서인 이기론에 입각한 인간관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학체계도 필요했다. 그래서 기존의 치료경험을 선별하고 재구성하며 재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했던 작업은 주로 기존의 치료기술 중에서 유용한 것을 추려내고 거기에 다시 합리적으로 해석을 붙여가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다소 여러 의가가 나름의 주장을 펴면서 난립해가는 양상을 보이지만, 명대 이후부터는 점차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진행해가며, 1500년대부터는 그러한 결과가 가시화된다.

이 시기에 간행된 중국의서들의 특징은 보다 많은 의료정보를 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체계적으로 의료기술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들이 주로 담겨져 있다. 1515년에 간행된 「의학정전」, 1536년의 「단계심법부여」가 초기버전에 해당한다면 후기로 갈수록 그 체계는 더욱 정형화되고 포괄하는 증후의 영역 및 응용 가능한 치료기술들도 점점 늘어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입문」(1575), 「만병회춘」(1587), 「본초강목」(1596), 「침구대성」(1601), 「경악전서」(1624)들이 후기버전들에 해당한다. 「의방유취」작업을 통해 무수히 많은 의료정보들을 정리하면서 내의원에 속한 조선의학자들이 가졌던 의문들, 이 정보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토타입들이 중국에서 나와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휴대폰업체들이 다음 세대의 휴대폰은 어떤 형태일까라고 고민하는 중에 아이폰이 시중에 나와 버린 것처럼 말이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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