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45) | 조선중기의학 변화의 중심, 「의림촬요」와 「동의보감」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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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45) | 조선중기의학 변화의 중심, 「의림촬요」와 「동의보감」 ⑤
  • 승인 2011.02.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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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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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은 中醫書 패러디가 아니다

율곡 이이(1536-1584)의 대표작인 「성학집요」를 보면 무수한 중국 지식인들의 담론이 나온다. 율곡 선생은 자신의 저서 속의 무수한 패러디에도 불구하고 조선성리학을 이룬 대가로 평가받는다.

필자는 한 번도 그것 때문에 율곡 선생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경우를 본적이 없다. 선현의 지혜와 통찰력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만들어가는 것,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 당시의 학문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간행되었으며, 중국의 성리학을 조선화시킨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의를 가진, 중국의학을 조선화시킨 「동의보감」은 지금까지 줄곧 중국 의서의 패러디라는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철학과 사상은 패러디해도 되는 것이고, 우수한 치료기술은 패러디하면 안 되는 것인가?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하는 것 아닌가?

16~17세기 허준이 「동의보감」을 만들 때, 당시 동아시아의학의 조류는 얼마나 많은 치료기술을 확보하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다. 기존의 넘쳐나는 치료기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하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정전」이나 「의학입문」 같은 상대적으로 볼륨이 작은 의서들이 국제적으로 널리 명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의보감」은 독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의학정전」이 새로운 의학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시장을 선점했다고 한다면, 「의학입문」이 노래 싯귀의 형태로 당대 지식인들의 독서습관에 부응했다면, 「동의보감」은 검색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의서들과 차별화할 수 있었다.

「의학정전」보다는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고, 「의학입문」보다는 치료기술을 선택하는데 훨씬 편리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의학정전」과는 용량이 달랐고, 「의학입문」보다는 인터페이스의 버전이 훨씬 높았던 셈이다. 이 책이 악플러들의 말처럼 단순히 기존 의서를 짜깁기한 것으로 끝났다면, 중국, 일본, 베트남 같은 외국에서 이 책을 구하려고 열광한 것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중국 사신들이 와서 이 책을 많이 싸들고 간다고 저서에서 직접 언급할 정도였으며, 중국과 일본 현지에서 간행된 기록만도 20여 차례이다.[김남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과거에 열광했기 때문에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열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효용성 때문이다. 수 천년 동안 축적해온 동아시아 치료기술은 16세기를 거치면서 고도로 집약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임상가들에게 괜찮은 책이라고 평가받는 의서들은 거의가 그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의학입문」과 「의학정전」을 포함해서 「경악전서」 「본초강목」 「만병회춘」 등.

그리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도 그 시대에 집약된 동아시아 치료기술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책들 중에서 「동의보감」이 유독 완전무결한 책은 아닐 것이다. 다만 ‘One of the Best’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필자의 말이 아니라 우리 역사가 보여주는 사실이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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