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47) |「승정원일기」 속의 의학기록 ①
상태바
Story & History(47) |「승정원일기」 속의 의학기록 ①
  • 승인 2011.03.10 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웅석

차웅석

contributor@http://


국왕 질병 세세히 기록, 「실록」과는 또 다른 가치

우리나라가 보유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은 「조선왕조실록」 「훈민정음」 「승정원일기」 「직지심체요절」 「고려대장경판」「조선왕조의궤」 「동의보감」 등 모두 7건이다.

굳이 아주 먼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근 500년 사이에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같은 대혼란을 거치는 동안에도 이만큼 세계적으로 기념할만한 기록유산이 남아있다는 것은 곱씹을수록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위와 같은 굵직한 기록물 외에도 우리 문화는 많은 기록과 관련된 문화유산들을 가지고 있다. 집집마다 정리한 족보들이 그 중의 하나일 것이며,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한 때는 골동품가게 구석에 거의 버려지다시피 쌓여있었던 조선후기 필사본 경험방들이 그렇다.

지방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간행하던 郡誌와 邑誌 등도 이에 해당한다.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을 여행할 때도 말 위에서, 휴식하는 곳에서 붓과 종이를 들고 뭔가를 적고 있었다. 적다가 말고 구겨서 버린 종이가 일본인들 사이에 고가에 매매가 되었다는 후일담을 통해서 비록 그 사실을 알긴 했지만, 기록물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뭔가 이벤트가 있었던 곳에서는 항상 누군가는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필자가 본고에서 주목하는 기록은 「승정원일기」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단일 역사기록으로도 세계 최대인 「승정원일기」는 총 3245책이며, 글자 수는 2억4천250만자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이 888책 5400만자이고, 중국의 「二十五史」가 총 3386책에 3990만자인 것에 비하면 월등이 많은 기록이다. 게다가 조선왕실에 승정원이 설치된 1400년[정종2년]부터의 기록까지 합한다면 훨씬 엄청난 양이었겠지만, 불행히도 현재 남아있는 것은 화재로 소실된 절반 정도의 기록뿐이다.

현존하는 기록은 1623년 3월 인조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인수하고 궁내 주요 왕실 어른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기사를 시작으로 1910년 8월 순종이 일본에 국권을 양위한다는 기사까지 총 288년 5개월간의 기록이다.

1623년 이전의 기록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가, 선조 때에 다시 복원한 것을, 영조 20년에 있었던 화재로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인조대 이후의 기록은 그나마 「조선왕조실록」과 각 관청에서 보관 중이던 사료들을 모아서 어느 정도 복원했지만, 그 이전의 기록은 복원이 불가능해 현재 인조대 이후의 기록만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이 한 왕대가 끝나면 관련기록을 모아 다시 정리해서 인쇄본으로 편찬한 공식 반포기록에 해당한다면,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에서 국왕관련 대소사를 매일매일 시간 순으로 기록해서 보관해놓은 비서실 업무일기이다.

「실록」과는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특히 국왕의 질병에 관한 세세한 내용은 「실록」에서는 지극히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거나 혹은 전혀 기록할 수 없는 것들까지 확인할 수 있다.

뭔가를 기록한다는 행위는 기록의 필요성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차원 높은 문화적 행위이다. 어느 역사학자는 “역사에서 가장 나쁜 것은 기록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