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52) | 조선의 침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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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52) | 조선의 침구학
  • 승인 2011.04.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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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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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절정에 달해
일본·중국에 까지 명성 떨쳐

현재 서양에서도 침구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중국 등지에서 배워가다가 이제는 구미권 자체에서 교육을 하고 자격자를 배출해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구미권에서 침 시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침 시술에 신기해하면서도 정작 침 시술을 받으러 가기까지는 아직 넘어야할 문화적 장벽들이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사람들처럼 어디가 쑤시고 결리면 ‘침이나 한번 맞아볼까?’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문화가 아니다.

「중국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의 저자 야마다게이지는 동아시아의학의 특징으로 침구학을 꼽고 있다. 약초이용, 도인안마술, 정신과요법 등은 세계 다른 문화권에서도 이미 경험한 치료기술이지만, 유독 침구술만큼은 한자문화권의 의학에서 유일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이 침구와 관련해서는 우리민족과 엮인 사료들이 적지 않다.

「산해경」의 ‘石’의 산지가 유일하게 동방으로 기록되어있는 것에서 시작해서 폄석의 기술이 동방에서 유래했다는 「황제내경」 문장, 「일본서기」의 고구려의 유명한 침구의사 鞍作得志에 얽힌 이야기와 일본의 紀河邊幾男磨가 신라에 가서 침술을 배워 일본의 유명한 침구의사가 되었다는 기록 등이다.

이 기록들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런 이야기가 회자되어 글로 기록될 정도라면, 우리 민족들이 침구술에 대해서 무언가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기로 오면 이러한 침구술의 특징이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중국에는 없는 鍼灸擇日에 관한 전문서가 조선 초기에 편찬되었고, 조선의 대정치가였던 정도전과 유성룡이 지었다고 하는 의서도 각각 「진맥도결」과 「침구요결」이라는 침구관련서적이다.[오준호, 오장변증을 활용한 조선침법연구]

조선의 침구술은 조선중기를 지나면서 절정에 달해가는 듯하다. 「침구경험방」의 저자 허임은 24세부터 선조의 주치의로 활동했고, 의관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영평현령에서 양주목사, 남양목사로 승진해간 이력도 가지고 있다.[박문현, 허임침구경험방 연구]

번침술로 유명한 이형익은 내의원 의원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인조의 임종 때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다. 원래는 인조자신도 괴이하다고 여겨 달갑지 않아 하다가 내의들의 거듭된 권유에 한번 침술치료를 받고는 소위 이형익의 팬이 되어 버린 경우이다.[김인숙, 인조의 질병과 번침술]

「난경」의 ‘補母瀉子’라는 침법의 원리가 중국에서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다가 임상 각과의 질병에 두루 응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사암침법이 나온 것도 이 시기이다.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듯이 18세기경 조선에 유학왔던 오사카출신의 山川淳菴은 허임의 「침구경험방」의 일본판을 간행하면서 “유독 조선을 침술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부른다. 평소 중국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했다는 말이 정말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라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사람이 ‘침이나 맞아볼까’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드는 배경의 깊은 이면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침법을 연구하고 치료의 공을 쌓아온 선배의사들의 노고가 있었던 듯하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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