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역사교육이 갖는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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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역사교육이 갖는 의의
  • 승인 2011.04.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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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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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모든 고교생은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배워야 한다”는 고교 역사교육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역사에 대한 중요성이 단 한순간도 간과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이상하리만치 과소평가 되었다. 아마도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할 당사자들이 우리의 역사를 돌이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죽어라고 고생했고, 구차한 줄 알면서도 먹는 것 가지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한 사람들에게 구한말 지식인들의 시대착오적 정세인식, 식민지배하의 고통, 전쟁에 얽힌 상처를 다시 돌이키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고문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마치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천대에 시달린 끝에 집을 나와 버린 자식에게 “부모의 은혜는 하늘과 같다”라고 말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때는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그 사람들은 미친 듯이 노력했다. 자신들이 잘 살고 싶어서 그러기도 했겠지만, 절대로 그 가난을 대물림 해줄 수 없다는 비장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제는 그 아이들에게 우리의 역사가 최고의 역사는 아니었지만, 최선의 역사였다는 이야기를 해주어야할 때이다.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지혜를 발휘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우리 아이들이 또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만든다면 우리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실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혹독한 근현대를 지내온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한국사의 필수과목 지정은 그런 의미에서 환영받아야 할 결정이다.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1592년에 일본군 제1군 단장 가토기요마사가 부산 동래성에 상륙했다는 기록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력으로 조선을 초토화시킨 일본인들의 만행을 들춰서 대를 이어 복수시켜야 한다는 분노를 키우는 것도 아니다. 왜 그때의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에 그토록 무기력했는지, 그리고 그 전란의 폐허를 어떻게 딛고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머리에 땅을 박은 일이 치욕이었다고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망할 때 망하더라도 청군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항복문서에 조인하고 잠정적인 휴전을 유지하면서 인민들의 희생을 막는 것이 중요한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정을 세세하게 알려주는 것이 우리의 역사교육일 듯하다.

한의학 역사교육도 마찬가지이다. 1613년 「동의보감」 간행, 1900년 이제마 타계 같은 사건들의 단편적인 암기가 아니라 우리 한의학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한국한의학의 정체성을 만들어오게 되었는지, 중국의학의 영향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학문화를 만들어 갔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조선의 의료인들이 의생으로 전락되었다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이유를 하나 더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의생’이라는 근대식 면허제도 속에 우리 전통의 치료기술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갔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알려주어야 할 때이다.

역사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대처했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갔는지 반추해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차웅석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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