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88) - 「博施良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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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88) - 「博施良方」
  • 승인 2011.05.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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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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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術을 널리 베풀어, 博施濟衆

박시양방
진료실을 장식했던 편액이나 족자에 많이 쓰였던 글귀 가운데 하나로 ‘博施濟衆’이란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논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군주나 정치인들이 정사를 잘 돌보거나, 의료인들이 희생적인 의술을 펼칠 때 아름답게 표현한 말로 흔히 사용해 왔다.

「論語」 雍也편에 子貢이 말하기를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如何)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어찌 어질 뿐이겠느냐? 반드시 성인일 것이다. 堯舜도 그와 같이 못함을 걱정하였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위의 글을 살펴보면 우리가 보통 의술을 인술이라 부르는 것이 한낱 미사여구로 치장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훗날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숭고한 의미를 간직한 말이라 하겠다. 이러한 뜻은 조선 개국 초만 해도 지극히 현실적인 治世의 이념으로 적용되었는데, 바로 「鄕藥濟生集成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문에는 태조가 개국한 다음 博施濟衆할 뜻으로 곤궁한 백성[窮民]들이 병이 들어도 의약을 얻지 못하는 것을 측은하게 여겨오던 차에 趙浚과 金士衡이 태조의 마음을 헤아려 濟生院을 두기를 청하고, 金希善을 시켜 향약을 채취하여 백성들의 질고[民疾]를 널리 고치게 하였다고 했으니 의약서를 간행하는 일 또한 仁政을 행하는 국왕의 德業으로 손꼽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역시 서명으로 보아 그러한 의도에서 펴낸 것이라 여겨지며, 주로 구급질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체 분량은 본문 12면에 불과한 매우 간략한 간이방서로 서문과 목차도 보이지 않으며, 저자와 저술연대도 알 수 없다.

내용은 救五絶, 安胎催生藥方, 異傳不出天花經驗奇方, 經驗疾奇方, 續附經驗救急良方, 誤傷救急, 一切中毒救急良方, 豫防痰病要訣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오절’편에서는 自縊, 溺水, 凍死, 牆壁壓, 魅를 ‘五絶’의 증상으로 꼽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안태최생약방’에는 安胎와 催生에 사용하는 약방, ‘이전불출천화경험기방’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예방하는 처방, ‘경험학질기방’에서는 학질치료에 잘 들었던 효과 좋은 처방을 소개하였다. ‘속부경험구급양방’은 여러 가지 구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써놓았는데, 건곽란, 부스럼, 더위 먹어 쓰러진 병, 쇼크사, 신생아가 울지 않을 때의 조치법, 난산 치료법 등이다.

‘오상구급’편에서는 담이 무너져 깔렸을 때, 얻어맞았을 때, 도끼에 손가락이 잘렸을 때 등의 처치법을 적어 놓았다. ‘일체중독구급양방’은 여러 가지 음식물, 약물, 금속성 물질 등을 잘못 삼켰을 때의 해독법과 뱀에 물렸을 때, 금속 침이나 기구를 잘못 삼켰을 때의 위급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 ‘예방담병요결’은 痰病을 예방하는 법과 치료제를 기록해 놓았다.

이렇듯 이 책은 구급질환과 학질, 두창 등 당시 유행했던 전염성 질환, 부인, 소아과 질환 등 평상시 자주 경험하거나 사용 빈도가 높은 질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博施濟衆이라는 염원을 담은 이 책은 조선시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하기 쉬운 상습성 질병과 부인이나 소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도를 예비하려는 의도에 따라 편찬한 간이의서로 목활자본 1책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의료의 지향점을 살펴볼 수 있으며, 구급의학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연구자료라 할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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