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03) - 「소문사설」②
상태바
고의서산책(503) - 「소문사설」②
  • 승인 2011.09.01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contributor@http://


食醫의 전통, 食治 레시피

 

현재 이 책은 필사된 3종의 이종사본이 전해지고 있을 뿐인데, 국립중앙도서관에 1종, 종로도서관에 2종이 보관되어 있다. 이 책처럼 내의원에 근무하는 의관이 食治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용지식을 적어 남긴 것으로는 「山家要錄」과 「山林經濟」를 예로 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전통은 세종대에 활약한 全循義나 조선 중기 柳重臨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중인계급의 기술직 관리들이 단순히 궁중어약이나 飮膳을 올리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각종 생활도구의 개량과 일용지식의 생산에 앞장서왔음을 볼 수 있다.

전반적인 책의 내용은 앞쪽에 배치한 ‘온돌 만들기’와 ‘이기용편’에 ‘식치방’을 더하여 전체를 구성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왕실에서 국왕의 질병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얻어진 필요지식과 개발된 기술을 누구나 응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인간의 건강생활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의식주에 관계되는 일용잡방을 망라하여 생활백과전서를 꾸몄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백과사전에 소개한 내용 가운데는 이 책을 조선 후기에 편찬된 조리서라고 기재한 곳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식치방이 정리되어 있다. 더욱이 주목할 점은 여기에 실린 식치방이 중국의 조리서를 인용하여 전재한 것이 아니고, 당시에 솜씨 있는 조리사의 비법을 직접 듣고 옮겨 적은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숙수 박이돌(朴二乭)이 만든 토란떡[芋餠], 약방문을 담당하는 민계수의 종 차순이 만든 붕어찜(鮒魚蒸) 등 특이한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식치방’ 藕粉粥이라는 항목 속에는 저자 자신이 을미년(1715)에 燕京에 다녀왔다는 말과, 선왕이 병으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말을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임금을 지근거리에 보좌하던 내의의 직분을 수행하였음과 약성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의원으로서 식치방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 책에는 宦官의 집에서 만들고 있던 食醯와 지방 명산물인 순창고추장 송도식혜 등을 소개하고 있어, 지역을 단위로 전통성을 표방하는 전통지식재산권을 주장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근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다.

특히 순창고추장에 대한 기록은 지역특산물의 시원과 제법을 살펴볼 수 있는 결정적인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저자가 명나라로 가는 사행사절의 일원으로 갔다 오면서 실제로 경험한 외국 조리법까지 소개하였다.

예를 들면, 鷄蛋湯은 직접 북경에서 먹어본 것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일본의 생선묵과 비슷한 요리로 가마보곶(可麻甫串) 만드는 법을 적어놓았다.

「소문사설」에 실려 있는 ‘식치방’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에 당시 중인계급이던 역관 내관 상인들은 비록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신분차별을 받았지만, 실용기술 분야에서 다양한 기술과 도구를 개발하여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들을 양산하는데 앞장서 왔던 것이다. 특히 지방의 향토음식 제조법이나 중국 일본의 조리법까지 도입하여 새로운 조리기법을 탐구하여 안전하고 몸에 좋은 식단을 만들어내는데 열중하였다.

食治方에 수록된 종류로는 동아찜, 송이찜, 메밀전병, 토란떡, 사삼떡, 곤붕어[煨鮒魚], 모로계잡탕(母露鷄雜湯), 석화만두 등 30여종이 이른다. 이 중 黃雌鷄餛飩은 「의학입문」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고 구별하였고, 藕粉粥조에는 「본초」에는 연뿌리 가루에 관한 언급이 없고 明代 張璐의 「張氏醫通」에 처음 보인다며, 그 연원까지 조사해 밝혀놓았다.

식치 전문가로서 새로운 요리와 음식을 장만할 때는 먼저 藥性과 그 근원을 찾아 방문을 마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