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04) -「소문사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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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04) -「소문사설」③
  • 승인 2011.09.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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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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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도 기록한 百事雜方 실용지식

 

특별히 이 책에는 식치방에 고추장이 등장한다(淳昌苦草醬造法). 고추장 만들기가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1766년에 나온 柳重臨의 「增補山林經濟」이다.

이전까지는 고추장이 170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야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저자 이시필의 활동시기와 이 책이 대략 1720∼1722년경에 쓰인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기간 상한연대를 소급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져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수록한 내용이 너무 많으니 모두 소개할 수는 없고 의약에 직접 관계된 부분만 몇 조목 더 살펴보기로 하자. 製法에는 쑥의 효용에 대해 적은 짤막한 글이 실려 있는데, “5월 5일 날이 밝을 무렵에 사람의 형상을 한 쑥을 캐어 그 줄기를 잘 말려서, 쑥심지(灸炷)를 삼아 뜸질을 하면 灸瘡에 윤기가 돌면서 나을 때까지 아프지 않다”고 했다. 또 이것은 明나라 李時珍이 한 말로서 “그는 月池翁 李言聞의 아들인데, 神醫로 세상에 이름이 크게 알려져 있다”고 적혀있다.

여타 제법편에는 쑥 찧는 법(搗艾法), 토사자 찧는 법(搗菟絲子法), 서각가루 장만하는 법(犀角作末法), 복령 수비법(茯苓水飛法) 등 약재를 修治하는 방법도 적지 않게 수록돼 있어 참고해 볼 만하다.

특별히 주목해야할 내용은 ‘마취법(麻法)’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보면 回回의 押不蘆라는 풀을 갈아서 술에 타 마시면 온몸이 죽은 것처럼 마취되어 칼이나 도끼로 찔러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흘이 지난 뒤 해독제를 투여하면 깨어난다고 하였는데, 御藥院에서도 저장해 두는 약이라고 하였으니 元代 황실의 ‘御藥院方’으로 사용했던 방법인 것 같고 아마도 고려시대에 전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저자는 창자를 가르고 위를 세척하는 데는 아마도 이와 같은 약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또 골절과 탈골을 치료할 때에는 草烏를 마취약으로 쓰고 해독제로는 생강을 쓴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 만다라화의 성상을 자세히 기록한 후에 그것의 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씨를 가루로 장만하여 술에 타서 석 잔을 마시면 잠시 후에 마치 술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해진다. 종기를 째고 뜸을 놓을 때 먼저 이 약을 먹으면 아픈 줄을 모르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재미난 이야기는 저자의 소인배들이 싸움을 벌인 끝에 거짓으로 맞은 상처를 꾸며 관아에 송사를 벌이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방법은 莞花 잎사귀로 피부를 문질러서 맞은 상처와 같은 붉은 부스럼을 만들어 사람을 무고하는 것이니 관리 노릇을 하는 자는 몰라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지방의 목민관을 위해 법의학적인 판단에 소용될 만한 필수지식을 적어놓은 것이다. 아울러 물고기를 마취시켜 잡는데 소용되는 醉魚草, 莞花, 붓순나무(莽草), 쥐를 마취시킬 때 쓰는 가래나무 껍질(楸皮) 등도 소개하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제법의 말미에는 당시에 막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안경제조법(造眼鏡法)이 실려 있다. 어느 和尙이 눈병을 앓았는데, 거풍약과 청열약을 너무 많이 복용하여 귀가 먹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고 윙윙거릴 뿐이었다. 또 대변이 燥結하고 눈에 백태가 끼어 달빛이 어른거렸다. 장로가 말하기를 신수가 부족하여 음화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해설하고 天王補心丹을 처방하였다.

사람들은 서양의 유리안경이 그저 노인이 쓰기에 적당하다는 것만을 알지 본디 먼 곳을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줄을 잘 알지 못한다고 평하였다. 이 말은 명나라 張璐의 「醫通」에 나오는 얘기로 최신의 견해가 이 글 속에 담아 전해진 것이다. 당대 의관들을 통해 이루어진 신지식의 교류와 실용지식의 고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안 상 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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