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호모심비우스가 만드는 한의학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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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호모심비우스가 만드는 한의학의 희망
  • 승인 2012.02.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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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효

김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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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미국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던 연구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여러 전통의학이 근대화 속에 사라지거나 근대의학에 흡수되었는데 한의학에서는 이런 현상이 뚜렷하지 않았다며, 근현대 한국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해온 한의학에 호기심을 갖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도 이런 생소한 질문에 공감하고는 그에게 한의학에 대해 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해 볼 것을 제안하였다. 당시의 우리끼리 나눈 화두는 “한국사람은 왜 한의학을 선택하는가?”이었다.

몇 년 후 그 인류학자는 이 주제로 인류학 연구를 시작해 최근까지도 진행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전 세계 전통의학 관련 의료인 중 한국 한의사 집단처럼 뛰어난 인적 구성을 가진 사례는 유일하다”면서, “이런 인적자원과 한의학의 장점이 합쳐지면 앞으로 미래사회에 중요한 패러다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 다만 그것은 현재 한의사 집단에서 근대의학이 남긴 발자취를 평가하고 노력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달려있다는 여운을 남겨두었다.

1960~70년대 한국사회는 보릿고개의 가난을 벗어나는 것과 경제개발이 지상과제였다. 그런데 당시 높은 출산율에 따른 인구증가는 이를 악화시킨다고 판단해 각종 산아제한 정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하였다.

그로부터 단지 한세대가 흐른 오늘날 한국은 극심한 저출산과 가속화된 노령화로 향후 인구감소와 가용노동인력의 감소라는 큰 고민에 빠져있다. 과거 한국사회를 휩쓴 인위적인 산아제한정책이 현재의 출산율 감소와 연관성은 없지만, 100년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정책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종의 기원」을 저술한 생물학자 다윈이 탄생한 200주년을 기념해 세상은 그의 진화론을 완성하기까지의 일생과 업적을 재조명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를 통해 다윈과 ‘자연선택론’이 소통과 통섭의 주제로 스토리텔링 되면서 한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다윈은 혼자서 진화론의 태두인 종의 기원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집단지능을 100% 활용해 인류 최고의 업적인 진화론을 3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윈은 집단지능을 형성하기 위해 당시 다양한 분야와의 소통과 공감에 능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현대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집단지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웹2.0과 SNS의 등장과 확산이야 말로 소통을 통한 집단지능의 형성과 강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다윈의 자연선택은 단순히 1등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모습이 아니다. 생존에 위협이 된 환경에서 적응과 경쟁력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가장 뒤쳐진 집단만이 살아남지 못하며,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는 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기면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화는 인간사회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필자는 황제펭귄 집단이 남극 겨울의 영하 60도 날씨에도 서로를 보듬는 허들링(huddling)의 방식으로 극한 환경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공생의 모습을 떠올린다. 글쎄 그들이 인간만큼이나 영리해서 일까? 최 교수는 현생 인류의 학명으로 불린 영리한 인간인 ‘호모사피언스’를 공감하는 인간인 ‘호모심비우스’로 전환하는 것이 앞으로 인류가 지향할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영리함보다는 공감과 소통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2011년 6월 한의사협회에는 ‘한의사적정인력수급특별위원회’가 설치되면서 현재 한의사 인력 수급의 현황과 문제를 분석하고, 한의과대학의 교육의 질 향상 및 국민의료비 절감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 따라 최근 ‘한의사 인력수급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필자 역시 설문에 응답을 하면서 자꾸 마음속에 앞에 언급한 다윈의 자연선택, 소통과 공감 등의 주제어가 떠올랐다.

한의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느끼며, 해법을 찾기 위한 여러 노력 속에 이 같은 고육지책의 설문조사가 이뤄지는 것 같다. 더욱이 12개 한의과대학의 정원(750명)과 편입학 등의 특례입학 인원(100여명)으로 한의사 인력 수급의 과잉을 초래한다는 점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접한 설문은 왠지 과거 산아제한정책이 떠오르면서 위원회가 의도하는 인력수급 정책이 현실의 문제를 일차방정식으로 풀기 위한 시대적 방편일 뿐, 다음 세대의 발전과 공생을 위한 미래지향적 대안으론 공감이 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필자의 섣부른 판단이길 바랄뿐이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극적인 진화의 시작은 생존환경의 극변 속에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나는 인류의 선택과 행동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중동지역에서 번창한 메소포타미아문명이 농업기반의 붕괴로 생존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개척함으로써 세계 신석기혁명과 인류문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인류는 생존환경의 변화를 겪을 때마다 단순히 인구수를 줄이는 산아제한 보다는 외부세계로의 확산이란 선택으로 자연선택론 속의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한의사 인력수급을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이해하는 것이 부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다윈의 진화론이 단순히 생물학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인문사회학을 넘어 인류문명사회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기에 한의사 집단의 판단과 선택에서 인류가 거둔 진화의 방식을 배워보는 것도 중요하며, 다윈이 실천한 집단지능의 가치를 유능한 한의사 집단에서도 발휘하여 다음세대를 위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中庸」에서 언급한 “인간은 자기를 바르게 하면서 나의 삶의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서 구하지 말아야 한다(正己而不求於人). …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아니하며,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치 아니한다(上不怨天 下不尤人)”에 바탕을 둔 지혜로운 집단지능이 작용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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