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지금까지 한의사를 위한 한약제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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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지금까지 한의사를 위한 한약제제는 없었다
  • 승인 2012.02.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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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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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김 윤 경

한약제제는 제약회사에서 나온 ‘의약품’이다. 의약품은 자료를 갖춰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 GMP시설에서 생산되는 안전성, 유효성, 안정성, 균일성의 조건을 갖춘 약품이다. EBM시대에 첩약처방은 의약품의 조건들을 갖출 수 없지만 제제는 갖출 수 있다.

물론 현재 나와 있는 모든 한약제제들이 의약품답지는 않다. 기존 한약서의 한약제제들은 문헌근거를 인정받아 안전성 유효성 자료를 면제받아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제제들은 기본적으로 제약회사가 개발한 상품으로 회사는 처음에 상품의 주고객과 마케팅 포인트를 고려하여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한다. 지금까지 한의사를 위한 제제는 없었다. 한의사가 제제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약제제의 주사용자는 약사였기 때문이다.

일례로 살사라진과 같은 방풍통성산 제제들은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써주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광고를 본 일반 국민이 변비를 동반한 복부비만이 있을 때 약국에서 사먹기를 바란다는 마케팅 포인트를 이름조차 너무나 명확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방풍통성산이 부작용이 우려되며 대황, 망초, 석고, 황금이 들어있다고 해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서 한의사가 쓰겠다면 과연 제약회사가 반기겠는가. 일반약은 일반약으로 만들어지고 전문약은 전문약으로 만들어진다. 한의사가 사용하는 전문의약품 방풍통성산은 별도 제품으로 나와야 한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은 263처방의 일반의약품과 148종의 전문의약품을 한방제제로 가지고 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간 일반의약품 210종 한방처방의 관리방침과 구성, 용법, 용량, 효능효과 등 승인심사규정의 정리를 마쳐 「일반용 한방처방의 길잡이」라는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 후 한방제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1982년부터 3년간 의료용 한방엑스제제의 품질확보에 대한 연구를 했고, 1985년 후생성에서 ‘의료용 한방엑스제제의 취급에 관하여’란 문서를 공표하여 아무런 자료 없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는 달리 의료용 한방제제는 2종 이상 지표성분으로 표준탕제와의 비교시험자료를 제출해야만 한다는 제도를 만들었다.

1986년부터 이 제도에 의한 전문의약품 제제들이 출시된 결과 한약제제의 품질에 일대혁신이 일어났다. 그 후 한약제제가 신뢰를 받아 많은 의사들이 한약제제를 쓰게 되고 이 제제들을 이용한 임상재평가 및 RCT 등이 수행되어 수많은 안전성, 유효성 자료를 갖추게 되었다.

반면, 우리는 약국 대상의 일반 한약제제들만 있고 한의사가 쓸 만한 제제들은 고민도 실행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전문약 시장이 전체 한약제제 시장의 80%가량인데, 우리나라는 한의사가 진단을 거쳐 처방 조제하는 전문약에 대한 시장이 전혀 없다. 우리는 30년 전인 1982년 이전 일본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한의사용의 보험한약제제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제제들은 정식 식약청 허가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한 제제들로 안전성, 유효성 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식약청 관리 대상도 아니다. 지금은 품질에 대한 불신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사용량이 줄고 있다.

현재 한의원에 탕약과는 다른 간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한약제제의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한의사가 사용하는 전문한약제제 시장도 가능성이 있다. 다행히 몇몇 사상의학제제들은 전문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은 상태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미 2007년 “한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후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한약제제를 처방하고 직접 조제하는 행위는 적법한 행위로 판단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으니 법적인 걸림돌도 없다. 새로운 제제가 나온다면 한약(생약)제제 품질허가신고규정에 따라 새로운 제형도 가능하다.

한의사들이 주체가 되어 전문의약품 한약제제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정하고 전문의약품답게, 어떤 품질기준을 갖추고 어떤 자료를 갖추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한의사용 전문한약제제들이 생산되면 능동적으로 사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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