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한의사 출신 추진석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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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한의사 출신 추진석 판사
  • 승인 2012.03.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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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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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전문가 없어 어려운 한의계에 도움되고 싶어”

고난과 역경 극복하고 법조인 꿈 이뤄

“법 전문가 없어 어려운 한의계에 도움되고 싶어”

지난 2009년 제51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한의계 첫 법조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추진석(36) 한의사가 최근 2년간의 사법연수원 연수과정을 수료하고 2월 27일자로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돼 법관의 길로 들어섰다. 추 판사를 만나 사법연수원 이야기를 비롯해 법관으로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추진석(36) 판사는 “아직은 ‘판사’보다 ‘원장’으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하다”며 한의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1991년에 방영된 MBC드라마 ‘동의보감’을 보고 고교시절 한의사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생겨 한의대에 입학했던 그가 처음 법조인의 꿈을 품은 것은 2001년도 경원대 한의대를 졸업한 후부터다.

2001년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선배로부터 한의계에서 의료분쟁이나 수가 문제에서 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인력이 없고, 다른 전문분야로 진출한 예도 전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한의사였던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고 싶었고, 가족들에게 사법시험에 도전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힌 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한의학 공부는 범위가 폭넓어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개인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반면, 법학공부는 이론을 토대로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 명확했다”고 말했다.

2004년에 치른 사법고시 1차시험에 합격했지만 곧바로 군에 입대해 잠깐 꿈을 유보해야 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3년간 공보의 생활을 한 후 고시공부를 다시 시작했지만, 결혼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원장 생활을 했어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시공부를 접으려할 즈음인 2009년도 말에 최종합격소식이 들려왔다.

추 판사는 그때를 기억하며 “그동안 가족들의 노고와 지지해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심적으로도 어려웠던 시기에 선배 한의사들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해주시고 사비까지 털어가면서 지원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평소 성격이 “개인적으로 승부욕이 강한 성격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현실에서는 많이 지고 살았다”고 소탈하게 웃었다. 그는 실패를 쓴 보약삼아 삼키며 마침내 꿈을 이뤄냈다.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은 어땠을까?
2009년에 치러진 제51회 사법고시는 2차 시험 합격자 1천 19명 중 22명을 3차시험에서 탈락시켜 역대 사법고시 중 최다 탈락자를 기록할 정도로 치열했다.

그는 “연수원에서 한의사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같은 연수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어서 즐겁고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점이 좋았지만, 법대 출신들과는 달리 대학동기나 선후배가 없던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며, “그래도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은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 판사는 복수면허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판사보다 검사가 더 좋을 것 같아 검찰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다. 지원서를 작성하기 며칠 전까지도 고민의 해답을 찾지 못한 그는 지난 해 한의사 전용 통신망인 ‘한의쉼터’에 글을 올려 선후배들로부터 신중하게 조언을 구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선후배들이 잘 짚어주셨어요. 법원을 선택하는 것이 향후에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셔서 최종적으로 법관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편 사법부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법관으로 임용해오던 기존방식을 폐지하고 2011년부터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는 사법연수원생의 경우 재판연구관제도를 도입해 최소 2~3년 간 법조 경력을 쌓은 뒤 판사로 임용하기로 제도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일이 걸리고 한의사 출신 법관이 전무한 현실을 고려할 때 그의 선택은 의미 깊다.
추 판사는 “제가 법관으로 진로를 선택했으니 가까운 미래에는 한의사 출신 검사도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한의대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뜻밖에도 1995년도 한약분쟁 이야기를 꺼냈다.

“한의대에 입학한 1995년도에는 한약분쟁으로 인해 전국 11개 한의대에서 1년 반동안 수업거부투쟁을 했는데,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늘 또래 한의사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빚진 마음이 남아 있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추 판사는 한의사출신 예비법조인 정윤정(경희대·53회 사시 합격자), 김홍주 학생(경희대·53회 사시 합격자), 노용균(경희대·건국대 로스쿨 재학), 양동규(경희대·서울대 로스쿨 재학), 유미리(경희대·고려대 로스쿨 재학) 등을 수소문해 조촐하게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이 모임에 대해 “언젠가는 법조계에서 만나게 될 테니, 미리 서로 알고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몇 년 후에 각자의 자리에서 개개인의 실력이 갖춰지면 그때는 힘을 모아 한의계를 위해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어떤 법관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추진석 판사는 “앞으로 배울 것이 더 많고 실력도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우선 법원에서 능력있는 법관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힘찬 포부를 밝혔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세 아이가 있다.
한의사로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나간 추진석 판사가 앞으로 한의사 출신의 장점을 살린 전문 법관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본다.

고양 =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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