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13) - 학술 발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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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세계 속으로(13) - 학술 발표 ②
  • 승인 2012.04.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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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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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발표도 소통과 교감의 퍼포먼스이다

발표 준비에 앞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자신의 발표를 듣게 될 청중의 분석이다. 2007년에 미국의학침술학회(AAMA)에 사암침법을 주제로 1시간의 초청강연을 준비할 때, 존스홉킨스대학의 한 원로 교수님께서 해주신 조언은 “청중을 무시하라(Ignore your audience!)”였다. 즉 청중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과 강연의 눈높이를 너무 높이 두지 말고 대다수가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수준으로 하라는 뜻이었다.
강연은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안된다. 너무 쉬우면 지루해지고, 강의 자체의 의미가 없으며, 너무 어려우면 강연의 내용을 따라올 수가 없어 역시 집중도와 만족도가 떨어진다.
또 한 가지는 언제든 우선 청중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하자. 자신의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부러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발표장에 앉아있는 것 자체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면 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변명과 겸손함은 버려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 앞에서 겸손하라는 교육을 많이 받아서인지 열심히 발표 준비를 하고서도 “이 주제는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부족하지만…”이라거나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다른 일들로 너무 바빠서…”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발표 초반의 분위기를 망쳐놓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반드시 버려야할 태도로 불필요한 변명이나 겸손은 자신의 소중한 청중들에게 첫인상부터 이해보다는 짜증과 화를 일으킬 뿐이다.
정말로 자신 없고,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다면 청탁단계에서 수락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발표하기로 한 이후에 부득이한 사유로 시간을 내지 못해 준비가 소홀했더라도 실제 발표 장소에서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자신이 소화한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된다.
특히 영어발표인 경우, “제가 영어를 잘못해서…”, “발음이 안좋은데…”라고 말하기 쉬운데, 이는 발표자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청중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고, 발표 원고를 미리 잘 준비하고 연습한다면, 대부분 발음의 약점은 슬라이드 발표시 내용전달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06년 5월 독일에서 가장 큰 침구학술대회인 DAGFA 초청강연 후 필자(左)와 독일침구학회장인 Dr. Walburg Maric-Oehler

 떨지 말고 즐겨라
발표장에서는 발표자와 청중은 분위기를 공유하게 된다. 발표자가 긴장하고 어려워한다면, 청중 역시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진다.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고 또렷하게 자신의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최대한 간결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기의 고장(빔프로젝터, 레이저포인터, 컴퓨터 등)이나 조명의 이상, 발표 시간의 지연 및 변경 등에 대해서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할 방법에 대해 미리 한번쯤만 생각해 둔다면 더욱 완벽한 발표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모여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청중과 공감하며 즐겨보길 바란다.

시간을 꼭 지켜라
학술발표 내용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것이 시간엄수다. 대부분 일반 연제의 학술발표는 15분 발표와 5분 질문 답변 시간이 주어진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전반에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시간에 쫓겨 후반의 중요한 내용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긴장하면 말이 빨라져서 너무 일찍 마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충분한 연습과 자기 훈련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본인이 배정받은 시간과 총 슬라이드 수를 기본으로 슬라이드 한 장당 평균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보고, 초중반에 어느 정도의 슬라이드를 진행하면 되겠는지 미리 연습해두면 좋다. 2~3분정도쯤이야 좀 더하면 어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루 종일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발표하게 되면, 2~3분이 20~30분 이상의 차이를 만들 수 있어 좌장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발표자의 시간을 체크하고 진행을 차질 없도록 하는 것이다.
종료 2~3분을 앞두고 종을 쳐서 마무리 시간임을 알려줄 경우에는 꼭 전달하고 싶은 자신의 메시지만을 간결하게 잘 정리해서 시간을 지키도록 한다. 흔히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라고 하는 15~20분간의 휴식시간을 진행의 완충시간으로 조절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어진 발표 때문에 청중들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줄여야 한다면 결례가 된다.

발표 내용을 읽어도 될까?
요즘에는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에서 개인의 노트북 화면과 빔프로젝터 화면을 다르게 구성하여 미리 준비해둔 발표원고를 자신의 노트북으로만 보면서 발표할 수도 있다.
간혹 자신이 발표할 내용을 종이로 출력해 가는 경우도 있는데, 자칫하면 스크린에 띄워놓은 슬라이드와 자신의 말을 잘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와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별도의 원고보다는 슬라이드에 핵심 단어들을 넣어두고 이를 중심으로 발표해나간다면 누락됨 없이 자연스럽게 발표를 할 수가 있다.
흔히 슬라이드에 긴 문장들을 적어놓고 그대로 읽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권장하고 싶지 않다. 청중이 현장에 오는 이유는 자료의 내용을 읽는 것 이상의 발표자 자신의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슬라이드만 읽어준다면 청중도 자신이 언제든 스스로 읽으면 되므로 굳이 발표장에 와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발표 내용에 대해 발표자가 논리적으로 머릿속에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거나, 특히 영어 발표여서 준비된 원고 없이는 발표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면, 내용은 미리 영어 전문가의 교정을 받고 슬라이드와 원고를 잘 맞추어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것이 원고 없이 당황하는 것 보다는 낫다.

2006년 5월 독일 DÄGfA대회때 필자의 한국한의학 워크샵에 대한 알림판

처음과 끝에 집중하자
청중이 집중하는 시간은 대체로 본론이 진행되는 중반보다는 초반 도입부와 마지막 결론 부분에 대한 인상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하니, 바로 이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담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곤란한 질문에는 어떻게 할까
발표를 마치고 나면 5분정도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자리에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은 간단명료하게 답변하면 되지만, 현장에서 당장 답변하기 어렵거나 때로는 비판적이거나 다소 공격적인 질문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답을 잘 모르는 내용이라면, 굳이 즉흥적으로 답변하느라 중언부언하다보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으므로, 좀 더 알아보고 이메일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답변을 드리겠다고 하면 된다. 이후 휴식시간에 실제로 이메일을 받아서 나중에 정확한 답변을 준다면 신뢰 있는 발표자가 될 것이고, 때로는 이를 인연으로 질문자와 향후에 필요시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편, 비판적 질문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좋은 지적에 대해 우선 감사의 뜻을 전하고, 앞으로 말씀해주신 내용을 반영해서 연구를 잘 진행하겠다는 식으로 마무리 해주면 된다. 비판에 대해 기분이 상하여 이를 만회하고자 불편한 논쟁을 발표장에서 하는 것은 합리화도 잘 되지 않을뿐더러 발표장의 불편한 분위기만 조장할 뿐임을 명심하자.

벤치마킹을 하자
우리나라처럼 토론 및 발표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교교육 및 직장생활을 수 십년 간 해오다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주제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간혹 발표에도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은 후천적 노력과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발표를 잘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서적이나 인터넷 정보를 활용해도 좋고, 실제로 좋은 강연자들의 강의를 많이 접하며 벤치마킹하면 더 좋다.
필자는 기회가 되는대로 다양하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데, 강의 내용을 통한 학습도 중요하지만, 또 한 가지 그들의 발표 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실망스러운 발표자들을 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타산지석으로 청중의 입장에서 분석해보고 개선할 점으로 정리해 두면 된다.

글을 맺으며…
모든 형식의 발표는 결국 소통과 교감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발표는 자신의 뜻과 메시지를 주어진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행위이자 수단이다.
필자는 요즘 환자들에게 해당 질환과 향후 치료방법에 대해 환자 눈높이의 슬라이드를 만들어 설명해 주고 있다. 본인의 질환에 대해 인터넷 등을 통해 때로는 과장되거나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러한 설명방식으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심적인 안정과 격려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시술자와 피시술자 사이에 이러한 원활한 소통과 교감이 있다면 같은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월등히 좋은 결과를 나타냄은 늘 경험하는 일이다.
따라서 정식 학술발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위와 같은 내용들을 응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원활히 소통하고 교감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상훈 / 경희대 한의대 침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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