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스테시스와 한의학(14)-10. 체질을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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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스테시스와 한의학(14)-10. 체질을 생각해보다
  • 승인 2012.06.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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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승

최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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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과 알로스테시스 과부화의 관련성

 <글 싣는 순서>
1. 알로스테시스란 무엇인가?
2. 스트레스 반응이 알로스테시스 과부하로
3. 알로스테시스 과부하의 4가지 시나리오

4. 알로스테시스와 자가면역질환
5. 알로스테시스와 대사증후군
6. 알로스테시스와 수면장애
7. 알로스테시스와 무월경
8. 스트레스와 병인론
9. 한방치료는 어디에 개입하는가?
10. 체질을 생각해보다
11. 감초의 재발견
12. 마무리 제언 

언어에 대해
의서에 적힌 다양한 한의학적 표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는 한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평생을 따라다니는 난제이다. 한의학의 언어는 때로는 몸이 드러내는 증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때로는 마치 문자에 의해서는 가르침을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모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필자가 한의학이 사용하는 언어를 새롭게 번역해야 할 당위성을 어렴풋이 인식하게 된 것은 신홍일 선생님의 「사상의학임상특강」을 통해서였다. 태양인에 있어서 오가피는 강근골을 가능케 하는데, 이때의 오가피의 강근골 효과가 다른 체질에 있어서 강근골로 표현되는 본초들과는 그 기전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오가피가 거풍습 강근골한다고 하잖아요. (중략) 태양인 표병은 자율신경계의 병이에요. (중략) 해역은 강한 것 같은데 강하지 않고, 쓰러지는 거 보니까 약한 거 같은데 벌떡 또 일어나니까 강한 것도 같고, 그렇다고 어떤 한증이 위주로 띄는 것도 아니고 열증이 위주로 띄는 것도 아니고. (중략) 근력이 없어서 해역이 온 게 아니에요. 근데 증상의 소이연을 안보고 일단 현상만 쳐다보니까, 잘 넘어지는데 오가피를 먹여보니 잘 안 넘어지고 잘 걸어. 그래서 강근골이라고 써놓은 거죠. (중략) 그 사람이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다리에 뼈가 없는 듯이 팍 꺾이면서 넘어지는 걸 잡아주니까, 오가피가 뼈를 잡아주고 근을 잡아준다고 표현한 거죠. 근데 오가피는 근골에 작용하는 게 전혀 아니에요. 자율신경계에서 명령을 너무 급박하게 내리고 있는 것을 그러지 않게 조절해 주는 거에요.”1)

요컨대 강근골의 효과는 다양한 경로, 다양한 개입지점과 다양한 개입시점 즉, 다양한 기전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의학적 표현은 드러난 현상에 대한 관찰에 국한된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위의 서술내용이 사실에 부합한다면, 태양인 해역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오가피 투여에 의한 강근골의 효과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율은 드러난 현상을 가능케 한 ‘증상의 소이연’을 탐구하는 데 달려있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다음 표현은 약물이 인체에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세련된 표현이 아닐까 싶다.
“화학물질이 체성 감각지도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 있는데, 이들은 따로따로 또는 연합해서 효과를 발휘한다. 첫째, 신체로부터의 신호전달에 개입한다. 둘째, 신체지도 내에 특정 활동유형을 만들어 낸다. 셋째, 신체상태 자체를 변화시킨다. 약물의 교묘한 책략은 이 모든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약물의 작용단계 중 어느 한 단계에서 서로 다른 분자들이 서로 비슷한 체성 감각영역의 활동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느낌의 효과는 공유된 신경 부위의 변화에 기인하며, 그러한 변화는 서로 다른 물질이 야기하는 서로 다른 일련의 시스템 변화 때문에 일어난다. 분자와 수용체 수준에서의 이야기만으로는 그 효과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모든 느낌이 필수 성분으로서 통증 또는 쾌락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가 느낌이라고 부르는 심상은 신체 지도에 나타나는 신경 패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뇌의 신체 지도가 특정 구성을 나타낼 때 통증과 그와 유사한 느낌(통증의 변이체)이 생성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2)

결과로서의 ‘강근골’이라는 표현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획득될 수 있는 결과를 압축적으로 묘사한 언어에 불과하다. 만약 기전의 차이에 대한 고민이 부재할 경우 각 본초들이 만들어내는 강근골의 기전의 차이는 소거될 것이다. 그 차이가 소거될 경우 <약>은 때로는 강근골의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나 대부분의 경우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기전의 차이를 염두에 두지 않을 경우 치료의 유효율은 현저히 저하된다. 변증은 이러한 차이를 모호하게나마 인식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한의학이 구사하고 있는 용어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는 음양오행 등 사변적인 요소가 다분한 언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자체를 그대로 기술한 것으로 평가되는 상한론, 금궤요략 등에도 해당한다. 요컨대 인체 내부의 기전을 언제까지 블랙박스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언어 사이의 번역과 통약 불가능함에 대해
때로는 한의학적 언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 불가능함을 주장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한 주장들은 다른 언어들 사이의 통약불가능함을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다른 언어들은 정말 통약불가능할까. 물론 번역은 필연적으로 오역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번역의 오역 가능성이 번역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거나 무의미하다는 식의 회의론으로 경도되어야 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언어는 현실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고 삶은 보편적 요소를 품고 있다. 이 보편적 요소들이 언어 간에 통약 가능을 함의하는 것은 아닌가.
의학에 대한 언어는 언제나 몸에 기반한다. 몸에 기반하지 않고서 개입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몸에 기반한 언어들 간에 통약불가능을 주장함은 가당치 않다. 요컨대, 번역은 언제나 의미있는 작업이다. 번역을 통해서만 개별자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번역, 즉 개념의 자기화를 통하지 않은 발화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체질불변론
체질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즉, 체질은 존재하는가? 체질은 몇 가지 카테고리에 의해 분류될 수 있는가? 체질은 언제 형성되는가? 체질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체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나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인가? 쉽사리 답을 내리기 곤란한 질문들이다. 체질에 대한 신경과학의 관점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비교적 뇌신경망이 유연하게 가소할 수 있는 때까지 선천적 혹은 체질적 특질이 결정된다. 선천을 마무리 짓는 두 가지 주요한 이벤트는 경험자극에 따른 시냅스 가지치기 양상과 수초화 일 것이다. 복내측 전전두 피질이나 전 대상피질에서 편도체로 가는 신경섬유의 수초화는 출생 후 9개월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허나 복내측 전전두 피질과 전 대상피질의 수초화가 생후 1년이면 어느 정도 완료가 되므로 이 정도 시기에 아기들의 기질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3)

신경망의 배선에 의한 습관적 행태들은 후천적으로 변화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체질불변의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반영한다. 선천은 언제까지인가를 논할 때, 단순히 출산 전후로 구분하는 것은 크게 유의하지 않을 것 같다. 신경회로가 배선되고 수초화 되는 전 과정으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 과정은 짧게는 3세고 길게는 6세까지의 과정을 거치고, 그 이후로는 신경가소성이 크게 제한되므로 길게는 6세를 선후천의 구분점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그 이후로는 뇌 이하 생리적반응의 경향성은 어느 정도 굳어지게 되므로 체질이라는 말이 유효해진다. 사람은 거의 생긴대로 살 수밖에 없다. 구조에 갇힌 인간이다.
그러나 후천적인 삶의 패턴은 언제나 새로운 신경가소성과 관련돼 있으며, 이는 수면 기억 학습 등과 관련된다. 이러한 과정은 유식학에서 말하는 ‘종자생현행 현행훈종자’로 표현될 수도 있고, 유교에서 말하는 일신우일신의 과정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요컨대 체질은 완전히 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한의학에서 흐름을 중시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흐르지 않는 흐름에 가깝다. 거의, 흐르지 않는다.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서 견해가 달라진다. 무한급수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나 아주 불가능은 아닌 흐름이 체질에 대한 관점이 아닐까.

체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
인간은 선천적 소인에 의해 특정 벡터로 향하는 알로스테시스 과부화를 경험하는 것일지 모른다. 소인은 소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애노희락이라는 외부의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개개인의 방어기제는 개체에 따른 차이가 있을 개연성이 있다.

알로스테시스 과부화를 체질(somato type)과 관련하여 분석한 S. Mechiel Korte의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4) 진화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같은 종(species) 내에도 매(Hawks) 타입과 비둘기(Doves) 타입으로 세부구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매 타입이 보다 공격적이라면 비둘기 타입은 보다 수동적인데, 이는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해 각기 다른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타입은 모두 일정 환경 하에서 적응적 이득을 취할 수 있으므로 동일 종 내에서 두 가지 타입이 공존할 수 있었다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Korte 연구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기존 관점을 이어받아 체질을 스트레스에 대한 알로스테시스 과부화의 양상과 연관짓고, 더 나아가 신경생리학적 차이를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더욱이 Korte는 매 타입과 비둘기 타입이 경험하는 알로스테시스 과부하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그들이 겪게 되는 질병의 종류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고 지적한다.

매 타입과 비둘기 타입의 차이가 음양의 체질적 구분에 대응하며, 나아가 각 체질이 겪게되는 질병의 자연사가 다르다는 Korte의 주장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체질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세부사항을 고려하면 두 가지 설명체계가 직대입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생병리학적 지식들에 기반하여 체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체질에 대한 한의학적 사유를 보다 심도 있고 풍성하게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생리적 개체차는 인체의 여러 체계에서 음/양으로 구분될 수 있다. 가령,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은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태과의 상태에 노출될 것이며, 이는 음양 중 양의 특성을 나타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당질 코르티코이드의 분비량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을 다른 체질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당질 코르티코이드의 분해에 관여하는 엔자임 및 간 신장으로의 혈류의 편차 등은 당질 코르티코이드의 반감기에 영향을 줌으로써 또 다시 음/양의 구분을 가능케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들은 모두 하나의 방향성을 따라 계열화되는지, 다시 말해 음인에서는 모든 지표가 음적으로 드러나고 양인에서는 모든 지표가 양적으로 드러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특정 지표의 편차를 파악하는 일이 체질적 판단을 내리는 데 충분한지는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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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신홍일 선생님 사상의학 임상특강p75~76,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제56기 졸업준비위원회 , 홍가비전
2) 스피노자의 뇌, 안토니오 다마지오, 사이언스북스
3) “한의치료는 어디에 개입하는가”에서 재인용 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13
4) Korte, S. M., Koolhaas, J. M., Wingfield, J. C., & McEwen, B. S. (2005). The Darwinian concept of stress: benefits of allostasis and costs of allostatic load and the trade-offs in health and disease. Neuroscience and Biobehavioral Reviews, 29(1), 3-38.

최연승 / 제주도 서귀포시 동부보건소 표선보건지소 공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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