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기획-한의학 미래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1)-김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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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3주년 특집기획-한의학 미래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1)-김창업
  • 승인 2012.07.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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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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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에는 한의학적 원리가 중요하게 작용

경험체계가 큰 자산인 한의학, 과학연구의 훌륭한 모티브

창간 23주년 특집기획
융복합형 인재가 각광 받는 시대, 한의계에서도 타 학문을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의학의 미래를 새롭게 개척해나가고 있는 그들은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으며, 조금은 객관적인 위치에서 한의학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본지에서는 그들을 만나 한의학의 미래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획을 마련해 보았다. <편집자 주>

첫 인터뷰이로 서울대 의대 신경생리학 교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창업(30)씨를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창업(서울대 의대 생리학 교실 박사과정)

과학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필요
김 씨는 한의대 시절 순수 한의학적인 원리를 기반으로 임상체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전통한의학적 이론 체계를 파악해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한의학도였다. 그랬던 그가 타학문 분야로 진출하여 오래도록 공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07년 동국대 한의대를 졸업할 때쯤, 한의학이 고차원적인 이론에 기반하여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험체계인 것이 맞고,  기존의 방식에 의거해 이를 체계적인 이론을 갖춘 의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생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한의학도로서 생리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다른 경험들을 했다.
“학부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면서도 나름대로 폭넓은 사고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졸업 후 의학을 중심으로 자연과학, 공학분야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동안 제가 보아왔던 한의학적 환경이 특수성이 강한 환경이었다는 걸 크게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다시 한의계를 보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생리학을 공부하면서도 한의사들과 소통하고 진료도 하는 등 한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수많은 정보 속에 숨어 있는 데이터 패턴 분석에 매력 느껴
처음에 전형적인 실험과학 위주로 연구하던 그는 그 분야에서는 재미를 못 찾았다. 우연히 컴퓨터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 위주로 방향을 바꾸면서부터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주로 뇌영상장비나 전기적으로 기록된 신경신호의 데이터 패턴을 찾아내서 컴퓨터를 이용해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이다.
한의학과 과학,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그는 데이터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과학의 흐름과 한의학적 원리가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의학은 기본적으로 복잡계이고 비선형적인 여러 인자들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는데,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그러한 관련성을 찾아내는 게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연구방법론이 수학과 컴퓨터의 발전으로 많이 가능해졌고, 의학과 자연과학에서도 데이터 사이언스가 최근의 트렌드입니다. 과거에는 실험적으로 어떤 중요한 특정 단백질,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만이 최고로 인정받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실제 시스템 차원에서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고, 여기에는 복잡한 데이터에 내재하는 패턴을 읽기 위한 방법들이 사용됩니다.”

그의 말대로 세계는 지금 빅 데이터 시대로 데이터 사이언스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저는 그 분야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텐데, 기초 뿐만 아니라 임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방에서도 유전체의학쪽으로 옮겨가면서 개개인의 유전체를 다 읽어내고, 결국 그 많은 정보들 속에 숨어 있는 데이터의 패턴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한의학도 4가지 진단기법을 통해 모아낸 여러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인데, 그 철학이 지금의 과학적 시대흐름과 맞는 것이죠. 과거에는 정성적이고 경험적으로 접근했다면 앞으로는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서 수학적으로, 정량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는거죠.”

한의학적 시스템에 적합하게 바뀌어 가는 현대과학
그는 “지금까지 한의학을 해왔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과학적 연구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며, 기존의 과학은 주로 환원주의의 시대의 과학이었고, 한의학적 패러다임과 잘 어울리지 못한 때문이라고 했다.
한 시대에 통용되었던 과학적 프레임으로 과학 전체를 봤다고 착각하는 것이 한의계의 왜곡된 시각이라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건 계속 한계 없이 변화하고 있고, 지금의 과학은 오히려 한의학적인 시스템에 적합하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과학 자체를 한꺼번에 묶어서 한의학과 괴리시켜 보지 말고 지금 시대의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한의학과 함께 갈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해야 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의학의 미래가치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의학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의학은 경험체계가 굉장히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어떤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있어서 한의학은 엄청난 경험을 쌓아왔는데, 약재의 조합을 밝혀낸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또 정량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인체나 질병에 관련된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온 언어체계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한의학의 언어체계들이 지금 과학연구의 모티브로서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한의학이 과거의 언어 체계를 중심으로 발전을 도모하기보단 풍부한 의생명과학 지식에 컴퓨터와 수학, 통계 등의 강력한 방법론을 동원해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의학에서는 관련성 없어 보이는 장기 간의 연결성을 우리가 먼저 한의학적 경험과 언어체계에 기반해서 가설을 짜고 대용량 데이터 (high-throughput data)와 컴퓨터를 이용해서 복잡한 관련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정량적으로 연구해나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한의계 외부에서 견문 넓힌 후 한의계를 바라보라
그는 인터뷰 내내 한의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가득 담겨 있는 말들을 쏟아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한의학을 제대로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전업 임상의가 되는 것이란 고정관념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시간 한결 같이 경험해왔고 역사적으로도 늘 그래왔던 관념, 체계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재편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의학 역시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이분법적 경계도 앞으론 희미해질 것 같습니다. 지금의 의료환경, 구조 등이 앞으로도 계속 고정되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지 말고 미래를 설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전업 임상의를 하다가 연구자의 훈련을 받는 것은 쉽지 않으니 무조건 졸업 후 임상가로 나가고 보자는 식 보단 미리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두라”고 강조했다.
“양방에서 최첨단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통계 패키지를 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분석기법을 개발하고 자유로운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의계는 기존의 전통적인 통계방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들조차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지금은 학제간 연구보다 융복합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흐름에서 한의학도 예외일 수 없다.
한의학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연구자의 열정이 앞으로 어떤 꽃을 피워낼지 사뭇 기대되지만, 한의계가 이런 연구인력을 키워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 노력과 투자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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