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 한의사, 의료계의 호모 사케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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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 한의사, 의료계의 호모 사케르인가?
  • 승인 2012.08.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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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lunarmix@naver.com


“법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 틈새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사상가인 조르조 아감벤은 그의 주저인 「호모 사케르」에서 더 이상 법이 통하지 않는 예외상태에서의 생명에 대해 깊은 고찰을 남긴 바 있다.
이미 푸코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바 있지만, 이 책에서는 칼 슈미트와 같은 독일의 정치학자들에 의해서 논의된 법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에서의 통치와 인간, 생명에 대한 통찰을 연결시켜 극단의 상태에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모습이 바로 우리 일상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이되 ‘인간’은 아닌 호모 사케르
대체 법이 없는 곳에서의 생명에게는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과 아랍인들 모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었다. ‘법’의 존재 하에서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법이라는 규범에 따라 그의 처우가 결정이 되지만, 그것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 상태에서는 그들은 인간성의 상실과 함께 일종의 ‘사육’의 대상이 되고야 만다. 살아있는 ‘생명’이되 ‘인간’은 아닌 호모 사케르.
그런데, 이 저주받은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의 탄생은 법이 물러나면서 생겨난 진공의 상태, 예외의 상황은 루소에서의 자연적 상황이 아니라, 법과 권력이 자의적으로 후퇴하면서 생겨난 ‘인위적’인 자연 상태라는데 기반하고 있다.
법이 적용되지 않는 그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바로 법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권력의 무서움을 절감케 된다. 물론 우리는 늘 법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서 무심한 경향이 있지만, 늘상 발생하기 마련인 예외상태가 되면 우리는 법을 마주하게 되고 언제나 작동하고 있었던 권력의 실상을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예외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오히려 법이 물러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그 권력의 실체를 가장 강렬하게 목격할 수 있게 된다. 권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가 가장 많이 추락한 인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한의사의 법적인 권리마저도 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상태
최근 한의계는 이러한 예외상태를 너무도 많이 경험하고 있다. 이미 과거에 출몰했던 돌팔이들은 이미 고전적인 사례가 된지 오래고, IMS, TPI, MPS와 같은 이름으로 한의사의 면허 하에서만 시술할 수 있는 침 시술이 양의사의 영역으로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침내 이제는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한의사의 면허 하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한약 치료마저 양의사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의계의 모습은 그러한 침탈을 막기 보다는 강도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곁방에라도 자리를 내달라 호소하는 형국으로 비춰지고 있기까지 하다.
한의계에 대한 양방의학계의 침식을 가만히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예외상태’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뤄지게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과거에는 흔히 화학적으로 합성하거나 특정 성분을 고도로 농축한 약품을 양약으로, 메스 등으로 대표되는 고도의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양방의 수술로 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양의사의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하였고, 기존에 사용되어오던 식물, 동물, 광물 기원의 본초를 한의학적 원리에 의해서(물론 이 한의학적 원리라는 것 자체가 동어 반복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추출, 가공한 것을 한약으로, 침으로 대표되는 국소적인 침습/비침습적 의료행위를 한의학의 침구치료로 보고, 그 점에 대해서는 한의사의 배타적인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과거의 어느 시기부터 ‘한의학적 원리’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동어반복적인 한계와 함께 한의사의 법적인 권리마저도 법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상태인 ‘민속’ ‘전통’ ‘민간’ ‘한방’을 내세운 돌팔이들에 의해서 침식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한의계가 여러 자구 노력을 해온 것들이 사실이지만, 법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 틈새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방원리’를 내세운 돌팔이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과학기술의 발전은 ‘한방원리’ 그 자체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예외 상태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현대적인 해부생리학과 신경학을 근간으로 새로운 ‘예외상태’를 드러낸 것이 IMS이다. 침은 더 이상 한의학적 맥락에서의 침으로만 있을 수 없게 되었고, 현대의학적 맥락에서의 침으로 그 본체가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그 행위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 할지라도, 그 시술이 양의사에 의해서 행해지는 경우 IMS가 되며, 한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 침 시술이 되는 부조리함이 발생한 것이다. 예외 상태가 넓어져가는 지점. 언제나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던 현대과학기술과 한의학적 이론, 기술이 한없이 가까워지며, 극한에 이르는 지점이다.

한의사의 추락, 호모 사케르화
예외의 마지막은 ‘천연물의약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분명히 한약이지만, 그것이 과학기술적, 양의학 중심의 의료산업적 맥락에서 개발되어 사용되는 경우 한약의 지위를 빼앗기고 신약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되는, 기존의 규범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의 새로운 예외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도 그 외형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분열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 양의사 위주의 의료생태와 자본에 의해 보호되는 권력체가 그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는 극단의 지점이다.
앞서서 예외상태는 법이 물러난 지점에서 가장 생생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였다. 한약과 한의학, 한방원리를 규정한 법적인 개념들, 그리고 그를 둘러싼 관련 개념들을 살펴보면 이 영역에서의 ‘법’ 자체의 문제로 인해 권력이 올바르게 작동하기 어렵도록 구성되어 있으며, ‘법’ 뒤에 숨은 권력들 서로가 충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작용할 수 없는 ‘진공’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임을 알 수가 있다.
한의사의 추락, 호모 사케르화는 법이 물러난 극단 상태에서 비롯된 것, 법 뒤의 권력의 참 모습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로마사회에서 ‘호모 사케르’(역설적인 의미로, ‘신성한’ 인간)는 제의적으로 바쳐질 수 없는 존재임과 동시에 그를 죽이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이중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제의라는 합법적 의식을 통해서 호모 사케르는 죽을 수 없지만, 반대로 모든 비합법적 처우, 살해에 대해서도 그는 어떠한 항변할 권리도 없었다. 법이 그에게 미치지 않기에, 법에 의해서 그는 죽을 수 없지만, 법이 비어 있기에 그는 죽게 된다는 아이러니. 이 모습에서 한의사의 현실과 미래가 그려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규범이 무너지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권력자의 의지,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결단’만이 해결책이라 보았다는 것이 최근 사태에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정창운
생각의 무덤 /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http:blog.naver.com/lunar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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