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70) - 「雜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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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70) - 「雜書」 ②
  • 승인 2013.01.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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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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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도 되고 설도 가까워서인지 민속자료에 자꾸 눈길이 간다. 지난 역사의 흔적이자 산업화 시대엔 폐기 대상으로 여겨져 왔던 민속이나 전승지식들이 앞으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될 전망이다. 한의약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음양오행관으로부터 시작해 전통적으로 한의약에서 이용된 자연관이나 향약본초, 진단맥법, 수치제법, 오운육기, 경락침법 등 다양한 전통의약 지식이 당당히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으로 제정될 날이 멀지 않았다. 지난 호에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 몇 가지를 마저 다뤄보기로 한다.

 

본문 가운데, 또 하나 재미난 것은 相狗法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牛馬羊猪, 즉 소, 말, 염소, 돼지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가축에 대해선 양축법이나 우의방, 마의방 같은 치료법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전부터 인간과 친숙하게 지내왔다는 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기록물은 흔하지 않다. 물론 이 책에서도 순수하게 개의 질환이나 양축법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털의 색깔과 머리 모양으로 개와 주인과의 상호관계에서 이뤄지는 길흉화복을 따지고 있을 뿐이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룩된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근한 관계를 느껴볼 수 있다.

이밖에도 折草占, 失物占, 諸葛武侯出行圖, 出行吉日, 取土知法, 大將軍輪回方, 太歲神輪回方, 凡事에 모두 길하다는 生甲旬, 모든 일에 不利한 病甲旬, 질병에 걸리면 사망하지만 오직 장례를 치르거나 매장하기에 대길한 死甲旬, 베짜기에 좋지 않은 結布凶日, 옷을 짓기에 불길한 裁衣法, 입학길일, 臥死人吉凶法, 死人出門凶方知法, 死人入棺時知法, 防盜法 등 인생사에서 한번 쯤 겪어야만 하는 갖가지 사안에 대한 길흉 예측법을 다루고 있다.

다른 한편, 위생이나 생활건강과 관련해선 아이의 머리를 깎이거나 감기는 날[小兒剃頭吉日, 洗頭日]과 같은 항목도 보이고, 출산 후 태를 땅에 묻는 埋胎法도 수록되어 있다. 기타 모든 일에 조심해야만 하는 天地絶日, 까치집 방위를 보아 길흉을 논하는 鵲巢吉凶方位, 부엉이 우는 소리를 따져 점치는 鳴吉凶日, 나아가 오래 된 민가에서 나는 소리로 길흉을 예측하는 陳舊家自鳴吉凶日, 쥐가 옷을 갉아먹는 鼠咬衣吉凶과 같이 생활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일상의 면면들을 낱낱이 지목해 주의를 기울이는 희한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내용 가운데는 질병이나 의약과 관련성이 밀접한 것도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染疾不傳染藥劑에는 다분히 의약적인 견해가 담겨진 처방이 제시되어 있다. 약방은 香蘇散인데 향부자, 자소엽, 진피, 창출, 감초로 이루어져있고 여기에 생강과 총백을 넣어 물에 달여 먹는다. 일반 감모 초기에 해당하는 傷風寒증에 쓰이는 처방과 동일하지만 복약법에서 1달 중에 초하룻날 1첩, 보름날 다시 1첩을 달여 먹는 것이 요령이다. 이렇게 하면 병자와 한 곳에 있어도 전염되지 않을 수 있는데, 한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복약하면 전염병을 옮기는 전염병 귀신인 여귀도 발붙일 곳이 없어 울고 갈 수밖에 없다고 적어놓았다.

요즘 이치대로 무조건 면역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름간격으로 풍한사를 미리 다스려 준다면 어지간한 감염성 질환을 예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도 변종이 생기고 백신의 효율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하니 차라리 비용도 저렴하고 효과적인 이런 전염병 예방한약을 응용한 대처법을 고려해 보아야만 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한글 방문들인데, 몇 가지 단순한 치료법이 수록되어 있다. ‘ 亂에 겉보리 쌀을 작말하여 수제비(슈졉비)를 떠서 많이 먹으라.’[필자 윤문] 이와 같은 방식으로 鵝症, 背瘡, 髮際, 疳瘡 등 병증에 민간에서 간단하게 응용할 수 있는 식치방이나 외치법을 기재해 놓고 있다. 세대교체와 생활양식의 변화로 자연 소멸이 임박한 전통의약 지식들을 한시 바삐 발굴, 채록해서 보존할 대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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