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77) - 「時疫解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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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77) - 「時疫解惑論」
  • 승인 2013.03.2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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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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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바람에 가려진 의혹

봄 날씨가 고르지 않아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몹쓸 전염병이라도 돌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도 일기가 고르지 않으면 운기를 살펴보고 돌림병의 유행을 우려했다. 20세기 초에 나온 방역전문서이지만 요즘의 상황과 대비해 볼만한 점이 많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서명을 ‘時疫解惑論’이라 했으니 눈앞에 닥친 전염병의 유행에 대한 해결책을 논구한 의론이다.

연전에 소개한 필사본 「마진비방」(320호, 2007.1.15일자)의 권미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책자인데, 마진과는 다른 유행성 전염병을 다룬 독특한 논고여서 별도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만 원작에는 상권에 10편의 의론이 실려 있고 하권에는 46조의 치험례, 그리고 白   藥方, 紫雪丹方, 錫類散方을 첨부했다고 하였지만, 이 사본에는 총론을 비롯해 3편의 논고만 수록해 전문을 모두 등사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원저는 1920년경 지금의 중국 사천성 지역인 蜀나라땅 華陽사람 劉復이란 사람이 쓴 것이다. 사본에 저자의 성명은 적혀있으나 너무 근대인물이라서인지 의학인명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이 책 이외에도 몇 가지 저술에 대한 간략한 서지정보가 실려 있어 개략적인 내용과 학술성향을 살펴볼 수 있다.

또 다른 저작으로 「傷寒論  亂訓解」가 있는데, 역시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다. 「素問   論釋難」(1928年刊)은 서명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위론 원문에 대해 제가의 주석과 해설을 상세히 덧붙인 논고인데 위증의 원인을 한습으로 여기고 大辛大熱한 치법을 사용해 감초건강탕이나 사역탕으로 치료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華陽醫說」(1934年刊)은 中西醫 비교론적 관점에서 각각의 특장과 상호보완점을 논구한 전문적인 논술이다.

이 책에선 ‘疫’병이란 暑邪와 濕邪가 서로 섞여 침범한 더러운 병의 기운(夫疫者何? 暑濕交蒸, 穢濁之  氣也)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당시 의학계에 대두되었던 청결과 위생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상기후와 비위생적인 환경 요소가 역병을 야기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원인설에 있어 외사육음 가운데 暑濕邪와 음식, 성생활 등으로 인한 유인 제공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과 코를 통한 병독이 폐와 위로 전이된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하는 원인 가운데 재미난 것은 하늘을 뒤덮은 음울한 흙비[陰  ] 즉, 황사로 초래된 현상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마로 발생한 음습한 환경이나 흙비가 모두 유발인자로 작용하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병리기전을 요약해 보면, 폐나 위 어느 경로로 감염이 되건 더위가 울결하여 화가 생기고 화가 극성하면 풍이 발생하게 된다. 더러운 ‘穢’는 곧 毒이 되며, 독이 울체되면 화가 치성해지는데, 이렇듯 毒火가 타오르면 진액이 고갈되는 병세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병의 증세에 대해 그가 제시한 치법은 辛凉한 약물로 宣氣하고 淡渗한 약미로 利水시키는 것인데, ‘宣氣利水’야말로 時疫을 다스리는 ‘兩大法門’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특별히 ‘解疫飮’이란 방제를 위주로 용약하는 것이 大宗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석고가 대량 투입되는데, 많게는 10여근에 달하기도 한다.

아예 해역음 처방을 공개하자면, 부록에 ‘庚申解疫飮方 [自製]’이라 되어 있고 上吐下利, 心慌轉筋, 身冷肉脫, 兩脈  伏, 音啞口渴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처방 구성은 生石膏 2냥5돈, 滑石 1냥을 필두로 生扁豆, 木瓜, 金銀花, 茯   , 猪   , 蘭葉, 澤瀉 등을 水煎하여 서늘하게 먹인다고 하였다. 또 이와 함께 침자법도 병행한다고 했는데, 요혈은 尺澤, 委中, 少商,    兌 등의 경혈에 자침하여 疫毒을 빼낸다고 하였다.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근대 역병에 대한 전통의학 연구서가 국내에 전해져 적용된 사실은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황사와 오염된 환경은 예기치 못한 역병을 일으킬 수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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