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80) - 「普春醫院診療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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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80) - 「普春醫院診療簿」
  • 승인 2013.04.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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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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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된 국가기록물, 晴崗선생 診療簿

이 진료부는 1914년부터 1974년까지 서울 종로에서 개원의로 활동했던 구황실 典醫 출신 金永勳(1882∼1974)선생의 60여 년간에 걸친 평생 진료기록으로서 약 12만장, 1000여권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미군정과 정부수립 등 근현대를 관통하는 시기에 서울 중심가 의료현장과 민간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1900년대 이후 정치적 격변기에 이루어진 근현대 기록물이 산화가 심하고 보존이 취약하여 소멸되기 쉬운 점을 감안하면 의학계를 통틀어서 거의 유일무이한 희귀자료이다.

 

◇「청강진료부」

이 진료부와 함께 구황실 전의 임명장, 대한민국 건국10주년 문화포상하첩, 장부류 등 21건 955점에 이르는 관련 문건도 한국 근현대사의 도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간 원작자인 김영훈 선생의 嗣子 김기수(전 주포르투갈대사)씨가 고령으로 인해 보존관리가 어려워짐에 따라 고인의 평생 유지를 받들어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의학사 연구 및 한의 학술자료로 활용하도록 기증하였다. 이미 지난 2012년 8월에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문화재 503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진료부의 형상은 인쇄한 진료기록 양식지에 毛筆로 손수 기록한 자필기록으로 아직까진 대체로 양호한 편이나 영구보존을 위해선 하루빨리 적절한 보존관리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현재 한의학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연도별로 분류하여 보관되어 있으나 공간이 협소하고 전담인력이 없어 지원의 손길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간 이 방대한 기록물은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다년간 한의고전명저총서DB로 구축하였으나 일부 잔여분에 대한 추가 작업이 필요하며, 활용시스템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확대한다면 갖가지 난치성 질환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2013년 간행 400주년 기념의 해 선정에 이어 이번 김영훈 진료기록의 국가기록물 지정으로 한의고전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부여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민족자존을 상징하는 전통의학의 부흥과 교육에 힘써온 공로와 업적이 조명됨으로써 자긍심을 고취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사료된다.

몇 가지 측면에서 이 기록물의 가치를 논해 보자면 첫째, 당시 경성 중심가에서 최고의 國手로 인술을 펼친 명의의 평생 진료기록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이자 민족대표인 孫秉熙 선생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진료기록이 들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또한 내원환자의 주소와 연령, 직업과 관련한 질병이 기록되어 있어 당대 민간의료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며, 특히 일기와 장부류에는 물가와 약재값 등을 정확한 수치로 기록해 놓았기에 당시 경제상황과 생활상을 살필 수 있어 생활사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둘째, 청강 김영훈은 1904년 최초의 근대적 한의학 교육기관인 동제의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학술잡지를 발행하고 구황실 典醫에 임명될 정도로 뛰어난 학식과 의술을 인정받았다. 또한 일제치하에서 전국규모의 의생대회를 개최하고 단체를 결성하여 한의학부흥운동에 앞장섰던 주역으로 근대의학 발전사에 있어서 빠트릴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전통적인 궁중의료와 진료방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기록물이어서 의료문화 차원에서도 희귀성이 있다.

셋째, 이 진료부에 등장하는 처방들을 정선해서 醫案을 곁들여 책으로 엮은 「晴崗醫鑑」은 1984년에 첫 선을 보인 후 해마다 중판을 거듭할 정도로 활용도가 높으며, 임상강의록이 교육현장에서 교재로 활용될 정도로 정평이 나있기에 실용적 가치가 높다는 점이다. 때마침 청강선생이 남기신 진료기록과 유물 일체가 다시 국가기록물로 지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져 의기소침한 한의계에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이렇듯 한의계에는 오랜 세월 수많은 의학서와 진료기록물들이 작성되어 전해져 왔으며, 오늘날 이것들은 귀중한 역사기록물이자 생생한 임상교육 자료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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