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 「내 사랑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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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내 사랑 내 곁에」
  • 승인 2013.05.0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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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

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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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보는 운명적 사랑, 관객 설득 못한 이유

‘내 사랑 내 곁에’(2009년 개봉)는 가슴으로 보는 영화다. 아름답고 슬픈 사랑 얘기다. 관객들은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극한 상황에서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박진표 감독의 기존 작품세계와 연결돼 있다. 그는 주변인,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해 왔다. 비정상적 상황에 처한 인물들에 포커스를 맞췄다. 데뷔작 ‘죽어도 좋아’에서는 70대 노인들의 성을 실감나게 그렸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 아가씨와 건달의 순애보(‘너는 내 운명’), 아들을 유괴당한 가족의 고통(‘그놈 목소리’)도 밀도 있게 다뤘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너는 내 운명’의 속편이라 해도 무방하다. 남녀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영화의 목표는 명확해 보인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 장치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루성 멜로 영화답게, 가슴 아픈 사랑이 전면에 펼쳐진다. 병, 절망, 죽음과 같은 메마른 언어들이 먼지처럼 떠다닌다. 인물 설정부터 상징적이다. 죽음을 매개로 한다. 루 게릭병 환자(김명민)와 장례 지도사(하지원)가 주인공이다. 죽음이 예고된 자와 죽은 이를 저승으로 떠나보내는 자다. 그 성격은 다르다.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환자 종우에게 죽음은 생명의 종말이다. 장례 지도사 지수에게 타인의 죽음은 밥벌이의 근거다. 지수와 종우가 만난 것도, 지수가 종우 어머니의 시신을 염습한 게 계기가 됐다. 아이러니다. 종우와 지수는 이 간극을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다.

당연히, 두 사람의 사랑은 예사롭지 않다. 죽음을 전제로 한 사랑이다. 지독하게 어둡거나, 심오하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감독은 대중적인 코드를 선택했다. 소박한 멜로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종우는 난치병 환자고, 지수는 두 번이나 이혼했다. 영화의 전개는 전형적이다. 상처투성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교회에서 둘만의 결혼을 하고, 바닷가로 신혼여행을 간다. 행복한 시절은 금방 끝난다. 종우의 병세가 악화돼 입원하면서 지수의 헌신적인 간호가 시작된다. 본격적인 갈등도 불거진다.

몇몇 에피소드는 애잔하다. 임신했다는 지수의 말에 “지우라”고 화를 냈던 종우가 인터넷에서 아기옷을 쇼핑하고, 모기가 뺨을 무는데도 어쩌지 못하고 쩔쩔 매는 장면들이다. ‘죽어도 좋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을 강조하는 것도 특이하다. 종우와 지수는 수시로 성적인 농담을 나누고, 병실 침대에서 섹스도 한다. 차가운 죽음과 뜨거운 본능, 애절한 사랑이 영화 속에 고루 섞여 있다.

둘의 사랑은 절박하다. 문제는 관객도 그렇게 느끼느냐다. 아쉽게도 대답은 극히 부정적이다. 여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관객이 상상하고, 작품에 젖어들 여지가 없다. 영화에는 사랑이 흘러넘친다. 관객의 눈물을 겨냥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종우가 “또 사랑타령이냐”고 구박하는 대사는, 이 영화에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다. 지수가 옛 남편 앞에서 손발을 묶여본 후 종우와 화해하거나, 종우의 시신 앞에서 통곡하며 혼인신고서를 흔드는 엔딩은 민망하리만큼 작위적이다. 병실의 다른 환자 묘사가 훨씬 구체적이다.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죽음이 사랑을 싹틔운다. 두 명의 죽음이 이중으로 배치돼 있다. 깊은 여운을 남길 여지가 많다. 그런데 영화는 어색하고 겉돈다. 종우는 장례식장 벤치에서, 어머니의 유골함을 무릎에 올려놓고, 오랜만에 만난 지수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너는 내 운명”이고, 그러니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한다.

지수의 사랑은 순수하고 헌신적이다. 자기 희생을 감수한다. 그런데도 지수의 통곡은 공허하게 울린다. 사랑의 몸짓만 줄곧 나부낀 탓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인물의 내면에 조금 더 밀착했다면, 사랑의 절박함과 고통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관객의 가슴에 깊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 울어야 한다.

임정식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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