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 몸을 정화하기 위해 단식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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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몸을 정화하기 위해 단식이 좋다고?
  • 승인 2013.06.2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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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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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나 희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모유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

 blog.yes24.com/redist

‘임신 중에 몸을 정화하기 위해 단식을 하는 게 좋다던데요? 아기에게도 단식을 치료법으로 쓸 수 있다던데요?’

한 베스트셀러 육아서적의 지은이는 임신 6개월째 5일간 단식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쓰고 있다. 한 마디로 대단히 위험한 처신이다. 뱃속에서 기아 상태를 경험한 아기는 나중에 대사 장애를 가지기 쉽게 된다. 전쟁이나 재난 같은 피치 못할 상황도 아닌데 일부러 임부가 단식을 하다니 안 될 말이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영양 상태를 통해 자신이 태어나게 될 세상의 식량 상황을 예측해 자신의 몸을 거기에 맞춰간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굶주림이나 비만을 경험한 아기는 대사기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게 된다.

예를 들어 전쟁으로 인한 봉쇄 때문에 기근 상태로 태아기를 보낸 아이들은 생애 후반기에 비만, 당뇨, 심장질환을 더 많이 겪게 된다. 엄마 뱃속에서 겪은 굶주림은, 임신 초기에는 심장질환에, 태아기 중후반에는 당뇨에 각각 영향을 더 많이 준다고 한다. 1980년대 데이비드 바커라는 의사가 ‘출생 시 저체중일수록 중년에 심혈관질환에 더 많이 걸린다’는 상관관계를 발표했을 때, ‘바커 가설’로 불리던 이 내용은 처음에 무시당했다. 심혈관질환, 중풍, 당뇨병 같은 ‘성인병’은 나쁜 생활습관이 누적돼 생기는 것인데 태아 때 경험이 영향을 줄 리 없다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바커 이론은 공인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봉쇄를 겪은 지역에서 태아기를 보낸 아이들은 태어난 뒤 전쟁이 끝나 식량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됐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기초대사율을 낮추고 지방을 축적하는 쪽으로 기근에 최적화된 상태로 태어났는데, 막상 태어나보니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 아이들은 자라나서 유례없이 높은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유병률을 보이게 된다. 이슬람 사회에서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라마단 기간에 임신기를 보낸 사람들에 대한 연구도 있다. 라마단 금식을 한 임신부는 조산아, 저체중아를 낳을 확률이 높고 또 이 아이들은 시각, 청각, 학습능력 부문에서 장애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중국의 마오쩌둥 집권 시기의 대기근 당시 태아였던 사람들은 정신분열 확률 2배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도 일부 ‘자연요법주의자’들이 임신부가 단식을 하는 것이 좋다고까지 권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동이다. 아동학대를 넘어서, 태아학대에 해당한다. 태아뿐 아니라 임신부도 위협적인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입덧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굶거나 토하는 것이 아니라면, 건강한 식단으로 끼니를 꼭 챙겨들기 바란다. 물론 과식이나 패스트푸드 등의 불량한 음식은 피해야겠다.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임신부가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빈곤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태교를 중시하는 문화 덕에, 다행히 임신부는 정크푸드를 멀리하고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하는 편이다.

당연히 아기를 굶기는 것도 안 된다. 어떤 ‘자연요법모임’에서는 단식원에서 아기도 단식을 시키더라. 치료를 하겠답시고 젖먹이도 젖 포함해 일체의 음식을 주지 않더라. 경고한다. 아기를 절대 단식시켜서는 안 된다. 아기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고, 아기가 죽지 않더라도 대사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올 수 있다. 만 2세까지의 느린 체중증가 역시 생애 후기의 만성질환 증가와 연관된다. 또한 아기가 기아 상태에 빠지면 정서적으로도 매우 고통스럽게 되며 극도의 공포와 절망을 느껴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이 높아지는데, 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두뇌에 치명적인 손상이 올 수 있고 면역이 저하된다.

‘자칭 자연요법주의’는 일본과 한국의 각종 요법을 ‘짬뽕’하여 최근에 등장한 것으로, 한의학과 무관하며 전통적인 지혜와도 무관하다. 혹여나 한의사들이 이런 사이비과학에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 이 칼럼은 ‘베이비뉴스’에도 함께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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