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투구꽃의 비밀, ‘한의사’가 필요한 이유
상태바
각시투구꽃의 비밀, ‘한의사’가 필요한 이유
  • 승인 2013.08.15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승원

권승원

mjmedi@http://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권승원
육군 한의군의관
한방내과 전문의http://blog.naver.com/kkokkottung/
2011년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아주 코믹한 영화였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각시투구꽃 밭을 봤을 때,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꽃에서 나오는 약이 한약에 대한 오해, 그리고 한의사-의사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한 요인이 되는 약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가 바로 이 각시투구꽃이다. 각시투구꽃의 뿌리는 ‘초오’다. 사극을 보면, 죄인이 한 번씩 사약을 받는데, 그 사약의 주재료가 바로 각시투구꽃, ‘초오’이다. 당연히 과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당시 의사들의 진단을 받았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산에서 혹 캐더라도, 자기 입으로 무작정 밀어넣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제도상의 문제로 이렇게 위험한 초오를 약재시장에 가면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다. 마침 올 1월 이런 내용이 보도됐다. “독성한약재 주의”란 제목의 보도였다. 보도 내용 중 약재시장에서 한약재를 사는 모습이 있었는데, 정말 위험천만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약재시장에서 “초오 좀 주세요!”라고 이야기하자, 약재상은 “네, 신경통하고 관절약이요. 오래 끓여야 돼요. 설 끓이면 독기가 더해. 만원….” 단돈 만원에 정확한 진단 없이 독초 중 하나인 초오를 구입할 수 있었다.

초오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투구꽃, 세잎돌쩌귀, 지아비꽃 등의 뿌리로서 Aconitum species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독성 alkaloid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진경과 진통을 위해 사용돼 왔다. 초오속 식물의 뿌리나 줄기에는 맹독성의 aconitine계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고, 이 알칼로이드는 항 진통효과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전신 및 입 주위의 감각 이상 등의 신경계 증상과 오심·구토 등의 소화기계 증상, 다양한 심부정맥과 저혈압의 순환기계 증상 등 급성 독성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초오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는 부정맥은 매우 다양하고, 심실기외 수축이 가장 흔하다. 대부분의 경우는 일시적인 것으로 자연 소실되나, 드물게는 심실세동에 의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부분 초오를 자가 처방해서 드시는 분들은 위에서 언급한 항 진통효과에 대한 기대 또는 건강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안고 시장에서 구입한다. 관절염이나 신경통에 대한 효과는 부정할 수 없지만, 독성이 강한 약인만큼 초오를 사용할 때는, 항상 초오의 독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처방구성, 처방복용방법, 법제 방법을 활용해왔고, 그 용량 조절에 만전을 기해왔다.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이러한 지도를 담당해야 하는 직역군이 바로 ‘한의사’이다. 하지만, 한의사 처방 없이도 초오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현재 한약재 유통의 현실이다.

초오 오사용으로 인한 사고는 비단 하루 이틀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국내 학술지에 보고된 케이스들을 통해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겠다.

(1) 2006년 3월 10일 경기도 연천의 한 마을 부녀회 회원들이 강원도 관광길에서 밀주를 마신 후 집단으로 오심, 구토, 구강 및 손발 마비감, 흉부 불편감 등의 증세를 보여 응급실에 실려왔다. 부녀회 회원 중 한명이 여행 중 음주를 위해 술해독에 좋다는 헛개나무로 술을 만들었는데, 환자들이 마신 헛개나무 술병을 확인한 결과, 술 만드는 과정에서 혼합된 초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 당일 밀주를 마신 21명 모두에서 위와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 (밀주를 마신 후 발생한 집단 초오 중독. 2008년 대한응급의학회지 : 제19권 제3호. 김상철 외)

(2) 53세 여성이 응급실 내원 30분전 자살 목적으로 평소 관절통으로 부자와 명태를 섞어 끓여 마셔오다가, 내원일에는 초오를 한주먹 분량 첨가하여 끓인 후 한 컵 가량(120ml) 마신 후 양쪽 팔의 감각이 이상함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내원했다. 환자는 초오를 복용하면 중독돼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 목적으로 복용했다고 한다.
(자살 목적으로 초오가 함유된 한약재를 다량 끓여 마시고 내원한 환자 1례. 2010년 대한응급의학회지 : 제21권 제5호. 김윤성 외)

(3) 36세 남성이 발병 당일 오전 8시 30분경 초오술(소주잔 1잔)을 마신 후, 약 20분 후부터 하지와 얼굴에 마비감이 나타나고, 오심, 구토 및 현기증이 동반되다가 전신 위약감이 발생하여 개인병원을 방문하여 치료받던 중 심실성 부정맥이 나타나 오후 12시경 응급실으로 전원됐다. 총 2만680J의 DC shock이후, 다행히 심근손상은 없이 회복될 수 있었다.
(총 2만680Joules의 DC Shock에 의해서도 심근손상이 없었던 초오(Aconitum) 중독에 의한 심실성부정맥 치험 1례. 1997년. 순환기 : 제27권 제7호. 진영주 외)

위의 사고를 종합해보면,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이 한의사 처방 없이 복용하던 중 발생한 사고라는 데에 있다. (1)과 (3) 케이스의 경우, 모두 초오를 활용한 술에 의한 중독이었다. (2)는 관절통에 대해 자가 처방으로 명태와 함께 달여 복용하던 중, 자살 충동으로 초오를 복용했다. 결국, 세 케이스 모두 적응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관절통에 활용한 상황도 아니었다. 건강에 대한 단순 호기심, 자살 충동으로 초오를 복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초오 같은 독성을 띄는 한약재에 대한 유통 관리 부실이 아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 주변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약 복용 관련 사고는 분명 이러한 부주의에서 발생한다. 저 케이스가 나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꼭 명심해야 한다. 한의사들이 굳이 진료를 통해 한약을 처방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제도가 잘못돼 식자재용 한약으로 마트에서도 한약재를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점은 추후 국가에서 개선해 가야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의사를 통해 처방받은 한약만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국내에 정착돼야 한다. 풍문에 의거한, 단순 인터넷 검색을 통한 한약재 자가 처방은 환자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