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침’ 치료 효과가 그렇게 좋다고? - 과학적 침 연구의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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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침’ 치료 효과가 그렇게 좋다고? - 과학적 침 연구의 난제
  • 승인 2013.11.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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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재

배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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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 재학
지난 2007년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에 주목할만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독일에서 1162명의 만성 요통 환자를 대상으로 침의 효과를 검증한 German Acupuncture(GERAC) 연구[1]가 바로 그것인데, 연구의 규모도 규모지만 더욱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바로 해당 연구가 내린 결론이었다.

저자들은 만성 요통 환자를 진짜 침(verum acupuncture), 가짜 침(sham acupuncture), 일반 치료 등 세 그룹으로 나누고 6개월 간 치료한 뒤에 결과를 비교하였는데, 일반 치료(약물요법,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를 받은 환자에 비해 침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서 약 두 배의 효과가 나타났으나, 진짜 침 치료군과 가짜 침 치료군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림> 참조) 2006년 Brinkhaus 등의 연구[2], 2009년 Cherkin 등의 연구[3]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 결과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이들은 ‘침 치료는 효과적이다’고 이해할 것이다. 진짜 침은 물론 가짜 침마저도 다른 치료법에 비해 두 배 가량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침 치료는 무효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진짜 침과 가짜 침 사이에 효과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침 연구는 조금 다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시험은 가능하면 위약(placebo)군을 통해 피험자와 연구자를 눈가림(blinding)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치료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나 경험이 그 자체로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 그룹에게는 진짜 약을, 다른 그룹에는 가짜 약을 투여하여 ‘시험 약 복용 여부’ 외의 다른 요인은 최대한 비슷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늘로 피부를 뚫는 시술인 침 치료에 대해서는 완벽한 눈가림이 불가능하다. Park Sham Device 등의 장치를 이용하거나, 경혈이 아닌 위치에 자침하거나, 얕게 자침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완벽한 ‘가짜 침’은 아직 어려운 과제다.

가짜 침은 왜 진통제보다도 효과적인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가짜 침’ 역시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진 엄연한 침 치료였을 가능성이 있다. GERAC 연구에서는 가짜 침을 ‘경혈을 빗겨서 얕게 자침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는데, 사실 임상에서 침 치료 시에, 특히 근골격계 통증 치료 시에는 고전적인(conventional) 경혈에 얽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증례 별로 질환의 특징과 환자의 해부학적 특징 등이 달라지니만큼 고전적 경혈점이 아닌 아시혈을 자극하거나, 혹은 경근 이론, 근육학적 구조 등을 고려하여 침 시술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경혈이 아닌 곳에 자침하였다고 하여 반드시 기존 침 치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치료를 목적으로 바늘을 자입하여 물리적 자극을 가하는 행위 모두가 침 치료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GERAC 연구에서는 요통 환자를 대상으로 가짜 침 시술 부위를 허리와 하지로 선택하였다. 경혈을 ‘침의 물리적 자극에 대해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적 반응을 유발하는 지점’이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을 빗겨서 자침했다고 해도 진짜 침과 어느 정도 유사한 반응을 일으켰을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본 연구의 ‘가짜 침’은 10점짜리 화살이 아닐 뿐, 여전히 해당 근육에 어느 정도의 치료적 반응을 유발한 4점, 5점 혹은 6점짜리 화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들을 고려하면 우리는 GERAC 연구 등을 통하여 종류를 막론하고 ‘침을 맞는 것’ 그 자체로 다른 보존적 치료법에 비해 훌륭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환자의 기대와 위약 효과
한편 반대 입장에서의 해석 역시 가능하다. 의사로부터 약물이나 물리치료 처방을 받는 것이 전부인 일반치료군에 비하여, 수 주에 걸쳐 반복적으로 의사와 대면하고 30여분의 침 치료를 받는 과정을 통해 치료에 대한 환자의 기대치가 올라갈 수 있으며, 이것이 가짜 침의 치료 효과를 증폭하는 결과를 낳았을 수 있다. 진짜 침과 가짜 침 사이에 효과의 차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 해석 역시 설득력을 얻는다. 일반치료 대비 진짜/가짜 침이 더욱 효과적인 이유는 오로지 환자의 기대치가 더 높아서일 뿐이며, 따라서 진짜 침과 가짜 침 사이에 효과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GERAC 연구 등은 침의 효능(efficacy)을 검증하는 데 실패하였다.

최근의 연구 동향
Cherkin 등의 2009년 연구[3] 이후로 주목할 만한 몇 건의 연구가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네 종류의 만성 통증에 대해 진짜 침 치료와 가짜 침 치료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있음을 확인한, 다시 말해 침의 효능(efficacy)을 검증한 Vickers 등의 메타 분석 연구다.

다시 초점을 요통으로 좁혀보자면, Vas 등의 2012년 연구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에서는 급성 요통 환자를 네 그룹으로 나누어 두 그룹에는 각각 일반치료, 진짜 침 치료를 배정하고, 나머지 두 그룹에는 가짜 침을 각각 배정하였는데, 한 그룹에는 비경혈점에 침 시술을(sham acupuncture, SA), 나머지 한 그룹에는 끝이 뭉특하여 피부를 뚫지 않는 가짜 침을(placebo acupuncture, PA) 시술하였다. 이 연구에서도 진짜 침, SA군, PA군 모두가 일반 치료에 비해 우수한 효과를 보였으나, 세 종류의 침 치료군 사이에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진짜 침과 SA군 사이에는 거의 효과의 차이가 없었으나, 진짜 침(RR=5.04; 95% CI 2.24-11.32)과 PA군(RR=2.57; 95% CI 1.21-5.46) 사이에는 서로 다른 경향성이 관찰된 것이다. 이 데이터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보다 검증력이 높은 후속 연구를 통해 PA와 SA간에 실제로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최근 게재된 Cho 등의 연구에서는 만성 요통 환자를 대상으로 침 치료를 시행하여 가짜 침과 진짜 침의 효과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임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피부를 뚫지 않는 뭉특한 가짜 침을 활용하였으므로 GERAC 연구, Brinkhaus, Cherkin 등의 연구와 직접 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효과(effectiveness)뿐 아니라 효능(efficacy)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들 연구들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가짜 침을 어떻게 정의하고 가짜 침의 치료 효과를 어떻게 해석할 지에 대해서는 궁극적 해답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맺으며
짧은 지면을 통해 주요 연구 몇 건을 주마간산으로 소개하였다. 전반적 연구 동향을 볼 때, 침의 효과(effectiveness)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학계의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으나, 가짜 침 대비 효능(efficacy)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가 모두 보고되고 있으니만큼, 최종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가짜 침’을 둘러싼 논의와 연구 또한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보고된 연구만으로도 다른 보존적 치료법에 비해 비교효과가 검증되었으므로 임상에서 침을 활용하는 것에 충분한 합리성이 있다는 점이다. 근골격계 통증 질환을 중심으로 주요 임상진료지침과 교과서 등에서 침 치료를 하나의 유효한 치료법으로 도입한 최근의 사례들을 통해 이와 같은 견해를 재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효과(effectiveness)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효능(efficacy)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일 것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임상 역학적 연구와 더불어 침 치료의 작용 기전을 밝히기 위한 기초 연구가 성과를 냄에 따라 조금씩 결론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침의 작용 기전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더욱 ‘충실한 가짜 침’을 만들고 더욱 타당성 높은 결과 평가 도구를 개발하여, 보다 수준 높은 침 연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Haake M, et al. German Acupuncture Trials (GERAC) for chronic low back pain: randomized, multicenter, blinded, parallel-group trial with 3 groups. Arch Intern Med. 2007;167(17):1892-8.
[2] Brinkhaus B, et al. Acupuncture in patients with chronic low back pai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Arch Intern Med. 2006 Feb 27;166(4):450-7.
[3] Cherkin DC, et al. A randomized trial comparing acupuncture, simulated acupuncture, and usual care for chronic low back pain. Arch Intern Med. 2009;169(9):85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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