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heal cannula가 떠오르게 하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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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heal cannula가 떠오르게 하는 기억들
  • 승인 2013.12.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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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

이선행

mjmedi@http://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마스터리의 전공의 생활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소아과 전임의
http://blog.naver.com/civil011
어떤 대상에 대해 양가감정(兩價感情)이 떠오르더라도 조금 더 강렬한 감정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꽃집을 지나갈 때 느끼는 생각으로는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때나 지인에게 선물할 때 꽃을 사러 가던 설레는 기억도 떠오르지만, 더 강렬했던 힘든 기억이 떠오릅니다. 초등학생 시절, 장난치다가인지 청소하다가인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교실의 꽃병을 깨뜨려서 조금 멀리 떨어진 꽃집에서 꽃병을 사들고(어린이가 들기에는 조금 무거웠습니다) 학교까지 낑낑대며 힘들게 들고 갔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꽃집을 바라보면 설렘의 감정보다는 힘든 생각이 더 먼저 강렬하게 떠오릅니다. 마찬가지로, Tracheal cannula <아래 사진>를 보면 좋았던 기억과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인턴의 업무 중 하나로 환자의 분비물이나 외부 세균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1~2주에 1회 Tracheal cannula를 새 것으로 갈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턴 입소 전에 본 술기 동영상에서는 Tracheal cannula를 뽑는 즉시 환자가 마구 요동치다가 새 것을 다시 꼽았을 때 안정되었습니다.

“저건 빠른 교환이 관건이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만 하다보면 주변의 살점을 자극해서 출혈이 일어나기 일쑤였습니다. 충분히 윤활제를 발라주고, 억지로 넣지 않고 가볍게 물 흐르듯 목에 난 구멍에 넣어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처음에 레지던트가 Tracheal cannula 교환하는 것을 몸소 보여줄 때는 “과연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어려운 술기 중의 하나였지만(대부분의 환자들이 cannula를 뽑는 찰나에 요동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등 숨을 못 쉬어 힘들어 합니다) 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지마비 환자의 Tracheal cannula 교환 시간이 되어서 준비를 다 하고 환자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환자 옆의 간병인이 이 환자는 Tracheal cannula를 갈기만 하면 출혈이 엄청나게 나와서 교환하는 날은 cannula 주변에 끼우는 거즈 교환도 여러 번 해야 하고 자기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 자기가 몸이 좋지 않으니 내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하는 인턴이 들어줄 리가 없었죠. 최대한 출혈이 나지 않게 한다고 말하고 교환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환자와 다르다… 최대한 깔끔하게 해야 한다…”
긴장한 상태에서 윤활제를 충분히 바르고 구멍으로 힘을 들이지 않고 빨려들어 가도록 살며시 교환했습니다.

다음 날….
간병인이 어제는 출혈이 없었다고 하면서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간병인은 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어, Tracheal cannula 교환 후 출혈이 있어도 “이건 예전에 비하면, 피가 난 것도 아니에요”라는 식으로 잘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턴이 바뀌어도 Tracheal cannula 교환 때는 예전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해서 제가 자주 가서 교환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그동안 다른 인턴들이 피를 내면서 구멍을 넓혀주어 수월하게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처럼 단순한 술기로도 신뢰감을 주었던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끔찍한 기억도 있습니다.

인턴의 웬만한 술기가 익숙해졌을 무렵의 중풍 턴을 돌 때 사지마비 환자가 새로 입원을 했습니다. 일반 병원에 있다가 들어온 환자인데, Tracheal cannula, Nasogastric tube를 꽂은 상태에서 그동안 관리를 소홀히 했는지 sore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른 chart를 입력하고 ABGA 혈액을 채취한 후 오염상태가 심한 cannula와 tube를 모두 교환하라고 해서 앉은 상태에서 tube를 교환하고, 빠른 교환을 위해 앉은 상태에서 cannula도 교환을 했습니다(보통은 누운 상태에서 교환을 하지만, 당시 주변에 보호자가 없고 환자와 저만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주 뒤….
Tracheal cannula 교환을 하러 가서, 누운 상태의 환자의 Tracheal cannula를 뽑고 새로운 Tracheal cannula를 꼽았으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당황하여 이전에 꼽던 cannula를 꼽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뽑고 새 것을 넣었습니다.

다시 1주 뒤….
Tracheal cannula 교환 시기가 되어서 다시 가서 cannula를 뽑았으나 다시 새 것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전 기억을 떠올려서 예전 cannula를 꼽았는데 이것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환자는 계속 힘들어하는 상태였고, 그간 cannula 교환에는 자신감이 있던 저였으나 바로 공황에 빠졌습니다. 억지로 새 것을 쑤셔넣어도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른 인턴을 불러서 도움을 요청했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낑낑대다 결국 레지던트를 불렀으나 그녀도 역시 실패했습니다. 관경을 얇은 것으로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히 첫 날에는 제가 갈았고, 두 번째에도 약간의 장애가 있었지만 성공했었는데, 문제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산증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30분에 1번 꼴로 계속 ABGA를 하면서 결국 이비인후과 의사를 응급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도 실패했습니다.

환자가 어찌어찌 잘 호흡을 해서인지 모르지만 다행히 ABGA 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고, 결국 당일 이비인후과 수술대로 보내서 구멍을 넓히는 수술을 받도록 했습니다.
후에는 턴이 바뀌어서 직접 확인은 못해봤지만 후임 인턴에게 물어보니 그 뒤로 cannula를 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cannula를 보면 가장 먼저 그날의 강렬했던 응급 상황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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