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한의사의 아이덴티티와 의료계 내 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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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한의사의 아이덴티티와 의료계 내 위치는?
  • 승인 2014.02.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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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덕

송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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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미 덕
경희한의원 원장
이전 시평에서 한의계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대학 교육, 졸업 후 교육의 개선할 부분에 대해서와, 한의학 홍보에 관한 임상의로서의 관점을 말했다. 이후 이러한 임상의로서의 견해가 실현되는 데는, 같은 뜻의 한의사가 지속적으로 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더 이상 글로 쓰는 것이 무슨 의미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의 입지를 바로 세우는 것 외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일종의 자포자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한의계의 입지가 점점 더 작고 어려워지는 것을 현실로 느끼면서 - 대학 한방병원이 규모를 축소해야하고, 한의사들은 질병단계를 판단하는 진단과 관리원칙보다 쉽게 처방을 내는 방법을 추구하는 자존감을 잃어가는 자세들을 보면서, 더욱 조급한 마음이 들어 다시 쓰기 시작한다.

1. 이 시대 한의사의 아이덴티티와 의료계내의 위치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최근 한의사협회에서 잘 만든 TV광고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신뢰감을 주는 아나운서의 또렷한 목소리와 적절한 상황설정으로, 한약처방은 한의원에서 한의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내 몸에 맞고, 식약처에서 정한 약용한약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잘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한의사가 회비를 내서 해야 할 대국민 광고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식약처가 식약공용과 약용한약재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한 것인지 국민에게 알려야하는 내용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광고는 치료용 한약재를 사용하는 소비자인 한의사가 또한 국산과 수입산에 대해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다음 과제를 짊어지게 되는 순서로 이어진다.

이 시대 한의사의 광고는 어떤 내용을 품고 있어야 하는가? 광고는 왜 하는가?
조금의 식견이라도 있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것이 있다. 평균수명 연장, 노령인구 증가, 암 및 수술 후 삶의 질이 떨어진 환자 증가,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킨다 등등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기에 한의사가 가장 적합한 직군이라는 평도 많다. 한의사 만이 양방과 치료효과를 놓고 격돌하고, 양방에서 치료 효과를 디지털화 한 자료로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정작 양한방 2가지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국민은 어떤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일까?

1993~1995년 한방병원 수련의 시절 당시만 해도 중풍이면 한방치료를 해야 한다고,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족에 약간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드는 사람부터, 갑자기 의식이 떨어진 사람까지 중풍이라고 생각되는 환자로 문전성시였다. 응급실에서는 양방의사가 뇌졸중환자를 한방에 가지 못하게 하고, 보호자는 없는 병실을 얻어달라고 한방병원 인턴에게 촌지를 건네는 풍경도 있었다. 정작 수련의가 되어 병원 내부에서 본 뇌졸중환자는 뇌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장액 수액제제를 써야했고, 수일 이상 양방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흔하지는 않았지만 병실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고, 마비 후 발생한 흡입성 폐렴으로 항생제투여가 심심치 않게 이루어졌다. 뇌졸중이나 뇌경색의 발병원인에 대한 스터디가 끝나고 나면, 그에 상응하는 양방치료가 병행되었다. 이후 혈전용해에 대한 조기 대응을 위해, 한방응급실을 찾은 뇌졸중환자를 양방으로 전원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났다. 결국 중풍센터는 이런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일 뿐, 한의사의 역할은 비록 전문의라 하더라도 초급성기를 지나면서부터 가능했고, 오히려 재활치료에 더욱 편중되었다.

1987학번, 1990년에는 방학 중 의료봉사를 가기 위해, 지방에서 개원하고 있는 선배님들께 봉사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받으러 한여름, 한겨울에 다녔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임신이 잘 되는 처방을 받으러 전국 각지에서 몰려가는 한의원, 간 질환을 고치는 한의원 같은 원조 특화 한의원들이 있었는데, 어린 눈에도 모든 환자에게 같은 처방을 첩지에 싸주기 바쁜 모습에 한의사는 정말 대박인 직종으로 보였다. 20여년이 지나서 의료보험을 통해 난임에 대한 시험관시술을 지원하는 현실에, 한의사는 최근 지역별 분회차원에서 난임에 대한 한약처방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 수많은 임신성공 케이스기록이 아쉬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의 한의사가 의료에서 해야 할 부분, 잘 하는 부분은 이미 기능적 증후군, 기질적 원인제거가 아닌 질환, 발병이전 건강관리, 큰 병 이후 질병저항력 증진이라고 누구나 이야기한다. 이런 1차의료를 세련되게 하는 사람이 한의사라고 다시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각과 전문의의 역할은 추후 언급하기로 한다)
요즘 사람들은 1~2년마다 한번씩 권해지는 의료보험의 건강검진도 모자라, 개인적으로 비싼 돈을 지불해가면서 건강검진을 한다. 실비보험과 암보험 같은 사보험도 질병상태를 대비해서 들어둔다. 모두 예방하는 곳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검사상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또 1~2년을 잊고 지낸다. 결과에 약간의 이상이 있다고 나오면, 정상범위에 들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 하는 사람도 있고, 결과를 제대로 해석 받고 상담 받지 못해서 초기대응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한의사가 보아야 할 대상이다.

우리의 의료서비스는 대가를 받는 일이다. 시장에는 원하는 자가 있어야 하고, 공급하는 자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양방과 ‘질병치료’라는 같은 파이를 놓고 더 나누어먹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질병보다 더 확장된 ‘질병 이전의 단계, 질병 이후의 단계’라는 다른 파이를 ‘이게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의사의 대부분이 하고 있는 개원의가 1차진료의로서 존재감을 느끼고, 한의학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는 진료가 보편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 지금의 한의사는 매체를 통해 이런 것을 광고해야 하는 것이다.

임상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에 임하는 자세는 더욱 낮아지는 것을 느낀다. 초년병시절 내가 가진 한의학과 술기로 못할 것이 무엇이냐 자신만만했던 것은, 한의사로서 충실히 지내온 20년간 이제까지 보아온 환자를 내가 진정 질병을 고쳤는지 하는 의문으로 남았다. 의학은 어차피 치료보다는 관리와 예방이 더 큰 부분이고, 질병으로 이행되기 이전 상태를 빨리 알아내는 것이 진정한 1차 의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의사는 이런 역할을 하는데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방병원에 뇌졸중으로 입원해서 양방치료를 병행하면서도, 양방병원에 입원치료하는 경우보다 환자와 보호자의 치료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높다. 다만 치료의 양이 많아서 만이 아니라, 침과 한약 등 한의치료가 실제 뇌졸중 이후 일상복귀라는 점에 더 근접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의학이 자연친화적이다, 인간본위이다, 근본치료이다 같은 말은 이제 식상하다. 유기농도 등급이 있고, 표딱지 만으로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요즘 의학치고 사람 고려 안 하고 무작정 치료하는 방법은 인정되지도 않는다. 한의약만이 질병이전의 단계를 치료하는 근본치료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은 질병이 되기 전, 개인적인 차이를 평소에 알아보는 한의사의 통합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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