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형곡선 둘러싼 논쟁, 그리고 ‘N of 1 t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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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곡선 둘러싼 논쟁, 그리고 ‘N of 1 trial’
  • 승인 2014.05.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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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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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8>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최근 NEJM에는 양방의료계 일각에서 시행되는 신장동맥 신경차단술에 대한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이러한 시술이 의미 있는 임상적인 개선(혈압 강하)을 가져 오지 못했다는 것이나, 양방의료계에는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결과의 세부 분석에서는 인종 간 효과의 차이를 보였으므로, 이러한 시술이 효과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시행된 침 치료에 관한 한 논문에서도 유독 흑인 등 특정 인종 군에서만 침 치료가 통계적으로 의의를 보였다는 결과가 발표된 적도 있다.

이렇게 임상 연구들의 일부에서는 인종 간 차이 등 유전적 변이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 사람의 유전자는 개개인마다 0.5%의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는 지난 회에 설명한 다양한 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명확히 해두어야 할 점은 일반적으로는 개체 간 차이가 군 간 차이에 비해 훨씬 큰 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때 ‘종형곡선’이라는 책을 둘러싼 악명 높은 논쟁이 사회 문제된 적이 있다. 특히 문제되었던 부분은 흑인과 백인 간에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지능(IQ)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종 차별에 민감한 미국 사회를 들쑤셨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이 개체 간 보이는 0.5%의 유전적 변이에 따른 지적 다양성의 분포를 고려해보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렇게 ‘일반적인 특성’에 있어서는 개체 간의 차이가 크게 반영되지만, ‘질병’이라는 예외적인 현상에서는 이러한 일반적 원칙이 오히려 ‘예외’가 되는 것이 의학에서의 아이러니 아닐까. 

이러한 개체 차이의 변화도 존재하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변이도 진화에 있어서는 큰 영향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테면 한 군집의 유전적 분포와 다른 비율로 특정 개체군이 떨어져 나와 새로운 군집을 형성하는 경우에서는 군과 군 간의 병목 효과와 격리 현상으로 인해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그 유전자의 구성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은 사람에서도 동일하며, 가까이는 가족력, 멀게는 특정 인종, 상대적으로 독립된 개체군을 이루는 부족 등에서의 독특한 유전 질환의 발현 등은 의학적으로 직접적인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임상의학에서는 무작위 대조시험(Randomized Controlled Test)이 황금률(Gold Standard)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는 위에서 말한 문제들로 인해서 정확성과 세밀함에 있어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는 환자들을 하나의 거대한 ‘군’으로 두고 접근하기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수정책(위에서 언급된 서브그룹 분석과도 같이)이 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유독 적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의 경우라면 이러한 접근이 타당할 수 있으나, 이러한 질환들 상당수는 이미 정복되었기에,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을 해결해야 하는 의학 입장에서는 기존의 방식이 오히려 구속이 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개체의 차이가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주는데 이것이 대규모의 무작위 대조시험에서는 종형곡선을 그리는 한 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N of 1 Trial’이다. 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는 한 개인의 전체를 파악하고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이에 가장 적합한 치료를 맞춤식으로 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다소 조악할 수도 있지만 ‘현대적인 맞춤의학의 맹아가 한의학에 있다’ 정도의 평가를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반응 예를 들어 아직 그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넥시아를 통해 진행암 환자에서의 설명하기 어려운 무진행 생존례가 관찰되고 있다는 사례와도 같이 이 종종 관찰되고는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종형곡선 끝자락에서 나타날 수 있는, 드물지만은 않은 예외 증례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 환자의 유전적 소인과 표현 상태에 이례적으로 적합한 치료가 시행되어 치료된 것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N of 1 Trial’이다.

이러한 방법론들은 아직 시작 단계이고, 당장 한의계가 따라잡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의학에서 단순한 우연이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의계가 눈여겨 볼 점이다. 실제 지금은 비판을 받는 RCT의 개념도 한 때는 혁신으로, 다수의 의료 혁명을 가져 왔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한의계에 새롭게 도입된 연구 방법론이 마찬가지의 결과물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 단정할 수만은 없다. 근대 초입의 물리학에서 제도적 배경과 수학적 방법론의 도입이 큰 변화를 가져온 것처럼, 한의계에도 적절하면서 새로운 학문적 뒷받침과 쇄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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