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시평] 가만히 있지 않고 세계 속에서 우리 목소리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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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시평] 가만히 있지 않고 세계 속에서 우리 목소리 내기
  • 승인 2014.06.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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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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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전국가적 과업이었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외의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하나로 힘을 모아 돈벌기에 급급해 왔다. 온국민이 노력한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은 96년 OECD에 가입한 국가이며 세계경제 15위가 되어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계속 돈을 좇아 ‘월화수목금금금’을 해야 하는가.

2010년 번역되어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던 것은 우리 국민들이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걸 느끼고 있음을, 지금의 한국사회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2014년, 올해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와 그 당시 피해자들이 수장될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던 ‘가만히 있으라’는 어이없는 지시를 생각해 본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가만히 있어야 했던 것일까. 구조되기 위해서? 고가의 배의 침몰을 늦추기 위해서? 보험금 수령을 위한 사고 은폐를 위해서?

일찍이 1958년 함석헌 선생이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외쳤던 것을 생각한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곱씹어 본다. 우리가 돈이라는 마약에 취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리가 남이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누이좋고 매부 좋고’ 하면서 벌이는 일들에 내 먹고 살기에 바빠서 ‘가만히 있’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정의로운 세상에 살 수 없을 것이다.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ISO/TC249 5차 총회가 일본 교토에서 열렸다. 이번에도 5개 작업반(working group)에서 여러 가지 제안서가 발표되고,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런 국제회의에서는 스스로 의견을 표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 한국 사람들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 중국이 대국이고 중의학의 종주국이며 투자를 많이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중의학의 아류로 무시되고 만다. 주최 측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회의를 진행하든, 어떤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가 상정되건 가만히 있는다면 모든 일이 그대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국제회의의 룰에 따라, 참여국가들의 합의에 따라 진행된 것이므로 차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일례로 지난 회의에서 결정된 결의사항(resolution)을 뒤집는 것은 지난 회의를 수포로 만드는 일로 많은 반대가 뒤따르게 되므로 다시 설득하기란 매우 힘드므로 우리나라 입장에서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처음에 문제제기를 하여 우리나라의 입장과 다른 결의안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이제 다섯 번째 회의에 참가하다 보니, 그동안 꾸준히 참석한 각 나라 대표들 사이에 친분도 생겼고 각자 발언의 배경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의견개진과 설득이 보다 수월하다. 아마 매번 새로운 사람이 대표로 참석한다면 분위기 파악에도 시간이 걸리고 처음 보는 상대에게 한국 의견을 제대로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각국 대표들이 한국에서 열린 2012년 3차 총회에 참석하여 한국 한의학의 발전상을 눈으로 확인한 바도 있으므로 더욱 한국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 준다. 그리고 또한 다행스러운 것은 국제회의에서는 비록 소수 발언일지라도 이성과 상식에 기반한 발언을 하면 다른 나라들이 듣고 지지해 준다는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 필자는 한약안전조제관리지침(가칭) 개발에 대한 안건을 총회에서 발표하였다. 제약산업에서 제조 생산되는 의약품은 GMP 시설 및 의약품 허가규정 등 이미 적용을 받는 여러 규정이 있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ISO가 산업표준을 개발하는 회의이기는 하지만, 제품이 아니어도 개별 클리닉에서 한약재를 사용하여 한약을 조제 전탕하여 투여하는 행위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관리되어야 할 부분이다. 다른 나라들이 안전한 한약을 위해 신경이 쓰이나 실질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도 이 부분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전탕기를 개발하여 국내에서 오랜 기간 사용해 온 경험도 있고 세계적으로 수출을 하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공동으로 조제전탕 하는 원외탕전실이라는 제도도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약 관련 분야에서 이 분야의 표준이 필요하며, 한약사와 한의사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가 가장 강점을 보일 수 있는 분야라면 이 분야라고 생각하여 제안한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개발되려면 ISO 22000이나 ISO 9001과 같은 관리시스템표준(management system standard)이 되어 실제 조제의 전 과정이 관리되고 인증을 받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지난 2013년 남아공 4차 총회에서는 처음 제안을 듣고 난색을 표하는 나라들이 많았으나 이번 총회에서 다행히 MSS에 대하여 긍정적인 분위기가 도출되어 논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지해주는 나라도 많았다. 논의가 잘 진행되어 내년부터는 우리나라가 주도하여 한약안전조제관리지침의 국제표준개발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큰 나라도 아니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나라도 아니지만,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내면 들어주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자랑스러운 한의약 관련 제도와 제품을 가지고 있음에랴. 중국의 뒤를 쫓아가기보다는 우리가 잘하는 분야와 제품에 대해서 먼저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한의약 국제표준의 선진국으로 국제사회에 떳떳이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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