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학 관점의 ‘기회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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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학 관점의 ‘기회비용’
  • 승인 2014.06.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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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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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1>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진화의학에서는 경제학과 같은 사회학의 메타포를 차용하고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전부터 의학에서는 ‘전쟁’의 은유가 자주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방식이 더 신선하지는 않겠지만, 진화론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진화의학에서는 이러한 관점이 더욱 강조되어 있기에 참고할 부분이 있다. 이 중 특히 강조되는 게 기회비용이 아닐까 한다.

 

앞선 글에서 적응과 관련하여 다양한 대가(trade-off)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경제학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이로 인해 할 수 없게 되는 기회의 비용을 항상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처럼, 생명체도 이러한 법칙의 구속을 받게 된다. 각 개체의 행동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를 고려하여 최적의 행동을 하게 될 것이며, 설령 이것이 개체 수준에서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각 종의 군 차원에서는 포괄적인 적응도가 높은 측으로 지속적인 변이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합리적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기보다는, 좋은 결과는 사후에 합리화된 행동으로 정당화된다는 관점으로 이를 보아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의 결과물은 종의 사멸이기에, 결과론적 차원에서는 언제나 합리적인 변화를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고려했다면, 그 결과물이 좀 더 나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의 눈과 같은 기관을 통해 알 수 있다. 눈은 생각보다 훌륭하고 정교한 시각 기관이지만, 다양한 맹점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외에도 자연에는 수많은 타협의 산물들이 존재하며, 이것을 통해 생물학적 한계와 사용가능한 유전적 자원의 한계, 기회비용과 같은 요인들의 작용이 우리에게 ‘대가’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유전자 차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 호르몬 수준에서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특히 남녀의 주된 차이를 결정하는(물론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관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정치적 논쟁에 가까운 것이다) 성호르몬이 각각 남성과 여성의 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성의 경우 주요 성호르몬으로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라디올, 렙틴을 꼽을 수 있으며, 테스토스테론은 근력을 증가시켜주는 이점을 통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방조직의 손실, 면역기능약화라는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에스트라디올과 렙틴은 이와 반대로 근력을 약화시키지만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이점을 제공해준다. 또한 남성 호르몬은 이 외에도 사회적인 영향력의 강화(혹은 그 역의 관계로)와 밀접한 상관 관계와 같이 다양한 이점을 제공할 수도 있으나, 고환암과 같은 종양의 발생을 야기할 수 있으며, 심혈관 질환 및 당뇨, 비만 등의 위험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에도 성호르몬의 영향은 다양하다. 프로게스테론은 임신 유지를 가능케 하며, 에스트리디올은 난소기능 및 자궁내막의 유지를 가능케 하며, 프로락틴은 수유를 가능케 하는 호르몬이다. 이러한 여성 호르몬은 여성의 상대적으로 긴 수명에 기여하는 이점을 개체에게 제공하나 (분명치는 않지만) 자가면역질환의 증가와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이 일시적으로는 지방 축적등과 같은 기전을 통해 생존과 번식에 이점을 줄 수도 있겠으나, 암 발생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또한, 개체의 관점에서는 근력 부족과 같이 생존부분에서 타 개체에 의존하여야 하는 상대적 단점을 야기하게 된다. 또한 여성의 경우 생식과 출산과 관련한 영향으로 인해 남성에 비해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특징이며, 이는 부인과 질환에서 잘 드러나는 바다. 

다만, 이러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분포는 어디까지나 평균에 근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 권투 선수는 일반 남성에 비해 더 강한 펀치력을 지니고 있으며, 일부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에 비해 더 나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남성적인 공격성을 억제하여 더욱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기 위하여 여성호르몬을 주입하는 남성 트레이더도 존재하는 실정이다. (물론 이는 의학적으로 개연성은 있을 수 있으나 명백히 입증되지 않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대가’는 다양한 방면에서 생명체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는 개체의 다양성을 통한 종의 보존(이 역시 ‘다양성’이라는 대가를 통해 ‘적응’이라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뿐만 아니라 개체에서도 생애주기에 따라 각 관점에서 다른 영향력을 가지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진화적 환경과는 전혀 다른 현대사회 환경의 영향에 따른 부적응을 일컫는 ‘미스매치’ 현상은 의학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를 테면 다낭성 난소질환의 경우처럼 어느 수준 이상의 지방 축적은 신체의 호르몬 분비축을 교란하여 생식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은 과거에는 영양분의 제한된 공급으로 인해 쉽게 나타나는 질환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미스매치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 후기 -
한편, 반가운 소식이 있다. 본 컬럼이 주로 참고하고 있는 서적인 Evolution and Health의 주저자인 Stephen C. Stearns 교수가 유튜브를 통하여 전체 강의를 공개하였다.  http://www.youtube.com/playlist?list=PLh9mgdi4rNezHkcbM3s4keEidvSs_YIHH
(지면 독자의 경우 youtube에서 ‘evolution stearns’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의 미숙한 지식과 지면 한계에 따른 설명 부족을 효과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대가의 강의이니만큼, 강좌 전체를 볼 것을 권한다. 각 강의가 30~40분의 짧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다 쉬운 영어로 되어 있으므로, 큰 부담은 없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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