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을 따라 질병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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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따라 질병도 진화한다
  • 승인 2014.07.1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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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mjmedi@http://


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2>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이전 컬럼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한의학의 역사를 조금 더 눈여겨보면, 언제나 그렇듯 고법(古法)은 지금의 질환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흔하게 발견하게 된다. 서양에서도 1940년대 페니실린의 발견 이후, 1970년대의 제약혁명을 거쳐 감염질환의 치료에 대한 큰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양의학계의 내과학 교과서의 절반 가까운 내용들이 다양한 감염질환이며 각각의 원인 병원체를 중심으로 한 이론 체계가 짜여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약 반세기 간의 크나 큰 진보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MERS의 유행이나, 얼마 전 맹위를 떨친 SARS 등의 사건에서처럼 기존의 치료제로는 억제가 어려운 신종 병원체가 등장하고, 다양한 내성균의 등장으로 인한 원내감염의 증가와 사망률의 증가 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얼마 전 dalbavancin, oritavancin, tedizolid 등 신형 항생제가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를 확인한 바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신약이 나오고는 있지만, 제약혁명을 거친 70년대 이후 이러한 속도는 현저히 늦춰진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그래온 것처럼 역시 이를 따라잡는 내성균의 등장은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그 시기를 늦출 것이냐가 관건일 뿐, 그야말로 고법(古法)은 지금의 질환에 적합하지 않는다고 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지치지 않는 군비경쟁가운데에는 진화 현상이 존재한다.

특히 의료에서 원내감염이 문제되는 것은 바로 병원 자체가 가장 강력한 균의 배양소가 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감염 환자들이 거쳐 가고, 이에 대해 다양한 치료제가 사용되는 만큼, 이 환경에서의 선택압은 여타 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되며, 이로 인해 바로 병원체가 빠르게 진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1943년 페니실린이 사용된 이래, 마치 인류가 모든 감염 질환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이미 1945년에 페니실린에 저항을 보이는 S.Coccus가 발견된 바 있다. Erythromycin은 1952년 발견되었으나 1956년에 저항균이 발견된다. 이후 다양한 항생제들이 개발되지만, 이들의 발견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대처법의 발전속도에 비해 병원체의 진화는 더욱 가팔랐다. 결과적으로 제약의 혁신이 질병 진화의 행군을 가로막지는 못한 것이다.

이들 병원체는 다양한 유전자의 조합, 돌연변이 등 진화현상을 야기하는 기전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변모해나가고, 이들은 결국 기존의 치료에 대해서 저항하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인간은 ‘의도’를 통해 이들에 대항할 방법을 계속해서 창출해내지만, 질환은 생생불식(生生不息)한 과정을 통해서 그 기를 꺾어버리는 모습은 시지포스의 노역과도 같은 형국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신종 항생제들은 기존에 치료할 수 없었던 감염에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의 약물들은 과거 광범위하게 작용하여 다수의 병원체들 간의 공진화를 촉진하는 악영향을 끼쳐온 것과는 다르게, 특정 기전에 표적을 두어 제한된 목적으로 작용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화적 차원에서도 변이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제약, 임상의학적인 변화는 엄연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면도 분명하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감염질환의 전반적인 억제는 임상의학이 아닌 공공보건학적 활동(여기에는 근대국가라는 장치를 통한 강력한 행정력이 뒷받침 된 것으로, 일차적으로 감염질환의 억제는 총체적인 사회 성격의 변화에 기인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사회의 의사들도 소위 ‘역병’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알았으나,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나아가 국가의 통제력 자체에 한계가 있었다)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비해 감염질환을 비롯한 인류의 총 사망률은 10만명 당 800명에서 1996년에는 60명으로 큰 폭의 감소를 겪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매우 크나큰 혁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 어디에서도 항생제의 개발을 통한 효과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다만 임상적 상황에서 적절한 약물의 사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약물의 효과를 최대한도로 보존하는 것 역시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직접적으로는 항생제의 적정 사용과 같은 임상적 지침 준수가 끊임없이 요청되고 있으나, 조금 더 큰 단위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들의 진화 과정에 최대한 개입하여 그 속도를 늦추는 생태적 접근 같은 방안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농업에서 ‘단일종’의 작물을 길러 최대한의 수확을 얻어내는 것과도 같이, 동일 계열의 항생제를 사용하는 처방적 변화를 통해 특정 방향으로 병원체를 길들일 수 있다는 가설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안들이 제안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방침의 설계에서 실천까지 모두에서 진화적 관점의 이해가 필요해지는 부분이다. 

한의학에서의 여러 임상 연구와 기초 약리 연구들을 분석해보면, 병원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치료를 하는 것과는 달리, 인체의 면역계에 개입하여 질환의 진행을 억제하는 기전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의학답다 할 법한 접근법이다. 그러나 신종플루에서 마행감석탕 등 한약처방을 통해 명백한 효과를 보인 대규모 연구에서처럼 원인 바이러스의 증식을 차단하는 등 직접적인 치료기전을 보이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팔각회향으로 직접 신종플루를 치료하겠다는 참으로 한심한 사건도 있었지만, 해외의 선도적 연구들을 보면 차근차근 한의학을 이용한 감염의 관리에 대해 통찰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의학에서 감염에 대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가답이나마 건전한 한의학적 근거의 축적에서의 내용을 채워넣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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