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진료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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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진료의 충격
  • 승인 2014.07.3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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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mjmedi@http://


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
면허 제도는 단연코 비효율을 낳는다.
<밀턴 프리드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시절까지 올라가는 원격 진료 사업. 양방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점차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결국에는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 논의는 대부분 원격 진료가 옳은가 그른가 기술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나 왜 안되는가와 같은 지엽적 부분에 치우쳐 있지만, 사실 이 문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의료 자체의 변화 성격으로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3년 전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파괴적 의료 혁신’이라는 서적은 상당히 충격적으로 의료계의 미래를 다루고 있는데, 골자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최고의 전문가만이 살아남고, 이류는 도태된다. 왜냐하면 최고를 제외한 나머지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이에 대해 이미 양방의 전문지들에서는 심도 있는 토론회와 분석을 거쳐 나름의 판단을 내린 바 있고 상당수는 이러한 방향으로 점차 움직이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본인이 최고이거나 그 위치에 다다를 수 있는 경우라면 말이죠.

많은 사회학자들이 지금의 심각한 양극화 사회는 바로 이 자본주의에 따른 효율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료 영역은 ‘면허’라는 장벽을 통해 이러한 자본주의의 거센 파도에서 비껴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 장벽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시 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원격의료 문제의 본질일 것입니다. 의료인의 ‘지대추구’를 이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혹은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료지식의 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보셨나요? 한 그림을 집어넣으면 이와 유사한 그림을 저절로 찾아내는 구글의 검색 기능은 매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이를 처리하는 고도의 알고리즘과 통계학을 필요로 합니다. 과연 현 수준의 이러한 기술이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그것에 비해 뒤처질까요? 이미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영상 판독에서 관련 전문의에 비해 컴퓨터의 판독이 더 정확함을 보였던 임상 연구가 있었습니다. 물론 마치 컴퓨터가 사람에게 도전하는, 그것도 신성한 의료 전문직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이었기에 조용히 잊혀지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기술은 날로 진보하고 있으며, 이제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기까지 합니다. 의사는 수십년 간의 노력을 통해 잠시 동안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지만, 기계에는 학습곡선(learning curve)이 없습니다. 누적과 진보만 있습니다. 수술로봇이 지금은 외과의사의 수족 정도로만 작용을 하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의사들의 패턴을 읽어내고 학습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의사는 책임을 지는 표상 말고는 이렇다 할 역할이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만성, 경증 질환의 경우에는 특히나 근거기반의 의학에 따라 상당수의 지식과 시술체계가 표준화, 객관화 되었으며, 이러한 지식들을 포괄하여 햄버거 만들 듯 진료를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고 있습니다. 지식의 축적이 일단의 ‘효율성’을 만들어 낸 것이죠. 이 외에도 다른 치료들 역시 예외가 되기란 어려울 것이며, 개 중에 사람이 하는 일로 존속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이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발명가이자 미래학자는 기술의 특이점, 기계를 통한 지식의 발전 속도가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 시점이 곧 도래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진보가 이뤄질 것이며,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진보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요, 다소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불과 20년전 소위 ‘정보고속도로’라는 청사진이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저 한귀로 흘려들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의 변화가 한의계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아직도 전통적인 망-문-문-절이 한방진료에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분위기지만, 해외의 동향을 살펴보면 오히려 한의학과 결합할 수 있는 현대적인 기술들(시스템 생물학, 다성분 약리에 기반한 맞춤 약물제조 등)은 최신의 과학과 거대 설비를 요구하는 부분들이 있고, 기술적 숙련이 필요한 양방의학에 비해 더욱 자동화 하고 객관화 시키기 좋은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가 기계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가장 좋은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의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인자들의 변이를 살피고 가장 효율적인 치료 방안을 계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모두 당연시 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멀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전통적인 의료 전문직들은 이것이 의사-환자간의 대면진료라는 관계를 무너뜨리고 변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이미 금세기 초,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제시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변화는 모든 전통적인 관계를 태풍처럼 쓸어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말이 잘 와 닿지 않는 것처럼, 전통적인 진료 모습을 살리자는 것 역시 과거에 대한 향수 정도로 그칠 공산이 큽니다. 그리고 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기존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려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는 우리 한의사보다 더 잘 체감할 직군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을 타는 것 역시도 엄청난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더 이상 의료인은 의료에 있어 타 직군들의 더 많은 참여를 목도해야 할 것이며, 환자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던 모습은 계속해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의료인의 역할은 축소되어 사라질 것이며, 그 속도는 역설적으로 그 참여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술의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의료계의 거대한 전환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냐, 지역적인 계획경제냐와 같은 숙제를 풀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동아시아적으로 말하자면 송대에 완비된 중국화의 길로 다시 돌아갈 것이냐, 후대에 오히려 지역화된 한국만의 한의학으로 남을 것이냐 할 수 있겠지요. 한의학은 송대에 ‘발명’된 의학에 ‘음양오행이라는 한때 과학적이었던 이론’을 도입한 상당히 근대화적인 체계이지만, 현재의 한의계는 그러한 혁신성은 온데간데없이 고유의 모습을 보전하는 데 급급한 모습입니다. 자, 다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을 열고 나가 새로운 위협에 맞닥뜨릴 것이냐, 그래 왔던 것처럼 문을 닫을 것이냐 결정할 시기입니다. 분명한 건, 어디에도 ‘안락한’ 내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불어 닥치는 ‘고삐풀린’ 한의학에 대한 요구들에 대해, 다들 준비는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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