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에서의 접종, 그 유구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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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서의 접종, 그 유구한 역사
  • 승인 2014.08.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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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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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4>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일부 한의계 인사들 중에는 백신 접종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물론 독감(인플루엔자) 백신의 경우 임상적 효과가 대단히 미미하며 부작용과의 손익을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최근 자궁경부암백신처럼 중대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경우도 있어 백신에 대해서 맹신하는 태도는 분명 바람직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이미 한의학에서 접종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의료행위이며, 이들 상당수는 보건학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보면, 이분들의 반문명적인 철학에 근거한 양태를 좋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진화의학은 언제나 끊임없는 과정인 진화를 다루기에, 특히 최근의 사회문화적 변화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데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의학적 정설과는 다르게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분야가 접종된 환경에 있어서의 병원체의 진화이다. 일반적으로 의학계에서는 ‘백신에 의해 획득된 면역은 자연면역을 쉽게 대체하고, 병원체의 진화와는 무관하다. 백신은 100년 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어왔으며, 백신에 의한 진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백신으로 인해 백신에 반응하지 않는 돌연변이가 진화하더라도 야생종에 비해서는 덜 해로울 것이다’라는 믿음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B형간염, 백일해, 폐렴쌍구균감염, 디프테리아, 말라리아와 같이 인간에 대한 주요 감염질환뿐만 아니라, 조류독감, 마렉병, 염증성낭염(IBD) 등 동물의 주요 감염질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접종은 분명히 성공적으로 질환의 억제에 도움을 주었지만, 이러한 성공들은 부분적인 것이며, 이 성공들도 진화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하여 병원체의 진화를 유도할 수 있음도 시사되고 있다. 백신이 매우 효과적인 질병 예방수단이지만, 만능은 아닌 것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변이를 거듭하는 인플루엔자 백신의 낮은 효용성과, 이미 산업계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백신들의 효과 저하들에서 알 수 있듯, 아무리 좋은 의학적 도구들이라 할지라도 진화적 지평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용하다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키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러한 조짐들이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들이 ‘붉은여왕’처럼,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일종의 맹신 - 백신은 매우 성공적인 치료이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는 믿음 - 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천연두, 소아마비, 디프테리아에 대한 백신 접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질환의 병원체가 우리 면역계의 작용에 유독 취약한 부분이 있었으며, 과거에 성공했던 주요 백신들은 이미 진화과정을 통해 우리 인체가 습득한 자연 면역 과정을 통해서 이들을 제압할 수 있었던 특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질환은 같지 않다. 이러한 성공적인 사례 뒤에는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문제가 되는 질환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어두운 면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병원체들은 스스로 우리 면역계의 작용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고 있고,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다. 과거와는 질환의 양상이 점점 달라지고 있고, 병원체들은 ‘생존하기 위해’(더 정확히는 ‘생존한 것은’) 다른 숙주, 다른 감염원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한다. 우리는 이미 조류독감의 사례에서 종간 교차감염이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진화의학이 이 문제들에 도움을 주고자 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크나큰 성공의 후광으로 인해 점점 어려워지는 질환에 대한 백신의 한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지 못한, 의료계의 보수성이 이러한 진화적 인식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최근 논란이 되는 백신들의 효용성에 관한 논란의 일부는 이러한 한계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백신으로 인해 변화된 환경에서 고작 100년 산다. ‘의불삼세(醫不三世)’라는 말과도 같이, 진화압은 도처에 있으며, 인간의 문명은 그러한 압력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치료의 효용성들은 좀 더 기나긴 진화의 지평에서 조감할 필요성이 있다.

- 후기 -
얼마전 본 칼럼 작성에 크게 참조하고 있는 서적인 「Principles of Evolutionary Medicine (Oxford)」의 번역본이 ‘진화의학의 이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바 있다. 진화의학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러한 서적이 발간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한의계 연구자들이나 임상의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의계에서도 이와 관련해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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