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의 대유행과 처방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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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의 대유행과 처방의 변화
  • 승인 2014.09.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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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mjmedi@http://


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5>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최근 ‘현대 임상 온병학’ 등의 저서를 통해서 주요 감염 질환에 대한 한의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에서는 마행감석탕 합 연교패독산과 같은 주요 처방을 신종플루, 폐렴 등 호흡기 질환에 대해 사용하여 의미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다양한 임상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양의학계에서 감염 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적인 Sanford Guide의 한자명이 ‘熱病’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미 한의학에서는 상한론 이래 수많은 임상 실천을 통해서 이러한 감염질환에 대한 대처를 해온바 있다.

그런데, 익히 의학사를 읽어보면, 늘 발견할 수 있는 ‘이전의 처방이 효과가 없어~’는 어떠한 의미일까? 이러한 언급들에 대하여 잘 정리된 문헌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진화의학의 견지에서 보면 이는 ‘공진화’(co-evolution)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을 해볼 수가 있다. 계속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병원체와 인체의 끝나지 않는 경쟁의 결과물이 감염의 대유행과 인구변화, 이에 따른 처방의 변화라는 의학사적 기록에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이러한 생태적인 현상으로서, 다양한 요인들이 중첩되어 상호 간의 작용이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는 복잡한 계로서 감염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최근의 생물학이나 진화의학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들의 하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감염은 무조건적으로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에 대한 다양한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들은, 이들의 진화적 계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들이 추가적인 감염을 예방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는 부분을 시사하고 있다. 달리 특별한 질병에 대한 대안이 없던 과거에는,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일종의 공생을 통해 상호간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점이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종간 편차는 매우 큰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유전적 유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역시 특징이다. 인간 종은 과거부터 수많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어 왔고,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바이러스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와 인류의 이동과 같은 거시적 변화들은 제각기 다른 양상을 인류에게 가져오게 되었다.

잘 알려진 감염 질환인 홍역의 경우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감염되지 않은 인구(홍역은 한번 감염되면 평생면역이므로 주로 어린이)의 공급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따라 측정해 보면 적어도 25만명의 개인이 한 집단, 군집을 이루고 이 체계가 계속 유지돼야 함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인간 집단이 이러한 크기가 된 것은 불과 5000년 전에, 인류가 증가함에 따라 도달하게 된 지점이고, 그 이후로 홍역은 백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인간 집단을 떠돌게 되었다. 최근에 선진국에서의 반백신 운동 등으로 인한 홍역의 산발적인 발생은 언제나 감염 질환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 최근 해외 뉴스보도를 통해 알 수 있듯, 에볼라바이러스와 같이, 매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인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들은 고대의 인류 조상과 같이 우리와 같은 다양한 진화 경로를 밟아 왔으며, 문명의 발전이 거듭될수록, 이들 역시 이러한 환경에 발맞추어 진화를 거듭해 왔다. 헤르페스바이러스와 같이 매우 오래되고, 진화적 다양성도 비교적 적은 안정된 바이러스가 있는가 하면, 독감(인플루엔자A)바이러스의 경우에는 매년 백신을 만들어 접종을 하더라도 예방이 어려울 정도로 그 진화가 매우 빠른 경우도 있다. HIV처럼 비교적 최근에서야 여러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인류에게 침입해온 바이러스들도 있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같은 DNA바이러스는 진화 속도가 느리며, 에이즈, 인플루엔자A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로서 진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는 바이러스의 장기적인 평균 복제율과 바이러스 중합효소의 오류율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간에 대한 이득이나 해악보다는 이들 나름의 생태에 따라 발전해 나가는 것에서 자연(스스로 그러함)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번 칼럼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류의 ‘백신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따라 병원체 역시 진화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인류와 바이러스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여러 진화의학적 연구를 통해 그 관계에 대해서 지속적인 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약품으로서 뚜렷하게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항생제의 사용에서 나타난 일련의 문제들처럼(분명 항생제는 좋은 발명품임에는 틀림없다.) HPV와 같이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 H. Pylori처럼 암을 유발하는 세균들도 있지만, 최근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바이러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연구들(홍역 등)도 시도되고 있다. 아직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생태적 환경이 허락하는 만큼의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며, 우리의 몸과 암세포 역시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이러한 환경압을 극복해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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