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병 시평] 선장 없는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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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병 시평] 선장 없는 한국한의학연구원
  • 승인 2014.09.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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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병

채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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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윤 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경혈학교실 교수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을 선임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임시이사회에서 3명으로 압축된 원장 후보자를 심사한 결과 ‘적격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지난 여름부터 공석인 한국한의학연구원 원장 자리가 얼마간 더 공석인 상태로 있게 될 예정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대한민국 한의학 연구의 국가대표이다. 비단 한의학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선 한의원에서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선전에 박수치고 기뻐하고 그들의 졸전에는 아쉬움과 탄식을 보낸다.
지난 여름 한국 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의 부진 속에 홍명보호의 아쉬운 퇴장이 이어졌고, 2002년 4강신화에 대한 추억과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갈망 속에 우수한 신임 감독을 모시려는 축구협회의 노력도 그만큼 어려움이 따랐었다. 이번 신임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의 선임에 관심 갖는 이유도 한국 한의학 연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전임 연구원장들이 수많은 열정과 노력으로 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계의 맏형으로 거대조직이 되었지만, 참된 한의학 연구에 대한 민초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세기만 하다.

지난 몇 달간 원장 후보자 추천 및 검증 과정을 거쳤는데, 처음부터 신임원장 선임에 대한 적격의 기준이 있었는지 반문을 하고 싶고, 한의학계 지도자에 대한 우리 내부의 울림이 과연 반영될 수 있는 구조인지조차 궁금하다. 먼저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한의학계의 지도자상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지극히 보편 타당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첫째, 한의학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직접 한의학 연구에 매진한 경험이 있고 여러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을 이끌어 본 리더십을 갖춘 연구자여야 한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20여년 전 한의계가 피를 흘려 만들어낸 한의학 연구를 위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지금까지 연구비와 연구인력 확보 등 연구원의 외연을 키워온 만큼 한의학 연구를 위한 내실을 다질 때이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은 당시 한국 축구는 체력은 좋은데 기술이 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그는 한국 축구 선수들의 기초체력부터 강화하여 결국 지금 현재 우리 마음 속에 유일하게 기억되는 감독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한의학계의 다양한 연구 경륜을 갖춘 분이라야 기관소속 연구원의 특성에 맞게 장점을 발굴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국제적 안목을 지니고 다양한 해외교류 활동을 이끌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한의학은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국가 중심으로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 중의과학원, 통합의학의 가치를 추구하며 선진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미국 및 유럽의 우수 대학 및 연구기관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들과 함께 선의의 경쟁 및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제학회 활동, 연구소 교류 활동을 통해 국제적 덕망을 인정받아야 한다. 필요에 따라 해외 우수연구소와 협력체계를 통해 선진 연구기술을 받아들이고, 우리 연구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국제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셋째, 국가 연구지원 체계를 잘 인지하고 한의학 연구를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한의학 연구의 성과를 단순히 SCI논문을 몇 편 쓴 것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개인 취향의 연구가 아닌 한의학계의 연구에 대한 수많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필요한 연구를 파악하고 장기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이고 안정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연구 지원을 받기 위해 혹은 연구 평가를 받기 위해 수많은 보고서 작성 등의 행정적 소모를 최소화하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기초인프라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축구대표 감독은 마치 독이 든 성배처럼 축구인에게 매우 영광된 자리이지만,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 차범근에게도, 한국 축구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호에게도 그 자리가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최고의 선수가 항상 최고의 감독이 될 수는 없듯이 지도자라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자리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여러 대학 연구소 및 연구진들을 이끌며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누구나 따를 수 있는 덕망을 지닌 그런 선장을 모실 수 있으면 한다. 암초에 걸린 배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나와 함께 죽을 각오로 함께 살아보자고 말할 수 있는 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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