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시평] 일반의약품과 한약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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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시평] 일반의약품과 한약제제
  • 승인 2014.09.2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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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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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지난 8월 12일 보건복지부가 한약사가 한약과 한약제제를 제외한 일반의약품은 취급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부천시약사회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으며, 복지부는 이에 대해 약무정책과와 한의약정책과가 협의해 “한약사 제도의 도입목적 등 약사법 입법 취지 및 한약사의 업무범위 등을 고려할 때,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제를 제외한 자신의 업무범위를 벗어난 일반의약품을 취급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답한 것이다.

이 같은 문답이 오가게 된 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약사법상 2조 2항에 ‘약사(藥師)’란 한약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藥事)에 관한 업무(한약제제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다)를 담당하는 자로, ‘한약사’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藥事)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정의가 되어 있다.

그러나 2조(정의) 4항에 ‘의약품’이, 6항에 ‘한약제제’가 별도 정의되어 있지만, 실제 의약품이 허가를 받아 출시될 때에는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만 분류될 뿐 한약제제로 출시되는 사례는 없다. 무엇이 한약제제냐고 묻는다면 정의에 나와 있는 대로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이라고만 할 수 있을 뿐 시장에서 어느 제품이 한약제제라고 실체를 꼭 집어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이 한약제제인지는 식약처도, 복지부도, 며느리도 모른다.

약사법 44조와 50조의 의약품 판매 조항에는 ③약국개설자는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이 없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약국을 개설한 한약사는 일반의약품으로 출시된 한약제제를 판매할 수 있으며, 일반의약품이 한약제제와 양약제제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약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데에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편의점에서도 안전상비의약품을 판매하는 상황에서 정식으로 약물학 교육을 받고 국가면허를 가진 한약사가 국민들이 많이 찾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실제 과거 일부 보건소에서 이 같은 상황을 알지 못하고 일반의약품을 취급한 한약사를 고발한 적이 있으나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 잇달아 기소유예처분을 내렸으며 2013년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내려 이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된 바 있다. 그러자 부천시약사회가 다시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문제삼아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한약제제가 엄연히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는데도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를 문제삼는 약사회의 생각에는 한약사가 양약을 다루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복지부가 한약사가 양약을 취급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약사회의 요구에 맞춰 일반의약품 중 양약과 한약제제를 별도 분류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선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한약사제도는 94년 도입되어 96년 한약학과가 생기고 2000년 처음으로 한약사국가고시가 치뤄진 이후 현재까지 15회의 국시를 거쳐 2000명이 넘는 한약사가 배출되어 왔다. 이들은 온전한 4년의 교육과정을 거쳐 본초학, 방제학, 약제학, 약리학 등의 과목을 교육받고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한약의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한약사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藥事)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한약사는 생화학, 약물학 등 양약 관련 과목도 전공필수과목으로 다수 배운다.

반면 약사는 약대 6년제 후 PEET 시험후 약학과에 들어와서 4년의 교육기간 중 한약에 관련된 과목은 한약제제학 1과목을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약사법 2조 조항을 보면 약사의 업무범위에는 ‘한약제제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필자가 알기로 이 조항은 94년 약사법 개정 당시 한약사 제도를 만들면서 이미 시장에 나와 있던 우황청심원 등의 한약제제들을 약사가 판매할 수 없게 된다면 판로가 막힐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약사가 한약제제를 판매할 수 있게끔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한약제제를 의약품과 별도로 분류하지 않아 의약품을 다룰 수 있는 약사가 한약제제를 다룰 수 없게 된 상황이 생기지 않았는데도 약사법상 약사의 업무범위에 한약제제를 포함시켜 보장해주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 결과 약사는 배우지도 않은 한약제제를 20년 동안이나 판매할 뿐 아니라 한약제제의 제조·조제·감정(鑑定)·보관·수입 등 마땅히 한약사가 담당해야 할 업무까지 차지해 왔다. 한약의 전문가인 한약사가 약사에게 밀려 한약에 대한 독자적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20년이 지나 한약사가 다수 배출되고 있으며 약학과는 약대 6년제로 임상약사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였으니 약사회가 바라는 대로 한약과 양약을 나눈다면, 원래 취지대로 양약에 대한 업무는 양약사가, 한약에 대한 업무는 한약사가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반의약품 중에서 한약제제를 별도 분류하고자 한다면 먼저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라. ‘약사(藥師)’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藥事)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한약사’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藥事)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업무범위가 이렇게 제자리로 돌아간 후에야 일반의약품 중에서 한약제제를 별도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양약만 배운 약사는 일반의약품 중 양약도 판매하고, 배우지 않은 한약제제도 판매하는데 양약과 한약을 다 배운 한약사는 한약제제만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니 이런 불합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업무범위 개정이 없는 한약제제 별도 분류는 필요 없다. 이것이야말로 헌법소원을 해야 할 일이다.

실제 한약을 배우지 않은 약사가 약국에서 안궁우황환을 판매하였다가 어린아이를 수은중독으로 식물인간으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이 약사는 물론 형사로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의 형 및 민사로 8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엄중한 처벌을 받았지만, 다시는 한약에 대해 문외한인 약사가 한약 또는 한약제제를 판매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약과 한약제제에 대한 약사(藥事)는 온전히 한약의 전문가인 한약사에게 맡겨 현대사회에 걸맞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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