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질환, ‘성벽’으로만 안심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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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질환, ‘성벽’으로만 안심할 수 없는 이유
  • 승인 2014.10.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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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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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6>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불과 몇주 전만 해도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된 크고 작은 소동들이 있었던 것은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것이 현재로서는 주요 국가에서의 공공보건상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은 탓인지, 국내외의 다양한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덧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서부 아프리카지역(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에서 에볼라는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수도 1000여명을 훌쩍 뛰어넘고 있는 것은 현실이며, 여전히 그 추이를 눈여겨 보아야 할 질환임에는 명백하다.

이 바이러스는 1976년 처음 발견된 이래, 90%에 가까운 높은 사망률로 많은 공포를 자아내었고, 이것은 대중문화속에서도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다양한 영화에서 감염질환을 묘사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중에는 문명화된 사회에서의 ‘야생’에 대한 공포(이들 바이러스의 기원은 열대지역 등 일반적으로 낙후된 지역들이기에 일종의 ‘타자’에 대한 배척에까지 이어질 수도 있겠다)도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며, 어찌보면 서양문명의 신세계에 대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무의식적인 억제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실제 최근 100년간의 다양한 의학 및 보건상의 발전으로 인해 제압되거나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었던 질환들이 다시 복귀하고 있으며, 그보다 더 큰 문제로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감염질환들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의학상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사실 한의학을 통해 우리는 이미 상한(傷寒)에서 온병(瘟病)으로의 이행과 같이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변화뿐만 아니라 이미 금원사대가의 성립에서부터 알 수 있듯 다수의 역질(疫疾) 뿐만 아니라 여타 감염질환들이 100~200년의 단위로 큰 변화를 나타내며 인류를 괴롭혀 온 것을 확인할 수 있기에, 이러한 근래의 변화를 새삼스럽게 보는 것이 오히려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의사들의 기록을 살펴보아도 우리 이상의 이러한 당혹감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서 알 수 있듯, 감염질환의 변이는 인간 문명과 궤를 함께 하던 것이며 이에 대한 우리 의사들의 끊임없는 고민은 쉽게 가실 것 같지 않다.

현재 의학적으로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들은 크게 1400종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과거 30년간의 추이를 보면 매년 1~2종의 새로운 종이 평균적으로 이러한 목록에 추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중 최근의 것으로는 HIV, SARS, 에볼라, O-157, 조류독감, MRSA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치명적인 것들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병원체들 혹은, 기존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된 병원체들의 도래는 사실 지금도 내과학 교과서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병원체들마다 또다시 새로운 목록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참으로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에는 그렇게 지식을 늘여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대응일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한편, 감염질환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 전체에 퍼져있으며, 그 복잡성과 다양성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이다. 인간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새로운 병원체들은 사실은 주로 동물에서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 질환들이 많으며, 이들은 그들에서는 나름의 안정적인 생태를 가지고 있다. 동물들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단이 없기에, 인간에서와는 다른 자연적 균형을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인류가 맞닥뜨리는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나름의 종들의 생존경쟁들이 만화경과 같은 다채로운 사건들을 만들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인류사적으로는 비극이지만, 유럽인들의 신대륙 진출에서 벌어진 참극은 일종의 대조연구로 볼 수도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시차를 두고 인구다수가 면역을 획득하였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신대륙 발견과 점령과정에서 새롭게 도입된 천연두와 홍역으로 인한 인구피해가 남미 인구를 거의 1/10수준으로 감소시킨 것을 보면, 대규모 유행 감염질환의 위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최근 대두되고 있는 감염질환으로 인한 피해는 사실은 인류가 늘상 경험한 것이었음을 보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때와는 달리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한 저항력과 대응책을 마련하기는 하였지만, 그러한 전세계적 관리체제가 언제 흔들리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고, 결국 이러한 사태는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는 죽음을 너무 멀리하여 살아가고 있기에, 지금은 그것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 반대편에서나 일어나고 있기에, 새로운 감염질환의 유행에 대해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언제 그것이 우리의 일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므로 감시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 역학적 모델에 따른 관리가 이뤄지게 된다. 감염이 실제 인간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고, 이것이 공공보건상의 문제를 야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 이를 병원체의 피라미드(Pathogen Pyramid)라고 하는데, 이는 병원체에 대한 노출에서, 인간 숙주에의 감염, 인구에의 확산, 광범위한 전이로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초기의 접촉에서 대유행에 이르기까지 그 빈도는 줄어들게 되는데, 이때 생태학적, 진화적 변이들은 각각 특정한 병원체의 독특한 특성을 나타내게 만들며, 그 결과에 따라 이들 병원체들의 피라미드에의 위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모델에서는 질환에 대한 노출 빈도가 높아질수록, 이것이 임계를 넘어 대유행으로 이행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되므로 ,이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질환 감시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특히 미세한 지체조차 질병의 확산에 있어서는 심각한 차이를 낳을 수 있으며, 일단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한 질환들의 특성이므로 질환에 대한 대응은 쉽게 꺼지는 관심과는 달리 참으로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HIV/AIDS 인플루엔자, 조류독감, SARS, 에볼라 등 새롭게 떠오르는 감염질환들은 그 기원에서부터 진화적 과정, 인류에게의 전파된 경위 등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서양에서 발전한 도시의 모델은 일종의 ‘야만’으로부터의 방벽의 의미가 있다. 어찌보면 ‘통제된 환경’을 구축하고 살아가는 지금의 도시환경 역시 ‘질병’이라는 야만으로부터 인간이 생각해낸 하나의 성벽일수도 있겠다. 야생환경을 두려워 했던 것은 문명화된 북부 지방의 관리들이 남부지방에 파견되면, ‘산람장기(山嵐??氣)’를 두려워 하며 이에 ‘불환금(不換金)정기산’을 복용하던 의료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콘크리트 벽을 세워 잠깐 잊는다 하더라도 O-157감염사태가 ‘급식’이라는 성벽 내부의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것처럼, 위험은 언제나 도처에나 있다는 것 자체를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註】 온병에 대해서는 일전에 민족의학신문에 소개된 것(http://www.mjmedi.com/news/articleView.html?idxno=25563)과 같이 ‘온병’에 대한 다각적 접근이 이뤄진 바 있다. 거론된 저자의 시각처럼 역사와 문화, 사회의 변화가 질병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과도 같이 거꾸로, 질병이 역사와 문화,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 방면에서는 헨리 지거리스트의 ‘문명과 질병’ 등의 주요 개론서들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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