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미생물과 인간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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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미생물과 인간과의 관계
  • 승인 2014.11.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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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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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18>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얼마 전 진화의학자들에 의해 많은 호평을 받은 마틴 블레이저 뉴욕대 교수의 저작인 「인간은 왜 세균과 공존해야 하는가(Missing Microbes)」가 번역, 출간되었다.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번역된 이 책은 단순히 항생제가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진화의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의학의 역사, 의료제도의 현실, 의학연구의 관행, 앞으로의 의료 발전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너무 전문적이지 않게 균형 잡힌 서술을 보이고 있어, 바쁜 임상의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항생제가 인간의 생존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의료 환경과 과학지식의 오남용, 그리고 진화적 효과를 고려하지 못한 임상에서의 부적절한 진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가면역질환 등 다수의 현대적 질환이 창궐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내용은 저자의 전공(감염내과)과 어우러져 신뢰감을 주고 있다. 
 
내용들에는 특히 임상진료에서도 눈여겨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배리 마셜의 H. Pylori의 발견을 통해 이 균이 위염의 주된 원인임이 밝혀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현재는 소위 3제요법 등을 통해 이들이 몸에서 박멸됨에 따라 위산역류에 의한 위식도역류질환, 천식 등의 질환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내용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의료계에 뿌리 깊게 박힌 파일로리균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원시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환경이 훨씬 복잡하고 다채롭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아는 진화의학적 견지에서 볼 때 중요한 시사점이다. 더욱 복잡한 생태계일수록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약품은 인구 다수에게 광범위한 효과를 가진 약품을 개발하는 것이 주로 되어 있으나, 이러한 원리가 항생제에 적용된 결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미생물 생태계는 항생제에 의해 파괴되고, 항생제의 효과조차 내성균의 증가로 인해 점점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앞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효과를 내는 의약품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어지게 된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 맞춤의학의 중요성은 최근 의료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부분들이며, 한의계에서도 기본적으로 한의학이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기존의 원리와 사실들을 현대과학을 통해 다시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진화의학계에서는 이 책에서 주목한 장내 미생물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내 미생물과 식욕과의 관계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항생제 복용과 성인이 되어서의 비만 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고(Bailey LC et al, Association of antibiotics in infancy with early childhood obesity., JAMA Pediatr. 2014 Nov 1;168(11):1063-9.)들이 대표적으로,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사람의 기분이나 섭식행위 등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는 이론(Alcock J et al, Is eating behavior manipulated by the gastrointestinal microbiota? Evolutionary pressures and potential mechanisms, Bioessays. 2014 Oct;36(10):940-9)들이 그것이다. 인공적인 환경으로 인해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얼마 전까지 안전할 것이라 믿어져온 사카린 같은 인공 당의 복용이 사실은 장내미생물의 대사기능을 전환시키고, 그 결과 숙주의 체중이 증가하는 방향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Suez J et al, Artificial sweeteners induce glucose intolerance by altering the gut microbiota., Nature. 2014 Oct 9;514(7521):181-6.)
이렇게 진화 의학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들이 시사하는 것들은 결국에는 균형과 조화라는 자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내재적인 원리의 이해 없이 무작정 접근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반작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진료현장에서도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한편,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최근 한의계 교육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불행히도 한의대 예과생들의 자퇴가 다소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곤 한다.
내용을 들어보면, 예전에 선배들은 경제적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기에 부당한 학술적 강의에도 불구하고 그를 견뎌(?)내고 졸업하였으나, 그러한 미래가 불확실한 현재의 한의대생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부 잘못된 강의들을 끝내 감내하지 못하고 자퇴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적으로 보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그에 따른 적응이 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나이에 맞게 상당히 유연한 대처를 보였다.
이에 대한 한의과대학과 한의학계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부디 광범위 항생제로 유익한 장내 미생물을 초토화시킨 것과도 같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학문적 개혁과 교육의 충실화 없이 학사관리만을 강화하는 식의 대처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진화의학의 원리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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