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양방·양의사’ 쓰지 말라는 이유…그리고 ‘의료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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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양방·양의사’ 쓰지 말라는 이유…그리고 ‘의료계’ 유감
  • 승인 2015.02.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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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희 기자

홍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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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가 있다. 무솔리니가 의원이었던 그를 암살 기도 혐의로 감옥에 가뒀다. 그가 감옥에 있던 때 작성했던 글이 그의 사후 출판됐다. ‘옥중수고’라는 대작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가 ‘헤게모니’다. 그람시는 ‘정치적인 지배’를 뜻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러 다차원적 속성을 분석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다. 오늘날 이 단어는 한 집단, 국가, 문화가 다른 집단, 국가, 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전문적인 단어를 정확한 의미 규정 없이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의학의 역사는 실로 유구하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생활사 자체였다. 역사가 있어온 때부터 의학은 주요 자리에 있었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기 전까지 우리 의학의 역사는 그랬다. 사회정치적인 격변과 맞물려 ‘의학의 헤게모니’가 새롭게 형성됐다. 새로 들어온 양의학이 점점 자리 잡고, 양의사들의 양방 치료가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최근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대한 보도 횟수가 늘자 대한의사협회는 기사 작성 때 ‘양방, 양의사’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협조를 요청했다. 의협에 따르면 “정부의 보건의료기요틴 과제 발표 이후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와 관련한 보도가 많이 되고 있지만, 일부 매체에서 의사나 의료기관을 ‘양방’ 또는 ‘양의사’라는 용어로 표현하여 사용하고 있고, 이는 의료법에 명시되지 않은 의학과 의사를 폄하하는 용어”라며 자제를 요구했다.

의협은 “의료법 제2조(의료인)에 따르면,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하며,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있다”며, “‘양방’, ‘양의사’는 한의사들이 한방과 상대적인 개념으로 의사, 의학을 양의사와 양방의학으로 폄훼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말한다. 이어 의협은 “‘양의사, 한의사’는 ‘의사, 한의사’로, ‘양방, 한방’은 ‘의학, 한방’으로, ‘양약, 한약’은 ‘의약, 한약’, ‘양한방 협진’은 ‘의한방 협진’이란 용어를 사용해 기사를 작성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했다.

의협의 주장대로 ‘의사 vs 한의사’ ‘의학 vs 한의학(한방)’ ‘의약 vs 한약’으로 부르는 게 정말 타당한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양의(洋醫)는 ‘서양의 의술, 서양의 의술을 베푸는 사람, 서양인 의사’이다. 양방(洋方)은 ‘서양에서 들어온 의술, 양의의 처방’으로 설명돼 있다. 광복 이후 1970년대만 해도 국내 신문에 ‘양의, 양방’이라는 단어가 스스럼없이 쓰였다. 큰 거부감 없이 활자화됐다.

그런데 포괄적 상위 개념의 단어인 ‘의학, 의사’라는 단어를 하위 범주인 ‘한의학, 한의사’와 대비되는 것으로 굳이 써달라는 주문은 무슨 의미일까.
‘양옥 vs 한옥’ ‘양식 vs 한식’ ‘양복 vs 한복’이라는 대비적 개념을 ‘가옥(집) vs 한옥’ ‘음식 vs 한식’ ‘의복(옷) vs 한복’처럼 불러달라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국민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주문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이상한 게 또 있다. ‘의료인 vs 한의사’ ‘의료계 vs 한의계’라는 표현이다. 이는 어법에도, 의료법에도 반하는 표현이다. 의료법 제2조에 한의사가 의료인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의학정전’ ‘의학강목’ 등 숱한 책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의학>의 용어를 써왔던 사람들에게 ‘의학 vs 한의학’으로 쓰라고 요구하는 건 지금보다 더 완벽히 헤게모니를 잡겠다는 의미인가.
의협회장 선거에서 “더 이상 한의사는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일부 양의사가 “한의학 존재 이유 없다”고 강변하는 건 이런 연장선인가.

의료법에 ‘의사, 한의사’로 명시돼 구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광복 후 일제의 의료기제(機制)를 이어받으면서,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만들고 법률을 제정할 때 구일본제국의 법률 체계를 그대로 이었고, 6·25전쟁 와중에 만들어진 ‘의료이원화 체계’ 이유로 용어상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오히려 그동안 잘못된 표기인 만큼 통합이 되기 전까지는 의료법 개정 시 ‘양의사, 한의사’로 바뀌어야할 부분이라고 지적을 한다. 중국에서도 ‘서의사, 중의사’로 구분한다는 주장이다.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헤게모니’가 형성돼야 한다고 그람시는 말한다.
이 새로운 헤게모니는 기존의 것보다 더 거대한 동의 기반을 가지며, 더 많은 집단의 기대와 이해에 부응하게 된다. 이는 오직 지배적인 헤게모니와의 대립관계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단다. 한의계는 과연 이 새로운 헤게모니를 펼 수 있는 준비와 여건과 능력을 갖췄을까. 국민들이 한의학을 지금처럼 계속 성원하게 할 방안을 갖고 있나. 

홍창희 국장 chhong@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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