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으로서의 한의학, ‘환자’ 중심으로 한 의료시스템 변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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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으로서의 한의학, ‘환자’ 중심으로 한 의료시스템 변화 필요
  • 승인 2015.03.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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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이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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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태형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방문연구원

이 태 형
존스홉킨스대학
의사학교실 방문연구원
경희대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요원
한의학은 대한민국의 국가의료체계 내에서 (양)의학과 더불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1951년 국민의료법의 제정과 함께 한의학은 의학과 함께 대한민국의 이원제 의료제도를 구성하게 되었으며,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의학체계는 서로 간에 배타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즉 한방의료행위는 한의사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게 되었으며, 양방의료행위는 (양)의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형태의 의료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배타적 관계는 전통의학을 국가의료체계 내에 반영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다른 예를 통해 살펴보아도 매우 독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로 중서의결합을 목표로 한 의료 정책이 추진되어 왔으며, 실제로 중의는 서의를 배우고, 반대로 서의는 중의를 배우는 것이 국가적으로 장려되어 왔다. 일본의 경우에는 1874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전통의학인 캄포의학이 전면 금지되었지만 1950년 일본동양의학회의 창립, 1967년 캄포의학의 일본 국가의료보험 반영, 그리고 2001년 캄포의학의 일본 의과대학 교과과정 내의 포함 등을 토대로 점차 전통의학이 근대의학과 융합되어 가는 정책적 경향을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의 한의학은 국가의료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이후로 독자적인 한의과대학, 한방병원 설립을 통해 본격적인 현대화 과정을 거쳐 왔다. 국가의료정책에 부합하기 위해 한의학은 표준화 될 필요가 있었으며,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학문적 가치를 증명할 것을 외부로부터 요구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의학이 보다 현대화 되어 갈수록, 또한 의학의 범주가 점차 확장되어 갈수록 한의학과 의학의 경계는 점차 불분명해져갔다.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와 양방의학의 보완대체의학의 수용 등은 이 경계를 보다 흐리게 하였다.

최근 불거진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논쟁도 양자 간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상황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한국의 한의사들의 경우 국가의료체계 내에서 적합한 의료 행위를 수행하기 위하여 전통의학의 현대적 근거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현대의료기기의 사용 권한이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의 (양)의사들은 이와 같은 한의사들의 주장이 1951년 국민의료법 이후 규정되어 온 한의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며, 의사들의 배타적 권한을 침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의학과 한의학의 관계가 반드시 적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점이다. 의학과 한의학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은 두 집단 간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가 정책적으로도 의학과 한의학의 연계를 위한 노력들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으며, 학문적으로도 양자 간 교류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한의학 질병분류체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한의분류는 1973년 처음 공식적으로 제정된 이후 1979년과 1995년 한국질병사인분류(KCD)와 함께 개정 작업을 거치며 한방병명을 양방병명과 연계하기 위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그리고 2010년에 이르러 기존에 별도로 존재하였던 한방병명은 한국질병사인분류(KCD-6)의 일부로 포함됨으로써 양방병명과 함께 하나의 형태로 완전히 통합되었으며, 한의사 또한 통합된 형태의 KCD-6의 질병분류를 의사와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의학과 한의학의 범주가 과거에 비해 점차 확장되고 의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증가됨에 따라 두 의학 체계 간의 경계를 이전처럼 확실히 구분하는 것은 앞으로 보다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였던 의학과 한의학의 배타적 관계 설정은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의료제도는 어떠한 지향점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의학과 한의학의 관계는 상호 협조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는 없을까?

지난 2월 28일 존스홉킨스 대학의 동아시아 연구 프로그램(East Asian Studies Program)에서는 ‘만성 질환 및 상태 (Chronic Diseases and Conditions)’를 주제로 아시아 공공의료를 대상으로 한 연례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필자는 앞에서 소개한 한국의 의료 상황을 토대로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발표를 마치고 받았던 존스홉킨스대학 인류학교실의 클라라 한(Clara Han) 교수의 질문 한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의사, 한의사, 혹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의료시스템 관련 논의를 흥미롭게 들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환자’를 중심으로 한 의료시스템 변화 논의는 진행되는 것이 없는가?”

의료인들은 ‘환자중심의학’이라는 용어를 최근 들어 통합의학 등 개념과 더불어 특히 많이 접하게 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의 의료 환경에서 환자라는 가치가 얼마만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그런데 만약 환자라는 가치를 이 논의의 중심으로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환자의 질환을 치료하고자 하는 공통된 지향점을 토대로 의학과 한의학 간의 협조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상호간 존재하는 차이에 대한 존중과,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공통된 근거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 본 글은 지난 3월 11일 Acupuncture in Medicine 저널에 게재된 에디토리얼인 “The integration of Korean medicine in South Korea”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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